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까지 수포자였던 나에게, 수능날 우주의 모든 기운과 신들의 축복은 나에게 향했다.
마지막 1년 간 열심히 공부하긴 했지만 그간의 노력에 비해 과도한 성공을 너무 일찍 거머쥐었다.
주관식을 21로 찍어서 맞는 행운을 주실 거면 나중에 로또 같은 거에서 주시지..
그리고 총체적으로 봤을 때 내 대운은 여태까지 수능날 정점을 찍은 뒤로 끊임없이 하락세로 수렴하고 있다. 어이없이 잘 본 수능의 결과로 뜻하지도 못했던 좋은 대학교에 가고 있어보이는 전공을 택했지만.. 그 대가로 남은 것은 돈 안되는 스펙과 망한 학점으로 인한 취업 난항과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며 알바로 날려버린 20대뿐.
'수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여러분' 같은 흔한 응원 메세지보다 잘본 수능이 오히려 독이 된 나의 실제 사례가 긴장된 수험생에게 더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수능이 망한 오늘을 저점 매수 하십시오.'
수능이 끝나고 나중에 알았지만 담임 선생님은 내가 수능을 잘 봤다는 사실에 격하게 감동하시며 "정말 잘됐다, 정말 잘됐어"라며 눈에 눈물까지 살짝 맺히는 듯 하시더니, 사실 최근 몇달간 학비가 밀려있다는 말을 조심스레 전하셨다.
그렇다. 나만 모른 채로 우리집은 조용히 망하고 있었다. 아니 이미 망해 있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마음이 타들어가던 와중에 나의 수능 성공에 열정적으로 기뻐했고, 급기야 십년 후 수능 날까지도 내게 긴 장문의 카톡으로 '오늘 네 생각이 나더라. 엄마에겐 너무나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어.' 하며 낯간지럽게 사랑한다는 말까지 덧붙이기도 했다.
엄마는 K-장녀답게 아픈 외할머니 대신 고등학교 때 취업을 하여 나머지 세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맡아 했지만, 흔한 부모처럼 내가 좋은 대학교에 간 것이 보상심리로 작용했던 것 같진 않다.
뒤돌아보면 그 시점이 아빠가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뒤 약 10년 간의 지지난난한 싸움과 양보와 포기의 결과로, 급기야 엄마가 모은 돈으로 산 아파트를 아빠가 날려먹었을 때였다.
기껏 보내놓은 고등학교 학비를 못 내서 얼마나 안달복달했을 것인가.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을 것인가. 나한텐 말도 못하고 얼마나 혼자 창피해했을 것인가. 마침 그때 내가 빵 터뜨려 준 것이다. 망한 집 수포자가 수능은 전교 1등으로 졸업했다네!
학비는 내가 과외를 해서 번 돈으로 냈다. 수능을 잘 봐서 또 다행이었다.
올해 수능날은 지났지만, 수능날만 되면 그 해 겨울 저녁날 채점하기 전 무심할 정도로 덤덤해하던 엄마의 표정과, 담임선생님의 안도하는 표정이 생각난다. 원래 불이 꺼지기 전에 가장 밝게 타오른다고 했던가. 가세는 그 뒤로 격하게 기울었고 엄마는 생전 처음 공장에 나갔으며 아파트는 투룸이 되었고 서울에 간 나는 캠퍼스라이프가 아닌 알바로 점철된 정글 생활에 들어갔다. 혹독한 10년이었다.
글쎄, 이러나저러나 수능은 그 뒤 몰아쳐올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에 비하면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는 건 확실하다. 수능점수도, 대학교 이름도, 인생에서 그 무엇도 보장해주지 않으니까. 요즘엔 더더욱 그럴 것이다.
뭐 나에게든 엄마에게든 앞으로 더 고달파질 삶을 앞두고 잠깐 반짝, 했던 빛 한 줌이 되어주었으니 그거면 됐지, 더 뭘 바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