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성 난청 혹은 메니에르병
새벽에 눈이 떠졌다. 화장실에 갈 타이밍인가 싶어 몸을 일으켰는데 뭔가 이상하다. 왼쪽 귀에 물이라도 들어간 것처럼 먹먹했다. 코를 막고 침을 삼켜봐도, 아아 소리를 내봐도 변화가 없다.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싶어 일단 잠을 청했다.
아침 운동을 가려고 오전 6시 30분에 다시 일어났는데 귀에 변화가 없었다.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구글과 네이버 페이지를 뒤적거렸다. 돌발성 난청, 그리고 골든 타임이 뇌리에 남았다. 회사에 이러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일단 오전만 휴가를 냈다.
점심시간에 예약해 놓은 다른 병원과 회사 사이에 있는 이비인후과로 향했다. 청력검사 결과지를 보던 의사는 메니에르 병을 소개하는 화면을 모니터에 띄웠다. 원인과 치료법, 심지어 진단조차 불확실한 미지의 병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귀는 외이, 중이, 내이로 나눌 수 있는데, 메니에르 병은 내이 속 림프액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의사 프로스페 메니에르가 1861년 내이 질환과 연관된 어지럼증과 청력 손실을 연구했다는 데서 그 이름을 따왔단다.
모종의 이유로 림프액이 늘어나 림프관이 부풀어 올랐고, 그 탓에 내이 압력이 증가해 귀가 먹먹해진다는 게 기본 원리다. 이 먹먹함을 의학용어로는 '이충만감'이라고 하더군. 다만, 나에게는 메니에르 병의 대표적인 증상인 어지럼증이 동반되지 않아 확정 진단을 내리진 않았다.
의사는 아직 의학적으로 검증되진 않았지만 본인이 믿고 있다는 가설을 들려줬다. 현재 몸이 '짠 상태'이기 때문에 림프관이 물을 흡수해 림프액이 많아졌고 압력이 높아졌을 수 있다면서 몸에 최대한 수분을 많이 공급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나는 물을 많이 그리고 자주 마시는 편이라는 점. 스타벅스 컵 톨 사이즈로 하루에 최소 4잔, 즉 2리터를 음용한다. 추가로 의사가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는데, 그중에 나에게 해당하는 것은 1) 커피를 오래 마신다 2) 양치할 때 혓바닥을 닦는다 3) 에어팟을 쓴다였다.
우선 1번부터 살펴보겠다. 우리가 커피를 마시면 2시간 동안 입 아래에서 침이 분비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건 의학적으로 검증된 내용인데 커피회사에서 아주 싫어한다고. 내가 언뜻 검색했을 때 관련 연구가 나오지는 않다만. 어쨌든 의사의 주장은 커피를 그 자리에서 다 마셔버려야 한다는 게 골자.
2번은 우리 혀에는 고양이 혀와 마찬가지로 작은 돌기가 나있는데 사람들이 혓바닥까지 양치질을 너무 열심히 해서 이 돌기가 죽는다는 것이다. 이 돌기의 주된 역할은 세균 제거. 양치로 이 조직이 잘려나가면 세균을 배양하는 양식장을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고 한다.
3번은 에어팟을 쓰냐더니 어떤 버전이냐고 까지 물었다. 그래서 실리콘 없는 콩나물 구형이라고 하니까 의사가 차라리 그건 낫다며, 최악은 노이즈캔슬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선 이어폰, 헤드폰, 골전도 이어폰까진 봐줄만하다고 덧붙였다.
위로를 받은 부분도 있었다. 난 내 성격이 예민해서 소음에 민감하다고 생각했는데, 만약 메니에르 병이 맞다면 구조적으로 작은 소리까지 잘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니, 내가 성격파탄자라서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 묘한 위로가 됐다.
일단은 관리를 잘해보고 일주일 뒤에도 귀가 이상하다면 다시 내원하라고 했다. 안심하며 일단 점심시간에 예약해 놓은 병원으로 향했는데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귀를 막으면 이명이 미세하게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 돌발성 난청으로 고생했던 언니가 생각나 연락을 해봤다. 언니는 화들짝 놀라며 '돌발성 난청'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냐고 묻는다. 그건 물어보지 못했다고 하니 자신이 알려주는 병원에 가서 다시 진찰을 받아보라고 했다.
하여 휴가를 연장하고 다른 이비인후과에 가봤다. 접수할 때 처음부터 '돌발성 난청'인지 확인하고 싶다고 밝혔더니 더 많은 검사를 받았다. 표준 순음 청력 검사, 언어 청각 검사, 고막 운동성 계측, 이명도 검사, 뇌유발 전위검사 등.
고막 운동성 계측 검사는 첫 번째 병원에서도 했는데, 그땐 별 문제가 없었지만 두 번째 병원에서는 왼쪽 귀에서 감지가 잘 안 됐다. 내가 어디가 아픈지 알지 못한 채 검사를 맡은 간호조무사는 '혹시 먹먹한 게 왼쪽이냐'라고 묻더니 '그래서 잘 안 잡 히나 보네'라는 혼잣말이 돌아왔다.
청각 검사는 연례 건강검진 때마다 하는거고, 왼쪽 귀나 오른쪽 귀나 항상 동일하게 잘 들렸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오른쪽 귀를 검사할 때는 빈틈없이 소리가 나왔는데, 왼쪽 귀를 검사할 때는 소리가 안 들리는 구간이 여럿 있었고 직감적으로 문제가 있긴 한가보다 생각이 들었다.
검사표를 받아본 의사는 왼쪽 청력이 오른쪽보다 떨어졌지만 돌발성 난청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돌발성 난청은 3일 이내에 연속된 3개 주파수에서 30dB 이상의 청력 저하가 확인돼야 한다. 나의 경우는 30 dB를 넘기는 저하가 없었다.
애매했는지, 의사는 일단 혈액순환을 도와주고, 비염에 효과 있는 약을 처방해 줬다. 돌발성 난청이 아니라면 일시적인 현상일 텐데, 그 원인은 다양하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다이어트였지만, 두 달에 걸쳐 2kg 빠진 건 다이어트라고 하기 민망하지 않나 싶었다.
여기서도 문제는 다음날 발생했다. 점심시간에 쉬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두 번째 병원이었고 오늘 내원할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가능은 한데 무슨 일인가요? 안 좋은 일이 있나요? 물었더니 얼마나 호전됐는지 보기 위해서란다.
퇴근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사무실을 나와 병원을 향했다. 이름을 얘기하자 거의 대기하지 않고 바로 다음 순번에 진료를 보러 들어갔다. 어제와 다른 선생님이었다. 더 높은 원장이었는데, 어제 학회를 가느라 진료를 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증상이 언제 발현했는지부터,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삐-인지, 웅-인지, 내 숨소리인지) 등을 물어본 뒤 형광펜으로 이런저런 표시를 해놓은 청력 검사지를 보여주며 돌발성 난청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경계에 있고 초기니까 약을 더 주려고 불렀다고 한다.
예상했던대로 스테로이드를 처방받았다. 다만 그 양이 엄청났다. 약사가 내 약을 보더니 혹시 어디가 아픈 거냐고 놀라서 묻는다. 이명이라고 했다더니, 초기라 고용량으로 준 것 같은데 속이 쓰릴테니 꼭 아침을 먹고, 아침을 평소에 안 먹는다면 간식이라도 먹고 약을 먹으라고 조언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명은 귀를 눌러야 들렸는데, 집에 들어가니 가만히 있어도 이명이 작게 들려서 또 한 번 놀랐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주변 소음이 거의 없어서 적막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청력 검사 때도 소음을 제거하는 헤드폰을 끼니까 이명이 잘 들렸는데, 주변 소음을 걷어내면 이명만 남나 보다.
병원에서 받은 이명 주의사항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1. 이명 소리에 관심을 가지지 마세요
- 무슨 소리인지 들어보려 하지 마세요
- 무슨 소리가 나는지 확인하려 하지 마세요
2. 너무 조용하거나, 너무 시끄러운 곳은 피하세요
- 주무실 때 TV나 라디오를 켜서 아주 조용한 곳을 피하시고, 잠이 올 때 바로 주무세요
3. 몸이 피곤하지 않게 하세요
- 몸이 피곤하면 소리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이걸 읽어 내려가면서 완전 내 얘기네 싶었다. 난 소음이 들리면 절대 잠을 못 자는 타입이다. 특히 어떤 소음에 꽂히면 그 소음이 중단됐을 때 언제 또 그 소음이 나나 기다릴 정도. 지금도 이명이 들리나 안 들리나 귀를 계속 눌러보고 있다.
아침에 스테로이드 여섯 알을 먹고 나니 손발이 차가워졌는데, 고용량으로 스테로이드를 처음 먹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라고 한다. 혈관이 수축된다나 뭐라나. 아는 게 힘일까 싶어 무슨 일만 있으면 똑 떨어지는 답이 없는 인터넷 검색에 목매는 나.
병원에서는 약이 다 떨어지기 전에 다시 한번 내원하라고 했다. 그때까지 스테로이드와 함께 상황이 호전되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병원에 가기 전까지는 귀를 눌러보지 말자꾸나. 이명이 들리건 말건 나의 길을 가자!!
※ 나흘치 스테로이드를 먹고나서 다시 내원해 청력검사를 받았는데, 정상으로 회복됐다. 오른쪽 귀보다 왼쪽 귀가 더 잘 들린다고. 일시적으로 끝나서 다행이다. 앞으로 다시 네가 나타나지 않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