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보드게임즈 큐브 대회를 계기로 다시 묻는 질문
코리아보드게임즈가 매년 주최하는 행사인 파주 슈필이 2026년에도 열립니다. 여기서는 큐버들이 주목할 만한 행사가 새롭게 열리는데요. 코리아보드게임즈가 큐브 대회를 개최합니다. 초등부 120명, 일반부 120명. 상당히 큰 규모의 대회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걱정이 없지는 않습니다. 주최측의 자본력으로만 보면 대한민국에서 큐브 대회를 연 업체나 단체 중 가장 높은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여긴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죠. 스피드큐브 대회를 여는 목적이 순수하게 커뮤니티를 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순수하게 큐브 씬의 발전을 위한다기보다는 고객 확보를 목적으로 대회가 기획되었을 가능성이 높죠. 그게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큐브 씬의 발전을 돕는다면 우리가 마다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상업적 목적이 대회의 질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죠.
이 대회의 진행방식 설계에 참여한 사람 중 큐브계에서 꽤나 알려진 사람도 있습니다. 대회 참가, 운영 경력이 매우 많은 사람이죠. 그래서 큰 걱정은 안 됩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대회는 무엇일까요.
국내에는 WCA 공인 대회 외에도 크고 작은 비공인 대회들이 열립니다. 그 비공인 대회들이 커뮤니티 안에서 받는 대접은 제각각이죠. 어떤 대회는 공지가 올라오는 순간부터 관심을 모으고, 어떤 대회는 존재 자체를 커뮤니티가 모르는 채 끝이 납니다.
방과후 수업을 운영하는 업체들이 주최하는 대회들이 있습니다. 이 대회들은 대부분 참가 자격을 해당 업체의 수강생으로 제한합니다. 커뮤니티와는 애초에 접점이 없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그 안에서 운영되는 방식이죠. 특정 업체의 대회는 WCA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면서도 마치 공적인 인증을 부여하는 대회처럼 포장되곤 합니다. 랭킹을 발표하고, 순위를 기록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 기록이 제대로 관리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권위를 자처하면서 그 권위에 수반되는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 정확히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그 사실을 참가자가 알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반면 큐빙클럽코리아가 주최하는 비공인 대회는 뭔가 다릅니다. 큐브매니아 카페에 항상 공지가 올라오고 운영진 중에는 WCA 공인 대회를 직접 운영하거나 참가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커뮤니티의 올드멤버들과 오랫동안 안면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대회는 공인 대회를 표방하지 않습니다. 큐브매니아에는 대놓고 비공인 대회 공지 게시판에 공지가 올라오고 권위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비공인 대회라는 점은 같은데 왜 이렇게 다를까요. 들여다보면 커뮤니티의 신뢰를 얻는 대회와 그렇지 못한 대회를 가르는 기준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첫 번째는 커뮤니티와의 연결입니다. 대회가 커뮤니티 안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공지 하나를 어디에 올리느냐가 그걸 보여줍니다. 커뮤니티 바깥에서 그들만의 생태계를 형성한 대회와, 커뮤니티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은 대회는 시작부터 다릅니다.
두 번째는 정직함입니다. 자신이 어떤 대회인지를 솔직하게 제시하는가. WCA 공인 대회가 아니라면 아니라고 말하면 됩니다. 비공인 대회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 건 아니고 오히려 자신의 위상을 과장하지 않는 대회가 더 오래 신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책임입니다. 스스로 내세운 기준을 실제로 지키는가. 랭킹을 발표하겠다고 했으면 랭킹을 관리해야 하고 규정을 만들었다면 규정대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작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 대회의 신뢰를 만들죠.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커뮤니티에 소속된 사람이 비공인대회에 참가해서 대회의 운영이 정직하면서 본인들이 내세운 기준대로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그 경험을 커뮤니티에 공유합니다. 그 과정에서 후기가 쌓이고 더 좋은 이미지를 남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커뮤니티 소속이 아니라면 이와 같은 선순환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코리아보드게임즈의 대회로 다시 돌아옵시다. 이 업체가 큐브 커뮤니티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커뮤니티와 오랫동안 접점을 유지해온 곳이죠. 다만 사업체이기도 하고요. 그 두 가지가 대회 안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루느냐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를 조금 더 보면 이 대회의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는 요소들도 보입니다. 참가비는 5만원이며, 스피드큐빙 라이선스 보유자는 35000원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라이선스는 발급비가 15000원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비용 구조입니다. 참가자 전원에게는 기념품이 제공되고, 입상자에게는 코리아보드게임즈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와 로고가 박힌 티셔츠가 추가로 주어집니다.
이런 구성은 한편으로는 참가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로 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의 브랜드 안에서 대회를 설계한 결과로도 읽힙니다. 다시 말해 이 대회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어느 정도 드러나 있습니다. 다만 그 방향성이 실제 운영에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정보만 놓고 보면 이 대회는 앞서 언급한 방과후 수업 업체들의 대회와는 분명히 결이 다릅니다. 참가 자격에 별다른 제한이 없고, 규모도 작지 않습니다. 공인 대회를 표방하지도 않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기준들에 대입해보면 나쁘지 않은 출발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건을 갖추는 것과 좋은 대회를 여는 것이 꼭 같은 말은 아닙니다. 결국 대회는 열려봐야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서 물어볼 수는 있습니다. 이 대회는 커뮤니티와 연결되어 있는가. 자신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말하는가. 스스로 내세운 기준에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