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말이 아니라 확정이다

애매한 약속이 결국 누군가의 시간을 소비하는 방식

by 라이벌 큐버

A : 오늘 만날 거야?

B : 내가 5시까지는 집에 가 봐야 하거든...

A : 4시 시간 돼?

B : 7시 이후는 돼? 이때부터는 시간이 남아

A : 7시 이후는 어렵고... 오늘 만날 거면 좀 더 일찍 만나거나 잠깐만 보고 가자

B : ...

(3시간 후)

A : 말이 없어서 오늘은 안 만나는 걸로 할게. 다른 날도 되니까 되는 시간 있으면 알려줘

(10초 후)

B : 응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이 대화에서 A는 무엇을 느꼈을까요? 오늘 있었던 일을 통해 A의 감정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습니다.


어제 새로운 과외 요청이 왔습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보니 가능할 것 같아서 연락을 취했고 간단한 커리큘럼과 가격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본인이 특정 시각 이전에는 가 봐야 한다고 하길래 그 시각에서 1시간 20분 전쯤에 시작하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더니 아예 저녁 시간을 제안하더라고요. 그 시간은 제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가능한 시간들을 정리해서 보냈습니다. 수업 시간을 줄이거나 시작 시간을 당기는 방법도 함께 제안했고요. 편한 시간을 골라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렸는데 답장이 없었습니다. 혹시 몰라서 집에 가는 길을 평소와 다르게 잡았습니다. 조금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연락이 오면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말이죠. 하지만 끝내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답장을 보낸 지 4시간 시간쯤 됐을 때 답장이 없어 오늘은 안 하는 거로 알겠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바로 답장이 왔습니다. 오늘은 안 되겠다고요.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바로 답을 할 수 있었으면 좀 일찍 해주지 싶었습니다. 어쩌면 상대방은 본인이 제안한 시간이 어렵다고 한 순간 이미 오늘은 안 되겠다고 결론을 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아직 협의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무엇 때문에 답을 안 한 건지 제가 알 수는 없습니다. 확실한 건 제가 먼저 결론을 내려주니 그제야 "맞아요" 하고 답한 거죠.


비슷한 일이 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한동안 이어오던 과외였습니다. 일정이 고정되지 않아서 수업이 끝날 때마다 일일이 맞추는 식이었는데, 어느 날 연락이 왔습니다. 아마 직전 수업에서 다음 일정을 확실히 정해두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연락이 왔고, 저는 그 시간이 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또 기다렸는데 답장이 없었습니다. 저는 과외를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판단했습니다. 가능하다고 했을 뿐 확정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일을 마치고 바로 집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오늘 안 왔냐고 말이죠.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는 가능하다고 했지 간다고 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라는 말을 들은 순간 이미 확정된 것으로 받아들였거나 본인이 과외 일정을 확정하는 문자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을 잊었을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의 다른 경험입니다. 하지만 구조는 같습니다. 제가 가능 여부를 말하면 상대는 확정으로 읽습니다. 그 틈을 항상 제가 메워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확정을 해 줘야 하는 구조 말이죠.


오늘 연락 주신 분은 나중에 다시 연락을 준다고 합니다. 굳이 안 줘도 되는 전화번호까지 줘 가면서 상담을 이어갔던 분인 만큼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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