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파리, 그리고 모두의 파리가 평화롭기를 #prayforParis
토요일 오전, 간신히 늦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 한 와중에 파리에서 연쇄 테러가 일어났단 소식을 접했다. 아직까지 확실한 사망자 수가 집계된 것 같진 않지만, 어쨌거나 150명 가까운 사람들이 테러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속보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페이스북에 접속해 '***님이 Paris Terror Attacks 중 안전하다고 표시되었습니다'라는 페이지에 파리에 거주하는 지인들이 몇 명이나 자신이 안전하다고 표시했는지 확인했다. 올해 초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총격 테러에 이어 또 파리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니. '똘레랑스'의 상징 그 자체였던 파리는 지금, 어쩌면 그 똘레랑스 정신의 수혜자였을지도 모르는 누군가가 저지른 끔찍한 일 때문에 혼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파리는 나에게 특별한 도시다. 내가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도시며, 나 역시 프랑스에서 거주하는 1년 동안 이 도시가 오감으로 전달하는 자극을 받으며 유학 시절을 보냈다. 인생 첫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서 가장 먼저 날아간 곳도 파리였다. 이 도시 곳곳에는 내 20대 초반의 추억과 꿈, 그리고 설익은 패기와 서투른 감정이 남아있다. 항상 파리를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사실 싫어할 때도 많았다), 파리는 어쨌거나 나에게 특별한 도시임은 확실하다.
그런 파리에서 일 년 새 두 번이나 테러가 일어나면서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들이 어이없게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거다. 나 나름대로 내가 기억하는 파리를 남기면서 나도 이 일에 슬퍼하고 있다는 일종의 연대의식 같은 걸 표현하고 싶어서. 이 특별한 도시에게 위로를 보내고 싶었고, 파리가 너무 오래 슬픔에 빠져있지 않았으면 싶어서.
파리만큼 온갖 로망이, 혹은 선입견이 투영된 도시가 또 있을까. 누군가는 파리를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라고 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하철에서 냄새나고 소매치기가 들끓는 곳이라며 기대 이하였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파리만큼 미술, 문학, 패션, 요리, 건축 등 온갖 분야를 아우르며 사람들을 유혹하는 도시는 전 세계에 몇 없다. 하지만 동시에 에펠탑 같은 파리의 명소는 미디어에서 너무나 빈번하게 소비된 이미지라, 여행기의 소재로 삼기엔 파리는 이미 너무 진부한 도시인 것도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로 파리를 꼽는다지만, 미디어를 통해 미리 눈에 익은 유명 명소를 자기 눈으로 그냥 한번 더 확인하는 '눈도장 여행'을 하는 관광객들로 번잡한 도시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처음으로 파리에 간 건 17살 때였는데, 이틀밖에 안 되는 일정 동안 우리는 진짜 부지런히 말도 안 되는 여정에 따라 유명한 명소를 다 찍고 다녔다. 에펠탑,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 루브르 박물관, 센느강 유람선, 몽마르트르 언덕 등등을 마치 게임에서 캐릭터가 퀘스트를 수행하듯 30분 혹은 1시간 단위로 방문했다. 그렇게 해서 내게 남은 건, '나도 그 유명한 데를 가봤어!' 하는 자기만족감과 사진 몇 장이 다였다.
진짜로 파리를 제대로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거는, 불문과로 진로를 결정하고 나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프랑스어 시간에 선생님이 프랑스 시인 자끄 프레베르(Jacques Prevert)의 시 몇 편을 수업 시간에 소개해주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허세병을 꾸준히 앓고 있던 나는 10대 특유의 주체 못할 정도로 흘러 넘치는 감수성까지 더해져 그 시에 큰 감명을 받았고, 음울하고 시크하고 도도하고 지적으로 보이는 프랑스 작가들과 작품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대학에선 프랑스 문학을 배우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고, 불문과로 진학했다. 대학에서도 나는 프랑스어 문법이나 언어학 수업은 최대한 피하고(...) 문학 수업만 골라 들었다. 불문과 졸업생으로서 불문과는 취업을 생각하면 솔직히 말해서 미래의 후배들에겐 비추를 백만 개쯤 날리고 싶은 학과지만, 그때 접한 문학작품들은 내 대학시절을 무척이나 풍요롭게 만들어줬다. 그때 접한 르몽드(le Monde)지의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는 사명이나 에밀 졸라(Emile Zola)의 '나는 고발한다(J'accuse)'같은 문장은 내가 언론사 면접을 보러 다니던 시절 자기소개서며 면접에서 주구장창 써먹은 구절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런 내가 교환학생으로 다시 프랑스 땅을 밟아 찾은 파리는 처음엔 사실 조금 맘에 안 드는 곳이었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았다. 틈만 나면 철도청이며 공항 근로자들이며 할 것 없이 온갖 집단에서 파업을 해서 여행 계획이 흐트러지기도 부지기수였다. 생제르맹 데 프레에서 친구들과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고 지하철 역으로 가다가 술에 취한 고딩들이 그 옆을 지나가던 나한테 맥주를 뿌렸을 때가 파리에 대한 인상이 최악으로 치달은 정점이었다. 유명한 관광지에서도 별 감흥이 없었던 때도 많았다. 물론 남들 다 간다니까 이런저런 박물관과 미술관에 예술에 소양이 깊은 척하며 다니긴 했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어마어마한 규모와 관광객 인파에 질려버렸고, 결국 미술관과 박물관이 싫어지기에(...) 이른다.
하지만 나는 분명 파리가 품고 있는 그 질서 없으면서도 자기 개성에 충실한 파리만의 분위기에 매력을 느꼈다. 사실 그 시절의 나는 뭔가 여유가 없던 사람이었다. 스무 살, 스물한 살 즈음에 내가 쓴 일기들을 보면 뭔가에 쫓기듯 '~해야 한다', '~할 필요가 있다'는 당위성으로 꽉꽉 찬 표현들이 많다. 공부도, 연애도, 노는 것도 뭔가 나만의 정답에 맞게 모범적으로 해내려고 애썼던 거다. 세련되려 애썼지만 이제 보니 실은 촌스러운 태도였다. 스스로는 누구보다 오픈마인드이며 자유로운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스스로에 대한 제약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내게 '제멋대로', 혹은 '내가 꼴리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득한 파리라는 도시는 약간은 충격이었다. 아마 프랑스 교환학생 초반에 내가 파리에 대해 느낀 어떤 불편한 감정은 그런 충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랑은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꾸려온 이 도시는 내가 기존에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과는 굉장히 다른 방향에서 나를 자극했다. 모든 사람들이 패셔너블하고 매너 있으며 예술적 소양이 넘쳐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표현하는 것'에 거침이 없는 그 분위기는 파리를 그 어떤 다른 세계의 대도시들보다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비롯되는 무질서함, 깔끔하지 못한 길거리 등은 우리가 기존의 미디어에서 학습한 '로맨틱함'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파리는 예상치 못한 때에 가장 감정에 충실한 개개인들의 솔직한 무언가를 드러냈다. 그래서 파리에 예술가들이 몰려들었고, 수많은 철학가들이 당대로서는 (그리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충격적인 논리를 펼쳐 보였을 수 있었을 거다. '로맨틱', '낭만'의 범위를 수많은 감정을 모두 아우르는 그 무언가로 확장시킨다면, 파리는 정말로 로맨틱한 곳이 틀림없다. 그런 무질서함이 때로는 삶과 사랑과 감정에 대한 숨기기 어려운 열정으로 이어졌고, 그 열정이 곧 파리의 정체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파리는 '다 괜찮을 거야(Tout ira bien)'라고 나를 다독이고 긴장된 나를 이완시켜줬다. 내가 파리에서 아주 조금은 성숙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프랑스를 떠나고 나서도 문득문득 파리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는 에펠탑이나 노트르담 대성당 같은 관광명소가 아니라, 자유로운 그 분위기에 취해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리던 순간순간에 대한 기억이었다.
내가 파리를 특별한 도시로 기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기억하는 '나만의 파리'는 조급한 내가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삶을 조망하는 자세를 가지게 한 도시다. 생각하는 대로 표현하는 게 뭐가 쪽팔리는 일이냐는 거침없는 마음가짐을 내 어딘가에 심어준 도시다. '자유, 평등, 박애'같은 말들은 굉장히 추상적이지만, 사실 그 정신이 파리 곳곳에 남아있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파리에는 삶과 사람에 대해 지치지 않고 이해하고 고민하려던 사람들의 흔적이 차곡차곡 쌓여온 역사가 있었다. 그게 아름답든, 아름답지 않든 말이다.
내가 겪은 '나의 파리'처럼,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각자의 파리'가 있을 것이다. 삶을 더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갖게 하는 '모두의 파리'같은 도시나 존재말이다. 그걸 표현하는 말이 곧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혁명정신이었을것이고, 이런 건 테러로 파괴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비극적인 사건으로 슬픔에 젖어있을 '나의 파리'가 지금의 상처를 잘 극복하기를, 그리고 '모두의 파리, 모두의 세계'가 평화로워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그렇지만 타고난 게으름을 이기지 못하고 가끔은 경치 좋은 곳에서 그저 멍 때리기만 하는 사람의 여행기. 세상은 넓고 기웃거릴 곳은 정말 많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