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한 비판에 공감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전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반박을 차단하는 단정적인 글이 인기를 얻고 지지를 얻게 되는 과정에 대해 생각해봤죠.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이킷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낯익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전에 올린 그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한 바로 그 작가였습니다. 그 글에서 분석한 현상의 당사자가 라이킷을 누른 겁니다.
처음엔 단순한 아이러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비판하는 대상이 저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준 것이니까요.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게 단순한 해프닝이 아닐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이 사람들이 내 글을 제대로 읽기는 했을까.
읽었다면 본인 이야기라는 걸 알았을까.
알았다면 왜 라이킷을 눌렀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질문에 도달했습니다.
라이킷을 누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하나씩 생각해보니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글은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향한 비판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본인은 그러지 않겠지 하는 그 생각이었다면 라이킷을 눌렀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 질문은 더 심오합니다. 알면서도 라이킷을 눌렀을 가능성이죠. 직관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자신을 향한 이야기라면 불편한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니까요.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때로 자신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에도 동의할 수 있죠.
혹은 그 불편함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좋은 글’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본인이 비판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그 느낌을 받았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그 글이 어떤 현상을 비판하는 글이라는 인식 자체를 하지 못 했을 수도 있죠.
마지막 질문으로 가보겠습니다.
라이킷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어쩌면 라이킷은 생각보다 가벼운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이 틀리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데 큰 저항이 없었다’는 정도의 표시. 아니면 그냥 내가 이 글을 접했다는 훨씬 가벼운 신호일 수도 있죠.
그렇다면 이 상황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누군가 내 글에 공감을 눌렀다는 사실은, 그 사람이 이 글에 동의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적어도 이 글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이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웃지 마. 니 얘기야.
그러나 이 말을 굳이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이 글의 대상이 누구인지 알리지도 않았죠.
그 결과, 그들은 스스로 이 이야기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모릅니다.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일이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현상의 연장선에 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그 현상 안에 저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도요. 어쩌면 이 글 역시, 누군가에게는 같은 방식으로 읽히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신할 수 없지만 그들이 이 글에 다시 라이킷을 누르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