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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알 Aug 23. 2020

과장된 서민의식의 범람

중산층 이야기2, 왜 고소득층도 스스로 빈곤층이라 생각하나? 


따분할 정도로 길게 이어진 장마가 강을 사납게 만들었습니다. 넘친 강물이 둑을 부쉈고 재산을 부쉈고 지류 인근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너뜨렸습니다. 몇 년 동안 범람이라는 말을 이렇게 많이 들어본 적이 있나 싶습니다. 섬진강의 범람, 낙동강의 범람, 북한 황강댐과 임진강의 범람, 싼샤댐의 범람. 언젠가 나일강의 범람이 인근 농토를 비옥하게 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른바 범람의 순기능인데, 이 같은 이면에도 큰 강의 범람은 고대로부터 자연재해의 일종이었지 않습니까? 인간의 노력을, 인간의 살림살이를 순식간에 파괴할 수 있는 급격한 불행. 갑작스런 재해는 어떤 합리적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불행이었고, 당연히 범람이라는 단어에는 수재민의 슬픔과 두려움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범람이 긍정적 의미를 지니는 건 당연히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가 과도해서 넘쳐 흐른다는 뜻인데 그건 곧 균형을 이탈한 상황을 뜻하니까요. 사전적 정의를 보면 범람의 부정적 의미가 명확해집니다. 범람은 세 가지 사전적 정의가 있습니다. 첫째 ‘큰물이 흘러넘침.’ 둘째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이 마구 쏟아져 돌아다님.’ 셋째 ‘제 분수에 넘침.’ 첫 번째 정의는 ‘넘치는 물’에 관한 물질적이고 관찰적 서술입니다. 두 번째 정의는 물이 넘치는 것처럼 무언가가 넘치긴 넘치는데, 그게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는 서술입니다. 즉 범람이 사회적 용어로 사용될 때는 ‘좋다’, ‘나쁘다’, ‘바람직하다’, ‘바람직하지 않다’ 라는 가치판단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본 뜻은 도덕적으로 좋지 못하다는 숨은 뜻을 포함하고 있고요.


재미 있는 점은 ‘범람’이 내포한 부정적 뉘앙스의 원리가 제 생각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사전적 정의 중 두 번째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게’ 돌아다니기 때문에 문제라는 서술입니다. 과유불급이라고 무엇이든 간에 ‘너무 넘쳐서’ 문제인 게 아니라, 애초에 잘못된 것들이 넘쳐서 문제라는 겁니다. 두 가지가 잘못된 거죠. 첫 번째로는 애초에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이 존재한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그게 마구 쏟아져 돌아다닌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범람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그 범람하는 녀석은 당연히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겠죠. 또 그런 주제에 쓸데없이 넘쳐 흐르고 있을 겁니다. 즉 만연하고 있을 겁니다.


계층하향인식이 우리 시대정신?=이 범람이라는 키워드에 꽂힌 이유는 제가 우리 사회 모두가 공유하는 삶의 태도로 한 가지를 의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사에서나, sns에서나, 주변에서나 다 2020년 한국인들은 모두 이런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계층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의 의식과 태도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은 그 녀석. 1편을 보신 분들은 대충 예상하셨겠죠? 바로 ‘계층하향인식’입니다. 특히 요즘처럼 억단위로 주택자산 비교가 언론보도에 바로바로 반영되는 세상에서는 자기 계층에 대한 판단이 당연히 빨리빨리 이뤄질 겁니다. 문제는 그 계층판단이 ‘하향인식’이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었던 거죠.


실제로 통계로 보면 작년 기준으로 응답자의 95%가 스스로를 중산층이거나 그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는 조사결과가 있습니다(문화체육관광부 한국인의 의식 및 가치관 조사). 혹시나 해서 다른 통계들도 같이 봤습니다. 다 비슷하더군요. 재미 있는 설문결과를 하나 가져와보겠습니다. 2018년에 OECD 기준 중산층(중위소득의 50-150%) 대상으로 NH증권100세시대연구소에서 조사한 결과입니다. OECD 기준 중산층 응답자 55.7%가 스스로를 빈곤층으로 규정했다고 합니다.


중산층 의식이 소멸하는 현상은 IMF이후 꾸준히 지속된 경향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산가격 급등과 자산소득이 부의 분포에서 중요해지면서 더더욱 심화되는 중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2010년대 들어 중산층 의식 소멸은 너무 두드러집니다. 한국인의 의식 및 가치관 조사에서 스스로 중산층이라 믿는 비율은 △2013년 43.9% △2016년 38.8% △2019년 34.6%로 하락 추세입니다. 반면 스스로 중산층보다 못하다고 믿는 비율은 50.9%, 53.1%, 59.8%로 9년 사이 약 10%가 늘었습니다. 그러니까 기존까지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중 상당수의 ‘계층 하향 인식’이 두드러지고 있는 셈입니다.


무엇이 계층 소속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지 찾아봤습니다. 연구결과는 소득, 생활수준, 교육수준, 고용여부 등이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몇몇 연구는 아예 주택, 부동산 자산을 콕 집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고 있다는 게 특기할 만합니다. 2006년 조동기 교수 연구, 2013년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 등 연구를 종합해보니 ‘부동산 자산의 규모’, ‘자가주택 보유 여부’ 등이 크게 영향을 준다고 하네요. 부동산자산 급등, 자가주택 없음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은 분명 중산층이 스스로 저소득층이라 여기는 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라 이 같은 추세가 심화될 개연성 역시 크겠죠.


우리 사회 중간정도의 경제적 지위를 누리는 분들의 계층 하락 의식이 뚜렷하죠?


고소득층에도 '나는 빈곤층' 응답자가 있다=그런데 진짜 신기한 경향성은 고소득층과 고자산보유계층에게서 눈에 띕니다. 고소득이나 고자산보유라고 해서 우리가 나혼자산다에서 보는 영앤리치 셀럽들이나 SNS나 기사에 소개되는 그런 분들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실수령액 월 800만 원 정도에 순자산으로 한 6억 원 이상 보유한 분들을 얘기하는 겁니다. 왜 800에 6억이냐. 계층의식을 조사한 설문 중 자산 보유 수준과 소득 수준을 모두 따져서 분석한 게 2017년 MBC와 국회의장실이 공동조사한 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설문이 응답자를 소득에 따라 분류할 때 최고 범주를 800만 원 이상으로 뒀고 자산의 경우에는 6억 원 이상으로 뒀기 때문입니다.


(사실 엄밀하게 확인하려면 그보다 더 높은 소득 수준,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한 가구를 세부항목으로 나눠서 봐야 합니다. 800-900만 원, 900-1000만 원 등 더 항목을 만들어야 하고 자산 경우에도 6-7억, 7-8억, 8-9억 등등 더 쪼개서 확인해야 하는데… 일단은 자료가 없습니다 ㅜㅜ 800만 원 이상과 6억 원 이상으로 뭉쳐서 확인해보죠ㅜ)


어떤 분들은 아니 월 800만 원에 6억 이상 보유 가구가 무슨 고소득, 고자산 보유 가구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하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계금융복지조사 기준 월 가구 소득 800만 원 이상은 상위 11.7%. 순자산 보유 6억 이상은 상위 16.7% 가구에 해당합니다. 이 분위를 대체 뭐라고 해야할지 애매합니다. 소득이랑 자산에서 각각 상위 10-15%정도의 가구인데 중소득, 중자산보유 가구라고 하기엔 중위소득과 너무 큰 차이가 납니다. 그렇다고 고소득, 고자산보유라고 하기엔 ‘고’라는 접두어가 주는 압도적인 느낌은 없죠? 그래도 일단 분위에 따라 고라는 접두어를 붙여보겠습니다.


이 가구들이 대체 어땠길래 신기하다는 걸까요? 먼저 월 소득 800만 원 이상 가구 응답자 중 82.6%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인식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그 다음입니다. 이 중 11.4%는 스스로를 ‘빈곤층’ 집단으로 규정했습니다. 처분가능 월 소득 800만 원이면 세후 연봉 9600만 원 이상이니 세전으로 치면 1억을 상회할텐데 스스로를 빈곤층이라고 했단 말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월 소득 600-800만 원 가구 응답자, 그러니까 세후 연봉 7000-9000만 원 가구 응답자의 15% 역시 스스로 빈곤층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비율은 엄청 적게 나온 겁니다. 2018년 NH증권100세시대 연구소 조사에서는 OECD 중위소득 200%를 넘게 버는 사람들의 22.3%가 스스로를 빈곤층이라고 인식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MBC 조사에서는 “4인가구 기준으로 얼마나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어야 중산층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결과가 재미있습니다. 월 소득 600-800만 원 가구랑 800만 원 이상 가구들은 타 구간 가구들에 비해 기준이 많이 높습니다. 10-15억이 30%정도로 비중인 제일 높습니다만, 20억 이상이라고 대답한 비율이 각각 11%와 12.8%입니다. 타 구간 가구들에서 ‘20억 이상 가져야 중산층’이라고 대답한 사람들은 5% 정도입니다. 6억 이상을 보유한 가구들의 응답은 더 심각합니다. 6억 이상 보유 가구들 중 15%가 20억 이상 있어야 중산층이라고 대답했는데 이는 타 구간에 비해 3배가 넘는 규모입니다. “4인가구 기준으로 얼마나 많은 소득을 벌어야 중산층인가?”하는 질문도 결과는 비슷합니다. 중산층의 최저선으로 월 800만 원 소득을 꼽은 비율은 3.5%(200만 원 미만)-> 3.9%(200-400만 원)-> 7.6%(400-600만 원)-> 15.9%(600-800만 원)-> 28.4%(800만 원 이상)로, 돈을 많이 벌수록 선택비율이 배로 늘어납니다.


즉 돈을 많이 벌고 돈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중산층의 최저기준은 높아집니다. 그렇기에 중산층도 못 된다는 고소득, 고자산보유층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다룬 건 고소득층이 스스로를 ‘빈곤층’으로 인식하는 경우입니다. 사실 설문 결과를 보면 이들의 85% 이상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합니다. 10-15%가 빈곤층이라고 생각하고요. 한 5% 내외만이 본인을 상류층 혹은 부유층이라 봅니다.


구름 위에 있는 대감집과 비교하면 당연히... =이전 글에서 2019년 문체부 자료를 근거로 전체 응답 국민의 95%가 스스로를 중산층 이하라고 본다고 했죠? 세후 억대연봉을 벌거나 6억 이상 자산보유가구도 똑같습니다. 95%가 중산층 이하라고 생각하는 것이라 봐도 될까요? 중산층이냐 그 이하냐 비율만 다를 뿐이지 계층하향인식은 중산층, 부유층에 전반적으로 퍼져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앞서 말한대로 ‘계층하향인식의 범람’이라는 명제가 성립하는 것일까요?


저는 월 800만 원을 벌고 순자산으로 6억을 보유한 사람들이 왜 스스로를 빈곤층이라 생각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 분들에게는 중산층 기준이 대체 왜 그렇게 높은지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순자산 20억 원 보유가 중산층의 최소기준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앞선 글에서는 사람들이 중산층에 대한 이미지를 ‘강남’, ‘아파트 보유’, ‘돈 걱정 없는 삶’으로 고정시켰기 때문에 그에 따른 경제적 기준이 높아졌다고 말했습니다. 이 분들 역시 삶이 팍팍하기 때문에, ‘아 그렇다면 여유롭고 안정된 중산층의 삶이란 최소 우리 집보다 더 경제적 형편이 나은 경우겠구나’하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스스로 서민의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서민보다 더 잘사는 이미지를 가진 중산층의 계층문턱을 과도하게 높이는 것일까요? 확실한 건 그보다 잘 사는 삶이라는 게 상위 10%, 어쩌면 상위 5%보다 더 안쪽에 있는 부유층의 삶이라는 겁니다.


이들의 계층하향인식의 비밀을 풀기 위해 연구자료를 뒤졌습니다. 그런데 이들만 정밀하게 집중해서 수행한 연구나 조사는 없었습니다. 다만 김창환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님이 칼럼에서 그에 대한 의견을 밝힌 것은 있습니다. 아래 내용은 칼럼이 나온 2017년 기준의 이야기입니다.


한국은 OECD 타 국에 비해 소득 상위 10%(고소득층)와 소득 상위 50%(중간층)의 격차가 크지 않다고 합니다. 2017년 기준 소득 상위 10%와 50%의 비교지표인 P90/P50이 OECD 국가 중 20위에 해당합니다. 즉 두 집단의 소득 격차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뜻입니다. 김 교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의 (중)상층이 자신을 서민으로 인식하는 이유는 아마도 여기 있을 것이다. 상위 10%에서 중간 50%의 격차가 상대적으로 작다. 상위 10%가 경제적으로 윤택한 계층임에는 틀림없지만, 중간 50%에 비해 특출하게 부유한 것은 아니다. 반면 상위 1% 그룹은 저 멀리 있다.”


자산의 경우는 어떨까요? 최근 3년을 기준으로 한 자산 상위 1%에 대한 상세 데이터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2016년에 김낙년 교수님이 분석한 자료가 있는데 이건 7년 전 자료이긴 합니다. 이에 따르면 개인당 순자산 10억 정도가 상위 1%이므로 가구 단위로 보면 자산 40억 규모에 소득 1억 6천 정도가 상위 1%라고 볼 수 있겠네요. 당장 부동산 가치가 크게 올랐기에 1%의 문턱 역시 더 높아졌을 개연성이 큽니다. 8억과 40억(아마도 50억)가 10%와 1%의 차이입니다. 또 8억과 2억 5천의 차이가 10%와 50%의 차이입니다. 상위 10%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보통사람들과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8억<->2억5천), 상위 1%와는 엄청난 차이(8억<->40억)가 있다고 느낄 개연성이 큽니다.


이 말은 자산 및 소득 상위 10%가 경제적 지위를 비교하는 준거집단으로 상위 1%의 초상류층을 상정하고 있다는 뜻일까요? 제가 자꾸 의문문으로 명제를 제시하는 이유는 그것을 완벽하게 증명할 정도로 정교한 연구의 역량이 제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명제를 완벽하게 증명하는 연구도, 조사도 없는 실정입니다. 그렇기에 간접적 자료를 활용해 정황상 그러하다는 판단을 조심스럽게 제안할 뿐입니다.


과장된 서민의식의 범람=무엇이 범람하고 있는 걸까요? 계층하향인식과 함께, '과장된 서민의식'이 범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위 10%의 사람들이 아무리 상위 50%와의 자산, 소득 격차가 크지 않아서 그들과 차별화하기 어렵다고 해도, 그들은 경제적으로 윤택한 계층입니다. 그들의 80%가 50% 중위소득, 자산 집단과 스스로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10-20%는 그보다 못한 빈곤층과 스스로를 동일시하고 있죠. 다시 상위 20-40%집단에서 40-50%는 그보다 못한 빈곤층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계층하향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 끝에는 서민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빈곤층이 있습니다. 모두가 빈곤층이라 생각하니, 모두가 배려받을 자격이 있고, 아량과 양보를 베풀지 않아도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합니다. 상위 10%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신이 서민이라고 투정을 부리는 형국입니다. 이 같은 서민의식은 '이익을 누릴 권리'로 이어집니다. 자신이 받을 이권은 자신이 서민이므로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각자도생의 사회가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이와 같은 각자도생 사회, 과장된 서민의식이 범람하는 홍수 속에서 누가 가장 큰 피해자일까요? 저는 진짜 서민, 즉 진짜 빈곤층이 그 피해자라 봅니다. 한국은 상위 50%와 상위 90% 즉 중간층과 하위 10% 소득층인 '진짜 빈곤층' 사이 양극화가 상대적으로 큰 국가입니다. OECD 국가 중 그 양극화 정도를 측정하는 P50/P10이 2018년 기준 최악입니다. 한국은 지난 세월동안 하위 50% 내에서 양극화가 심화된 특별한 국가입니다. 즉 모두가 자신이 이 양극화 사회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시장통 탓에 진짜 피해자가 가려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상위10% 분들은 상위 1%처럼 그들의 자식을 그들과 똑같은 가격의 집에 살게 해줄 수 없습니다. 20억 집에 사는 데 자식에게 20억 집을 주려면 40억이 필요하니까요. 그러나 누군가는 자녀의 집을 해줄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워할 때 하루하루 내일의 생존과 안녕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서울 구석에 있고, 산과 붙어 있는 슬레이트촌에 있고, 지방에 있습니다. 또 그들은 각양각지의 고시원에 있고 원룸에 있고 공장에 있습니다. 빈곤지대를 도시개발 와중에 전부 밀어버린 우리사회에선 이들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안수찬 전 기자의 기념비적 명문을 읽어보세요. https://1boon.kakao.com/h21/poverty 그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최상위 1%의 삶은 우리 눈에 너무 잘 보입니다. 잘 보이는 걸 넘어 그들의 삶이 우리의 지향으로 각인됩니다. SNS, TV 등 매체를 통해서 그들의 삶이 들어오죠. 우리는 그들처럼 되지 못하는 스스로가 미워집니다. 밤마다 자기혐오를 반복하고 그들의 삶은 우리의 삶에 더욱 깊숙이 파고듭니다. 그러나 진짜 빈곤층의 가난은 그들의 삶을 옥죄며 감정을 억압하고 분노, 절망, 체념을 연이어 선물합니다. 과장된 서민의식이 범람해 홍수가 나서 이들이 쓸려 사라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슬픔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범람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과장된 서민의식 자체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니까요. 우리가 제일 앞에서 봤듯이 범람이라는 말은 넘처 흐르는 무엇이 근본적으로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전제를 둡니다. 범람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과장된 서민의식의 '범람'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두고 배려해야할 사람들이 누군가요? 삶의 불행이 일상화된 사람들이 누군가요?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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