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일근 May 18. 2022

그램 이야기

딸을 위한 노트북

서문


LG 전자에서 지난 10년 동안 개발된 제품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것이 그램 노트북이다. 세계 최고 기업인 애플, 삼성과 치열한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고 성공을 거둔 유일한 제품이다. LG 스마트 폰은 이들과 경쟁에서 밀려서 사업을 철수했지만 그램 노트북은 살아남았다. 저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개발한 그램이 어떻게 탄생을 하게 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는지 R&D 관점에서 썼다.  나 또한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읽고 끊임없이 사색을 하면서 그램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새로운 사업과 벤처를 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1. 그램의 시작


2012년이 끝나가던 어느 날, 본부장에게 전화를 받았다.  내가 LG전자 IT사업부장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이었다.  다소 부담스러운 자리였지만 5년 넘게 TV연구소장으로 있다 보니 내게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새해가 밝으면 새로운 도전이 기다린다는 생각에 설렘과 긴장이 밀려왔다.


IT사업부는 PC와 모니터, 상업용 디스플레이를 제조 판매하는 사업부였는데 그해에 1200억 적자가 나서 사업부장이 퇴임하고 그 후임자로 내가 임명된 것이다.  전임 사업부장은 예상치 못한 퇴임으로 충격과 상처가 컸는지 연락을 끊고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그룹 내에서 나름 인정받는 임원이었는데 부진하던 PC사업을 맡아 고전하다 보니 결국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분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기업에서 임원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맡은 사업이 잘 되어야 한다.  임원 개인이 아무리 유능해도 사업에서 성과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사업이 성공하려면 실력과 함께 운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사업이 부진하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마트폰 사업이다.  LG그룹은 스마트폰을 살리기 위해 그룹에서 가장 능력 있는 임원들을 보냈지만 결국 성과를 내지 못하고 모두 옷을 벗었다.


골칫덩이 사업


내가 부임하던 2012년 LG전자의 IT사업부는 매월 적자가 100억 원에 달했다.  그러다 보니 임원들은 매월 CEO의 현장경영에서 무섭게 질책을 받았다.  그것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였다.  특히 PC사업은 매월 50억 원 적자를 내고 있었다.  모니터까지 합치면 매월 적자 100억 원.  1년이면 1200억 원이다.  당시 TV사업은 매출이 15~16조 원이었지만 수익률이 낮아서 이윤은 3~4천억 원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PC와 모니터 사업에서 적자가 천억이니 그룹 입장에선 비상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LG의 PC사업은 20년 동안 돈을 벌지 못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장 유망한 사업이어서 우수한 인재들이 PC와 모니터 사업부에 지원했다.  그렇게 큰 기대 속에 사업을 추진했지만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서 수익을 올리기 어려웠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나오기 전까지 PC는 IT사업의 핵심 기기였다.  1990년대부터 흑자를 위해 노력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적자가 지속되니 규모를 줄이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  부임 당시에는 몰랐는데 그때 그룹에서는 PC사업을 정리하려 했던 것 같다.  패전 직전 마무리 투수로 등판한 격이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렇게 20년 이상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PC사업을 맡으라고 하니 막막하기도 했지만 한번 도전해보자는 의욕도 솟았다.  IT사업부장 임명 첫날, 시판 중인 LG 노트북을 들고 퇴근했다.  저녁식사 후 식탁 위에 제품을 올려놓고 보니 영 별로였다.  LG의 노트북 중에서 가장 슬림한 프리미엄 모델이란 것이 엉성하기만 했다.  이 정도밖에 못 만드는 이유가 뭘까 궁금해졌다.  특히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디자인이었다.  노트북 밑면에 방열을 위한 공기 순환 홀이 너무 많고 접합 나사가 밖으로 드러나 있어서 외관상 보기 싫었다.  당장 디자인부터 뜯어고치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