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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 동결할 결심

미혼이고 비혼이고 모르겠고 결혼 안 하고 난자 얼린 후기

by 글쓰기C쁠

어렸을 때부터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나,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 결혼하지 않을 거야! 아이를 낳지 않을 거야! 하는 류의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때가 되면하겠지, 하지만 그걸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아 정도의 상태랄까. 그래도 남이 하는 건 해보긴 해봐야 하나 보다.


나에게 결혼과 출산은 실과 바늘처럼 붙어가는 세트다.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면 결혼할 이유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결혼을 한다면 아이를 낳을 의향이 있다는 뜻. 하지만 결혼과 출산을 동일선상에 놓고 고민할 수는 없다. 결혼은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출산은 그렇지 않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한국 사회에서는 결혼 후 아이를 낳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니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서 나는 난자 동결로 합의를 봤다. 때마침 서울시에서 결혼을 안 했어도 난자 동결 비용의 절반을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어서 재정적 부담은 조금 덜어놓은 채 마음먹을 수 있었다.


난자 동결을 처음 생각한 건 5년 전 프랑스 부임이 정해지고 나서다. '한국에 돌아오면 30대 중반일 텐데'가 고민의 시작이었다. 고민하던 중 코로나19가 터졌고, 프랑스 대사관이 비자발급 업무를 기약 없이 중단하면서 언제 출국하게 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난자를 냉동한다는 건 불가능한 선택지가 됐다.


귀국하고 나서는 조직 생활에 다시 적응하느라, 서울에 집을 사느라와 같은 핑계의 뒤에 숨어 미루고 미루다 서울시가 시행하는 난자동결 시술비용 지원사업을 알게됐다. 유일하게 필요한 조건이 서울시에 6개월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연말까지 기다려야 했다.


난자 동결 전에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검사 중 하나인 난소 나이 검사(AMH)도 자치구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다기에 이것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는 결혼한 사람에게만 지원이 됐는데, 2025년부터는 결혼하지 않았어도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고 해서 새해가 밝자마자 검사를 받으러 갔다.


검사는 대단한 게 아니고 피검사다. 난소 나이는 내 실제 나이보다 3살 어린 여성의 중앙값에 가까운 수치였고, 난자를 얼리려면 하루라도 빨리 하라는 의사의 조언이 뒤따랐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정보는 있어서 생리 주기에 맞춰 문병원에 예약을 했건만. 예정일보다 생리가 먼저 시작돼 시술이 또 늦춰졌다.


불안할 때 맛있는 것을 먹으래서 야무지게 먹음

첫 내원에서는 상담과 피검사만 했다. 심전도와 흉부 X레이 검사결과는 최근 건강 검진 결과로 갈음할 수 있다고 했는데, 심전도 결과가 그래프 형식이 아니라 다시 검사를 받아야 했다. 난 심장이 서서히 뛰는 동성 서맥인데 동 수치가 너무 낮아 수면 마취는 하지 않고 국소 마취로 하기로 했다. 으, 이게 추후 문제가 된다.


생리가 시작되고 그다음 날 두 번째 내원했을 때는 질 초음파를 했다. 오른쪽 난소엔 난자가 3개 정도밖에 없지만 왼쪽엔 꽤 많이 있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스스로 맞아야 하는 고날에프 4일 치를 받아 들었다. 난포 성숙을 유도하는 이 주사는 바늘이 아주 얇고, 약물과 일체형이라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세 번째 내원에서도 질 초음파를 했고, 오른쪽에서도, 왼쪽에서도 난자가 잘 자라고 있다는 설명을 들으니 왠지 뿌듯했다. 주사 난도는 조금 올라갔다. 여러 난포를 성숙시키는 IVF M-HP, 조기 배란을 억제하는 세트로타이드다. 약을 조제하고 바늘을 갈아 뀌어야 하며 길이와 두께가 있어 제법 존재감이 있다.


사흘 뒤 네 번째 내원에서 질 초음파 결과 하루 더 난자를 키워야 해서 주사를 한 번 더 맞고 채취 날짜를 하루 미루기로 했다. 난자 동결 절차를 시작 후 두 번째 채혈을 했고, 세트로타이드와 난포를 터트리는 주사 그리고 질정까지 처방받았다. 이렇게 총 9일간 주사를 맞는 여정이 을 내렸다.


자연스럽게 죽어야 할 난자를 억지로 살려서 크기를 키우는 동안 신체에 특별한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난자 채취 36시간 전에 맞은 난포를 터뜨리는 마지막 주사가 요물이었다. 밤 9시에 맞고 다음날 오후가 되니 가슴이 커지고, 아랫배가 부풀고, 열이 나고, 피곤해졌다. 배란기 증상이 극대화한 것이었다.


운동을 자제해야 하는 건 아쉬웠다. 무럭무럭 자란 난자끼리 꼬일 수 있다며 격한 운동은 지양하라기에 첫 이틀은 요가, 사흘차에만 5km를 가볍게 뛰고 나머지는 상체 웨이트만 했다. 중간에 갑자기 이충만증, 이명이 발생해서 이틀은 운동을 쉬고 난자 채취를 앞둔 주말에는 요가도 가지 않은 채 얌전히 지려고 노력했다.


참고로 주사를 맞는 와중에 이충만감과 이명 때문에 이비인후과에서 스테로이드를 고용량으로 처방받았는데, 난자 동결 단계에서는 스테로이드를 복용해도 상관없다는 안내를 받았다. 나중에 배아를 이식할 때였나 일부러 스테로이드를 넣는 단계도 있다고 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안심이었다.


난자 채취는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이뤄졌다. 침대에 누워 알레르기 테스트를 하고, 항생제 등을 투약할 바늘을 손등에 꽂았는데 바늘이 두꺼웠는지 이물감이 상당했다. 약이 들어갈 때마다 아픈 느낌이었고, 새로운 종류의 통증이 나타나기 전 까지는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드디어 의사의 호출이 있었다.


국소 마취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사전에 설명받지 못했는데, 마취할 때는 물론 난자를 채취할 때도 통증이 꽤나 느껴져 힘들었다. 마취약이 들어오자마자 혀가 마비되는 기분이 들었고, 마 뒤 귀가 먹먹해졌는데, 최근 이명이 생겼던 왼쪽 귀가 더 불편 그 와중에 몸은 참 정직하구나 싶었다.


바늘을 내리꽂는 느낌은 마취할 때와 양쪽 난소를 찌를 때다 있었다. 상대적으로 적은 난자가 자란 오른쪽에서 먼저 채취를 했고, 그다음에 왼쪽을 했는데 오른쪽에선 바늘을 한 번, 왼쪽에선 세 번 찌른 듯하다. 어지간하면 소리를 안 내려고 했는데 아! 하고 입에서 튀어나가는 비명의 꼬리를 붙잡아 둘 수 없었다. 흑흑


자극이 강하게 느껴지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몸에서 힘을 최대한 풀려고 했다. 중간에 난자가 이렇게 컸다고 보여주려고 화면을 보라 했지만, 고개를 돌릴 힘을 쥐어짜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시술이 끝나고, 항생제까지 맞고나니 시곗바늘은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렇게 채취한 난자는 10개.


이 중에 몇 개를 얼리고, 몇 개를 쓸 것이며, 몇 개가 생명이 될는지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것은, 언젠가 아이가 갖고 싶어 졌을 때 신체 조건때문에 꿈이 산산조각 나는 일이 없길 바라며 보험 하나를 들었다는 점이다. 저출생을 타파하겠다며 이런 복지를 펼치는 서울시를 응원한다. 아, 그리고 난자 채취할 땐 꼭 수면 마취 하시길.


※ 최종적으로 난자는 9개를 얼렸다. 하나는 미성숙 난자였다고 한다. 기뻐해야하는건지, 슬퍼해야하는건지 애매하지만 동결 비용이 10개 이상부터 올라가는 구조라 10만원 정도 환불받았다. 난자 9개면 수정시켜 이식할 수 있는 게 2개정도란다. 15개를 동결하는 게 적당하다던 의사는 혹시 더 얼리고 싶다면 2~3개월 회복기를 갖고 내원하라고 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러고싶은 마음이 없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었는데 사실은 나도 알게 모르게 꽤나 힘들었나보다. 고생했다 토닥토닥.


※※ 들어간 비용을 정산해보니 300만원에 조금 못 미쳤다. 결혼한 부부가 난임을 인정 받아 난자를 동결하면 병원에서 급여 처리되는 항목이 있다고 한다. 나는 거기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첫 방문에 이뤄진 몇가지 검사를 제외하곤 생돈을 내야했다. 4월 11일 서울시에 모든 자료를 제출했고, 4월 29일 약 3주 만에 지원금134만원 들어왔다. 참고로 시에서 지원하는 항목은 사전 검사비와 시술비라고 한다. 보관료, 동결 이후 진료비 등 난자 채취와 관계 없는 비용은 제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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