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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faitement imparfaite Aug 27. 2020

딸래미 마음은 다 똑같아서

코로나때문에 하늘길이 막힌지 벌써 6개월이 넘어간다. (내 대한항공 주식은 언제 회복할꼬..) 서울에서 회사 집만 오가려니 좀이 쑤시면서 이전 여행 사진들을 들춰보고만 있는 요즘이다.


 난 해외여행을 제법 많이 다닌 편이다. 나 혼자 20살이 되자마자 겁도 없이 돈아끼겠다고 카우치서핑을 했던 초저렴 버전 프랑스 여행 이후로, 름 이래저래 통역 알바로도 많이 가고, 지금 있는 회사에서도 출장으로 연수로 외를 나갈 기회가 많았다. 앞으로도 많을 것이고..


국의 낯선 도시 디자인, 아름다운 풍경, 예쁜 야경 등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주로, '이런 건축물들을 매일 보고 자란 여기서 사는 애들은 어떤 사고방식으로 살아갈까. 어떤 미적 감각을 가지고 있을까.' 또는 '이런 자연 환경 속에서 관광이 아니라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은, 얼마나 여유롭고 행복할까. 아니면 정작 당사자는 이런 촌구석따위 지겹다고 생각하려나' 따위의 오지랖이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서는 스물스물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난다. 아빠 생각은 왠지 아주  조금...아빠 미안...^^; 내가 부모님께 손 빌려서 여행을 간 적은 한 번도 없으면서도, 맏딸로 태어나면 체득 되어버리는 부채의식인걸까.




한국에서 몇 시간만 날아오면 이렇게 전혀 다른 모습의 세상이 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런 장면을 한번도 눈에 담아보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힘들겠구나. TV로 보는 거랑 직접 보는 거랑은 천지 차인데..한번도 이런 느낌은 느껴보지 못하시겠구나. 이런 슬픈 생각에 잠기고 마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4남매의 맏딸로 태어나서 할머니가 몸이 안 좋으셨던 탓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 직장에서 내가 태어나 4살이 될 때까지 쭉 일하며 동생들을 뒷바라지 했다고 했다. 평범한 아줌마지만, 엄마의 취향은 상당히 고급지고 아는 것도 많다. 외국 문화와 여행에도 관심이 많은데, 매일 티비로 보면서 가고 싶어하면서도 갈 여유와 시간이 없었다.


프라하의 성곽길을 산책하면서 발 밑으론 빨간 지붕이 펼쳐진 구시가지 풍경이 보이고 거리 악단이 연주하는 음악이 들려올때, 파리에서 밤에 센 강변을 산책하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의 조명이 다리 밑 강물에 반짝반짝 거리는 걸 한참 쳐다볼 때, 요르단에 출장 가서 기가 막히게 맛있는 중동 음식을 먹고 모랫빛 건축물 사이를 걸을 때, 엄마가 이걸 보면 얼마나 좋아했을지 생각했다.


아, 제일 엄마 생각이 났던 건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의 식품관인 그랑에피스리!예쁘게 패키징된 고오급 식재료의 천국인 이 곳에서 난 못참고 엄마한테 사진을 마구 찍어보내면서 엄마랑 왔으면 재산 전부 탕진했을 각이라며 잠시 엄마의 아바타가 되어 대리쇼핑을 했었다.


고오급 식재료와 고오급진 디스플레이




안타까운 것은 할아버지할머니는 내가 이제 모시고 여행을 갈 만큼 여유와 능력이 생기자 어느샌가 너무 연세가 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워낙 정정하셔서 안 늙을 줄만 알았던 할아버지는 재작년 즈음부터 급격히 살도 빠지시도 걸음도 느려지셨다. 작년에 일본 여행을 가자고 해봤었다. 괜히 미안하셔서인지는 몰라도 무릎이 아파서 이제 그런 데는 못돌아다닌다는 말에 생각해보시라고 미뤄뒀던 여행이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 기약도 없어지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막상 여행을 가시기엔 내가 알지 못한 새에 너무 늙어버리셨다는 사실에 적잖이 상심했던 나는, 역시 언젠가라고 미루다보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고, 엄마에게라도 늦기 전에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이러저러해서, 여행을 다니면서 내 견문을 넓힐 때마다 마음 속 미안함도 커져갔던 터라 작년에 큰맘먹고 엄마와 막내동생을 데리고 파리/헬싱키 여행을 갔던 것이다.


 난 파리만 5번째 방문인 터라 사실 이제는 별 감흥이 없어서, 내가 이전에 엄마가 보면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장소들 위주로 엄마를 데리고 다녔다.


그랑 에피스리에서 예상대로 엄만 물 만난 물고기 처럼 행복해했다. 헬싱키에서는 중고샵에서 예쁜 도자기 그릇을 득템하고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구경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내가 감동받은 포인트를 엄마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난 일부러 무심한 척 돌아다니다가 에펠탑이 반짝거리는 정각에 맞춰  내가 생각하는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인 알렉상드르 3세 다리에서 에펠탑을 보게 하는 세심하고 정교한 루트까지 기획했다.(사실 정각시간은 대충 얻어걸리기도 했다.ㅋㅋ)


다리에 한참 서서 에펠탑도 보고, 반짝거리며 흐르는 센강 야경도 보다가 갑자기 엄마가 아쉬운 목소리로 말한다.

"아 너희 할아부지 할머니도 이런 거 보면 너무 좋아하실텐데.."


내가 그 자리에서 같은 풍경을 보며 생각했던 것이, 엄마 입을 통해 똑같이 나오는 걸 보니 세상에 딸래미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인가 싶어서 찡하면서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멀찌감치 서서 파리 야경은 이제 질린 표정으로 핸드폰만 쳐다보다가 피던 담배를 톡톡 털어 끄고 온 불효녀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러게 오시면 좋았을텐데. 이제 가자" 였지만, 차마 나도 엄마가 이런 거 보면 좋아할 것 같아서, 꼭 보여주고 싶어서 데려온 거란 말은 목구멍까지 살짝 올라왔지만 하지 못했다. 


난 쿨병에 걸린 쿨한 딸래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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