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들

동의하지 않아도 침묵을 선택하는 이유

by 라이벌 큐버

여러가지 주제로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쓰는 글은 큐브에 대한 이야기죠. 이제 두 자릿수 라이킷을 충분히 노려볼 수 있는 정도의 규모가 된 것 같은데요. 가끔 라이킷을 누른 작가님들의 브런치에 들어가서 어떤 글을 쓰나 둘러보곤 합니다. 대형 작가님들도 많더라고요.


그런데 들어가서 글을 읽으면 공감보다는 의문이 먼저 들기도 합니다. 사회적 문제로 여겨질 수 있는 무거운 주제에 대해 너무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면서 반박은 원천차단하는 식의 글이 종종 보이기 때문이죠.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은 없나 싶어 댓글을 보면 반박은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름 생각해봤습니다. 왜 그런 공간이 만들어지는 걸까요.

첫 번째 의문부터 답을 해 봅시다. 단정적인 글이 어떻게 규모를 키우는가.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결정되지는 않겠죠. 하지만 한 가지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있습니다.


경제학자 다니엘 카너먼은 자신의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지적 편안함'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인지적 편안함에 대해 쉽게 설명하면 이해하기 쉽거나, 익숙하거나, 모호하지 않거나, 빠른 판단이 가능한 상태에 있을 때 사람은 그 정보에 더 높은 호감도와 신뢰를 보인다는 겁니다. 반대로 복잡하거나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는 상태의 정보는 이해하는 데 에너지를 더 많이 쓰게 되죠.


단정적인 글은 이런 면에서 인지적 편안함 상태를 쉽게 만들죠. 그것이 맞는지 아닌지만 판단하면 되는 글을 읽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에너지만 써도 됩니다. 하지만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글이라면 상대적으로 독자가 생각을 많이 해야 하죠. 더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더 큰 인기를 얻는다면 그 원인은 인지적 편안함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단정적인 글이 더 쉽게 확산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그 다음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제 두 번째 의문으로 넘어갑니다. 왜 공감하는 사람밖에 남지 않았을까. 그 글을 본 모든 사람들이 그 글에 동의해서? 그랬다면 이 글을 쓸 일도 없었겠죠. 반박이 사라지는 가장 근본에 가까운 이유를 저는 글의 서술 방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는 그 글이 원천봉쇄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장에 대한 반박을 다루기보다, 그 반박을 할 사람의 입장이나 동기를 미리 규정해버리는 방식이죠.


이런 형태의 글이 매우 단정적인 어조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했죠. 사실 그에 더해 '이 주장에 반박하는 사람은 전부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놓고 써놓는 경우도 있고 은근히 숨어있기도 합니다. 이것을 독자가 눈치챈다면 반박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작가가 반박을 절대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글에 굳이 반박을 남길 이유가 없으니까요. 이런 글에 반박 의견을 작성해봤자 얻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작성자가 바뀔 가능성이 낮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나면 반박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정치학자 노엘 노이만이 주장한 침묵의 나선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 지배적인 여론과 일치하면 자신 있게 말하지만, 소수 의견이라고 판단되면 고립되는 것이 두려워 침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정 글에 공감하는 댓글이 많다면 공감이 다수, 반대는 소수가 되겠죠. 반대 의견을 내면 그 공간에서 고립될 지 모른다는 공포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반박은 사라지고 공감과 동조만이 남게 됩니다. 한 번 만들어진 이 분위기는 반박을 더욱 어렵게 만들죠.


그리고 이는 최종적으로 그 글을 보는 사람들, 심지어 작가에게까지 확신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가 주장한 사회적 증거의 원리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수가 하는 행동이 ‘옳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선택을 따르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감 댓글을 달고 라이킷도 높은 수치를 보인다면 마치 그것이 옳다는 느낌을 주게 합니다. 논리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으니 옳겠지 라며 비판의식을 내려놓게 되는 겁니다. 특히 익명으로 비공감을 표시하는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 브런치라는 공간은 이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지도 모릅니다.


비판이 사라진 환경은 독자보다 작가에게 더 치명적입니다. 작가는 반박이 없는 댓글창을 보며 자신의 생각이 보편적 진리라는 합의 착각 효과에 빠지게 됩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작가는 점점 더 강한 확신과 단정적인 어조를 사용하는 확증 편향의 루프에 갇힙니다. 규모는 커졌을지 몰라도 지적 겸손함은 사라지고, 글은 소통의 도구가 아닌 자기 확신을 전시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맙니다.


사실 저도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을지 모릅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요. 단정적인 어조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테고, 반박을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서술 방식에 은근히 스며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도 틀릴 수 있습니다. 제가 분석한 원인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고, 더 정확한 설명이 있을 수도 있죠.


다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감 댓글이 많다는 건 그 글이 옳다는 증거가 아닐 수 있다는 것. 반박이 없는 공간이 언제나 반박할 필요가 없어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어쩌면 우리는 공감의 수보다, 그 글에 질문이 남아 있는지를 더 먼저 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좋아요' 뒤에 숨겨둔 진심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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