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너머에서 발견한 두 천재의 이야기
왜 우리는 아직도 펠릭스 젬덱스와 맥스 박을 GOAT라고 부를까요?
정답은 명확합니다. 기록 그 자체로 시대를 지배했기 때문이죠. 젬덱스는 한 시대의 기준을 세운 선수, 맥스는 그 기준을 다시 정의한 유일한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죠.
오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스피드큐브의 천재들〉을 2023 월드챔피언십 참가자의 시선으로 다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다큐를 오랫동안 보지 않았습니다. 이미 많은 리뷰 영상을 봤고, “굳이 또?”라는 마음이었거든요. 넷플릭스를 구독 중이었음에도 이 다큐가 아닌 다른 콘텐츠에 집중했죠.
많은 사람들이 이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로 큐브에 입문한 사람도 많고 인터넷에는 많은 리뷰가 있죠. 하지만 진짜 큐버의 시선에서 작성된 리뷰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리뷰를 통해 묘하게 의미가 잘못 전달되기도 하고 아예 틀린 내용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구독 기간이 끝나가던 어느 날, 더 미루지 않고 40분짜리 이 다큐를 끝까지 보게 됩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이 작품은 기록을 나열하는 다큐가 아니라, 관계를 기록한 다큐라는 걸.
이 다큐는 2020년 7월,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치던 시기에 공개됐습니다. 당시 스피드큐빙계에는 두 명의 슈퍼스타가 있었죠. 펠릭스 젬덱스, 그리고 맥스 박. 이 둘이 큐브에 입문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다큐멘터리는 시작됩니다.
펠릭스 젬덱스는 어릴 적부터 큐브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부모님은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지나가는 관심 정도로 생각했지만 젬덱스는 달랐죠. 수많은 세계기록을 경신하며 매스컴의 많은 관심도 받았습니다. 2010년부터 시작해, 젬덱스는 121회에 달하는 세계기록을 경신하며 현재까지 유일한 3×3×3 월드챔피언십 2연패, 그리고 한때는 3×3부터 7×7까지 평균 세계기록을 동시 보유하기도 했죠. 그는 단순한 강자가 아니라, ‘한 시대’의 기준점이었습니다.
물론 각 종목마다 강자들은 있었습니다. 4×4에는 세바스찬 바이어, 빅큐브에는 케빈 헤이즈. 그럼에도 젬덱스는 어느 종목에 가져다 놔도 최상위권에 서는 선수, 즉, 큐빙이라는 세계의 공기 같은 존재였죠.
어느 날, 젬덱스는 유튜브를 보다가 어떤 소년의 4×4×4 원핸드 영상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한 손 기록을 깨기 위해 두 시간 넘게 큐브를 잡고 있었다고 말하죠. 그 순간부터 젬덱스에게 ‘맥스 박’이라는 이름이 강하게 각인됩니다.
맥스는 어릴 때부터 한 가지에 몰입하면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폐 스펙트럼, 거기에 소근육 발달도 지연되어 손으로 하는 행동이 쉽지 않았죠. 그런 그에게 큐브는 장난감이 아니라 치료에 가까운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맥스는 큐브에 깊이 빠져들었죠.
부모님은 사회성 발달을 돕기 위해 한 큐브 대회에 참가시켰습니다. 줄 서기, 차례 기다리기. 정말 기본적인 것부터 배울 수 있게 한 겁니다. 그런데 대회장에서 처음 보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맥스가 다른 선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 선수의 기록에 대해 이야기한 겁니다. 부모님이 오랫동안 바랐지만 이루지 못했던 행동, “대상을 가리키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 그 순간이, 큐브를 통해 가능해졌습니다.
그렇게 맥스는 점점 실력을 쌓아나갔고 4x4x4에서 7x7x7까지, 그리고 젬덱스의 전유물이었던 3x3x3 평균 세계기록과 2017년 월드챔피언십 3x3x3 우승 트로피까지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맥스의 부모님들에게는 이보다 더 기쁜 무언가가 있었죠. 같이 포디움에 오른 다른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본인의 상장을 돌려 잡는 것. 뭐가 대단한 건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이 자폐증을 가진 사람의 부모에게는 가장 큰 목표라고 하네요.
맥스는 젬덱스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사인과 사진을 요청한 선수도 바로 젬덱스였죠. 보통이라면 자신의 세계기록을 위협하는 신예를 경계할 법하지만, 젬덱스는 달랐습니다. 맥스가 기록을 깰 때마다 축하 메시지를 보냈고, 언제나 존중으로 대했습니다.
2019년, 젬덱스의 고향 호주 멜버른에서 월드챔피언십이 열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승 후보로 젬덱스와 맥스를 꼽았죠.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예상과 달랐습니다. 젬덱스는 2011년 첫 출전 이후 처음으로 단 한 종목도 우승하지 못했고, 맥스는 무려 다섯 종목에서 우승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3×3×3 결승. 3회 측정인 것처럼 설명하는 리뷰가 종종 있는데 3회 측정이 아니라 5회 측정 후, 최고/최저 기록을 빼고 평균으로 순위를 매깁니다. 한 번의 ‘미친 기록’보다, 꾸준함이 더 중요한 방식이죠. 그 결과, 우승 후보 두 명 모두 포디움에 오르지 못합니다. 대신 필립과 세바스찬 형제의 동반 포디움, 그리고 루 해법으로 준우승을 차지한 숀까지, 의외의 이름들이 포디움을 채웁니다.
몇몇 사람들은 젬덱스와 맥스가 좋지 못한 성적을 거뒀다고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기록만 보면 젬덱스와 맥스의 성적은 결코 나쁘지 않았습니다. 우승자와 6위의 격차가 0.11초에 불과했을 정도로, 치열한 결승전이었을 뿐입니다.
맥스의 부모님은 걱정했습니다. 정서 발달 수준이 8세 수준인 맥스가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과거에는 안 좋은 기록에 대회장에서 울었던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맥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3위 안에 들지 못해서 우리는 더 강해질 거야.”
무언가를 망치면, 그로 인해 더 강해진다는 젬덱스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젬덱스는 주먹 인사로 화답하죠.
사실, 젬덱스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자신의 고향에서 열린 월드챔피언십. 기대에 비해 아쉬운 결과. 인터뷰 도중 눈물을 보이기도 할 정도니까요. 맥스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데는 서툴렀지만, 부모님은 맥스가 젬덱스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합니다. 직접적인 위로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맥스는 젬덱스를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스피드큐브의 천재들〉은 큐브에 관한 다큐가 아닙니다. 두 천재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큐버에게 더 깊게 다가옵니다. 젬덱스와 맥스는 큐브라는 도구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쟁을 보여줬습니다. 경쟁이 우정으로, 우정이 다시 서로의 성장을 밀어 올리는 선순환.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건 기록뿐만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들의 우정은 현재진행형입니다. 2025년 시애틀에서 열리는 월드챔피언십 홍보를 위해 맥스와 젬덱스가 시애틀 매리너스 시구와 시포를 맡기도 했죠.
2020년 이후, 스피드큐빙 씬은 더 빨라지고 더 넓어졌습니다. 새로운 종합 강자들이 등장했고, 특히 어린 신동들의 폭발적인 성장은 이 스포츠가 얼마나 넓은 세계인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규정 위반으로 기록이 줄줄이 취소되는 장면들을 보고 있자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젬덱스와 맥스가 우리에게 보여준 건 기록만이 아니었는데. 숫자는 언제든 갱신되지만, 경쟁하면서도 서로를 밀어 올리는 그 방식은 생각보다 쉽게 이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2023년 월드챔피언십에서 저는 젬덱스와 맥스 모두에게 사인을 받았습니다. 젬덱스의 사인은… 이제 조금씩 지워지고 있네요. 하지만 저는 경쟁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장면, 서로를 위해 더 강해지는 두 사람. 그 장면들만큼은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큐브는 그저 장난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여섯 면이 맞춰지는 찰나, 그 사이에는 누군가의 인생과 열정, 그리고 우정이 담겨 있습니다.
6년 늦게 본, 하지만 큐버의 시선으로 다시 본 〈스피드큐브의 천재들〉 리뷰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밤,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큐브를 다시 한번 꺼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