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이자 상환하며 투자하기-1
비교적 어렸을 때부터 집을 갖고자 하는 열망을 품은 나는 로또하는 것처럼 서울에 신축 아파트 공고가 뜰 때마다 청약을 넣곤 했다. 그러다 덜컥 당첨된 적이 있는데, 85제곱미터 미만의 아파트는 점수를 매겨 당첨자를 줄 세우지만, 그 이상의 면적은 뽑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정확한 위치도 모르고 청약을 넣었다가 42평짜리 아파트에 당첨됐을 때의 기분이란. 가격은 발코니 확장과 시스템에어컨 설치 등 옵션을 합치면 13억원대. 토요일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파트에 당첨됐다는 문자를 보고 든 생각은 헐, 망했다. 화들짝 놀라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청약 당첨됐대. 어떡하지?
부랴부랴 엄마, 아빠와 함께 모델 하우스를 찾았다. 집은 당연히 넓고 좋았다. 그 당시에 유행하는 분리형 구조였다. 화장실이 딸려있는 방 하나에 현관문을 별도로 설치해 월세를 놓을 수 있다는 마케팅이 적용된 곳이었다. 이어 아파트 공사 현장에 찾아갔는데, 아니 글쎄 엄청난 언덕 위에 있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파트 이름에는 '신촌'이라고 붙어있지만, 그곳은 결코 신촌으로 불려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참고로 주택을 분리하면 2주택으로 잡혀 세금을 더 내야하는 페널티가 후일에 생겼고, 가장 최근 실거래가는 19억으로 신고됐다.
서울에서 자취할 때 7천에 40짜리 다세대주택에 살면서 주차난에 지독하게 시달렸던지라 다음에는 무조건 아파트에 살겠노라 외쳤는데, 그 소원이 이뤄졌음에도 어째 앞길이 막막했다. 일정 평수 이상의 아파트는 중도금 대출을 원천 봉쇄한 정부의 규제 탓이다. 현금으로 8억 정도를 쥐고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당시 내 나이는 20대 후반 그리고 지갑이 투명한 직장인이었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는 옵션만이 남아있었는데, 정부가 규제를 강력하게 시행했던지라, 도움을 받을 경우 국세청의 조사를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란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강도 높은 조사가 뒤따라 언론을 장식했다.
결국 나는 청약통장을 포기했다. 원래는 10년간 재당첨 제한이지만, 평수가 크다 보니 5년으로 깎아주더라. 아이고~ 고맙습니다 나라님! 새로운 청약통장에 다시 10만 원씩 붓고 있다보니 정권이 바뀌어 이런 제한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세상사가 어떻게 흘러갈지 정말 모를 일이다. 그러다 해외에서 일하는 동안 돈을 어느 정도 모으고 나니 빚을 내어 아파트를 살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빚을 내면 퇴사를 못할까봐 망설였던 나를 내 집이 갖고싶다는 욕망이 이겼다 . 대출을 일으키고 1년은 거치기간이어서 큰 부담이 없었는데 원금 상환이 시작되니 삶이 어째 점점 팍팍해지기 시작했다.
은행에 빚을 갚고, 회사에서 소액이나마 받은 대출도 갚으면 월급이 반토막 난다. 물론 그 예산 안에서 사는 게 힘들지는 않다. 다만 뭔가를 사고 싶거나 하고 싶을 때 한 번 혹은 여러 번 망설이게 된다. 외국으로 여행을 갈 때도, 옷이나 신발을 살 때도 망설인 적이 크게 없는데 이젠 심사숙고를 해야한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지만, 돈이 없으면 행복할 수도 없다고 믿는 내가 두달을 이렇게 살아보니 타계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여 서울에 거주하는 20~30대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재무설계 상담을 신청했다. 총 3회 상담을 받을 수 있고, 보고서도 정리해주나 보다. 앞으로 이 상담에서 배운 내용을 정리하고, 어떻게 실행에 옮길 것인지 적어보고자 한다. 첫 상담에서는 현재 상황 점검에만 30분을 보냈다.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내 재무상태부터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했는데, 이걸 준비하는 과정이 좋았다. 내가 얼마의 돈을 벌고 있고, 그중 얼마를 소비하고 있는지 스스로 깨닫는 게기였기 때문이다.
난 그간 월급에서 돈이 남으면 무조건 주택담보대출 원금 상환에 썼는데 그게 능사는 아니라고 한다. 일단 여윳돈이 생기면 단기 적금을 하든, CMA나 MMF와 같이 비교적 안정적인 투자로 금융 수익을 조금이라도 낸 뒤에 목돈을 만들어 한 번에 상환하는 방식을 추천받았다. 회사에서 소액이지만 저리로 받을 수 있는 대출이 있는데 그걸로 투자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간 평균적으로 200만 원 정도 여윳돈이 남았는데 이젠 이자를 제공하는 저금통을 만들려고 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회사에서 번 돈을 예금, 적금, 채권에만 넣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작정 저축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보려고 한다. 일단 이것저것 제하고 남은 돈의 50%는 ISA에서 투자를 하려 한다. ISA는 그간 100만 원 안팎으로만 굴려왔는데 월급에서 정기적으로 이체를 시켜 투자하는 돈을 불리는 게 목표다. 매년 받을 수 있는 세액공제가 한도가 900만 원이니 연금저축에 600만 원, 개인 IRP에 300만 원을 넣으려 한다. 한 달로 따지면 연금저축에 50만 원, IRP에 25만 원을 내는 것.
다음 상담 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은 이렇다. 우선 대출 갈아타기. 처음 주담대를 받았을 때보다 금리가 0.5%포인트 정도 낮아져 지난 4월부터 대출 갈아타기를 고려했었다. 기존 대출은 상환 기간이 40년인데, 갈아타면 이게 30년으로 줄어든다. 중도상환 수수료와 세금 등 차 떼고 포 떼고 하면 갈아타는 이득이 손에 잡히지 않아 마음을 접었다. 이자는 줄긴 하지만, 내가 당장 은행에 갚아야 하는 금액이 심지어 소액 늘어난다는 게 부담이었다. 아직 2년은 볼모로 잡혀있게 만드는 중도 상환 수수료도 부담스럽기도 하고.
또 하나 궁금한 건 부동산 갈아타기 시점. 월급의 상당 부분을 은행 빚 갚는 데 쓰면서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속도가 훨씬 빠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테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오래 거주할 생각이 없고, 신축의 티를 벗어낼 즈음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게 큰 그림이다. 집값이 얼마만큼 올랐을 때 손을 떼야하는 것인지가 관건인데. 어쨌든 더 좋은 곳으로 가고자 한다면, 그 집값은 더 비쌀 테니 이 모순을 어떻게 해소하면 좋을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