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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Aug 18. 2022

실컷 웃기

[엄마의 자기돌봄]

장애가 있는 아이와 비장애 아이를 같이 키우는

엄마의 삶은 꽤 고단합니다.

물론 웃을 때도 많지만

오전, 오후 각기 다른 종합병원에서 시달리고

아이가 검사 받느라 너무 힘들어 하고

결과도 좋지 않고,

집안일도 쌓여 있을 때는

'아 사라지고 싶다'라는 혼잣말이 절로 나옵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로는 

콘텐츠 취향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원래도 예능국에서 일했을 만큼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드라마나 영화,

지식이 가득한 책도 좋아했는데요,

요즘은 옆지기가 리모컨 들고 "뭐 볼래?" 물어오면

무조건 "웃긴 거"라고 답합니다.

삶이 고단하니 TV나 스마트폰 영상을 볼 때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어졌어요. 



심지어 새로운 드라마를 시작하기 위해서도

크게 엄두를 내야 합니다.

드라마는 우스갯소리로 

"발가락 사이로 보는 예술"이라고 일컬어지곤 했지요.

TV 앞에 편히 누워서 발가락 사이로 힐끔 보거나

집안일을 하면서, 오며가며 봐도 

내용 파악에 문제가 없을 만큼

쉽고 느려야 한다는 말인데요,

물론 최근의 드라마 추세를 보면

다 옛말이 된 것 같지만요. 

아무튼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대중적으로 만드는 드라마조차

캐릭터를 익히고 스토리를 따라가는 게 

꽤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아이 둘 육아를 시작하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지금은 웬만해선 새로운 드라마를 시작하지 않습니다.



아이 둘 다 기관에 맡기고

혼자 점심을 먹을 때면

넷플릭스에서 미드 <프렌즈>를 봅니다. 

마치 내 친구처럼 익숙한 캐릭터, 

다 아는 에피소드,

익숙한 웃음.

생각없이 편안하게 웃는 시간이

저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어제도 꽤 지치는 날이었는데

옆지기도 야근이라기에

아이들 저녁을 먼저 먹이고

뽀로로를 틀어준 뒤

저는 <신서유기> 레전드편 모음 영상을 틀어놓고

저녁을 먹었습니다.

밥 먹다 말고 깔깔 웃으니

꿈별이가 뒤뚱뒤뚱 걸어와서 엄마 뭐하나

보고 가기도 했어요.

사소하고 유치한 게임에

목에 핏대 올리면서 싸우는

신서유기 멤버들을 보면서

한바탕 웃고 나니

아이들에게 상냥하게 대꾸해 줄 

에너지가 충전됐습니다. 



길게 볼 시간이 없을 때는

유튜브에서 '웃긴 댓글' 영상을 봅니다.

여기저기 유머 사이트에 올라온

재미난 짤과 그 글에 달린 댓글을 모아서

짧은 영상으로 편집해서 올리는 채널인데요,

5분 정도 짧고 굵게 웃기에 적당합니다. 

저는 웹툰을 볼 때도 댓글을 꼭 봅니다.

한국 사람들의 재치 넘치는 드립을 볼 때면

이해하고 웃을 수 있는 

한국인이라 감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댓글 모음'이라고 돼있는 영상은

거의 평타 이상의 웃음을 주는 것 같아요.



아이돌 무대 '댓글 모음' 영상도 자주 봅니다. 

BTS 영상에는 한글 댓글을 찾아보기 어려워서

댓글 모음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닌데

몇 년 전 프로듀스 101 무대 영상의 댓글 모음이라든가,

예전에 좋아했던 가수 무대의 댓글 모음을 보면서

공감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제국의 아이들 무대에

"모이면 죽고 흩어지면 사는 그룹"이라든가 

소녀시대 '다시 만나 세계' 무대에

"전주만 들어도 아련해진다"는 댓글을 보면

웃음 짓게 되지요.







30년 넘게 만화 덕후로 살고 있는 제게 웹툰은 

백수 시절 스마트폰을 사고 싶어서 

취직해야겠다는 열망을 갖게 할 만큼

제 삶의 매우 중요한 축입니다. 



심각하게 깊은 우울이 아닌 이상

가벼운 우울함은 웹툰을 보는 것만으로

금세 떨쳐낼 수 있을 만큼

'웹툰테라피'라는 역할도 톡톡히 해줍니다.



웹툰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두루 보는데

기분이 가라앉았을 때 

웃고 싶어서 보는 웹툰은

네이버의 <조조코믹스>, <독립일기>, <호랑신랑뎐>, <애옹식당>, <위아더좀비>, 

다음의 <퀴퀴한 일기>, <이상징후> 등이 있고

<호랑이형님>, <쌍갑포차>, <도토리 문화센터>는 

웃고 울다 인생의 교훈을 얻기도 하고

살아서 동시대에 이 작품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게 만드는 작품들입니다.


즐겨보는 웹툰은 더 많지만

지금 연재 중인 작품 중 

기분을 업시켜주는 것만 추렸어요.

웃기지 않은데 

달달해서 잇몸 만개하는 웹툰들도 있습니다.

<마른 가지에 바람처럼>, <환상연가>, <비밀 사이>가 그렇습니다.

이 작품들은 댓글에도 주접이 가득해서 웃겨요.




내 현생이 너무 힘들 때,

좋아하는 콘텐츠를 향한 사랑으로

하루를 또 살아낼 힘을 얻고,

한 주를 기다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입니다. 

그래서 콘텐츠를 창작하는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누군가는 시덥지 않은 웹툰,

세상 물정 모르는 예능이라고 무시할지라도

그 가벼움이 

숨막히는 일상에 짓눌린 사람의

숨통을 틔워 주기도 하니까요. 



저를 실컷 웃게 만드는

예능 프로그램, 영상들과 웹툰과 함께

오늘도 자기돌봄 살뜰히 하고

열 올라서 치료실 못 간 

꿈별이 돌봄에 매진해야겠습니다.



© JESHOOTS-com,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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