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미비가 불러온 논란, 슬라이딩을 대하는 자세

규정도 규정이지만 그 전에 반칙은 안 해야지

by 라이벌 큐버

예전에 저는 ‘슬라이딩’이라는 기술적 편법이 큐빙의 정직성을 어떻게 훼손하는지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분석하여 대회 종료 이후에라도 페널티를 부여할 수 있게 개정된 규정은 이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슬라이딩의 문제는 새로운 규정에 의해 다른 형태로 현실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히 한 선수의 일탈을 넘어 H2H(Head-to-Head)라는 새로운 시스템의 치명적인 허점이 그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Xuanyi Geng 선수가 H2H 결승전을 보이콧하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큐브계에 상당한 논란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Yiheng Wang 선수의 슬라이딩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H2H 방식의 '동반 엑스트라(Extra) 시도' 규정 때문입니다.


H2H 경기 도중 한 선수의 장비 문제나 판정 오류로 인해 엑스트라 시도가 주어지면, 아무런 잘못이 없는 상대 선수까지 강제로 다시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상대 선수가 애써 세운 좋은 기록까지 무효화되는 불합리한 광경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시스템이 공정성을 지켜주기는커녕, 오히려 한 선수의 부정 의혹이 다른 선수의 권리까지 침해하도록 방치한 셈입니다.


물론 시스템의 미비함이 이헝 선수의 행동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습니다. 슬라이딩은 WCA 규정 7b1을 위반하는 명백한 부정행위입니다. 일부에서는 이를 규정의 한계를 이용한 최적화라고 포장하기도 하지만, 심판의 육안 판별이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기만에 가깝습니다.

특히 세계 기록 보유자라는 상징성을 가진 선수가 안 들키면 그만이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정직하게 0.01초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큐버들에게 깊은 박탈감을 안겨줍니다. 실력이 압도적일수록 그 기록의 과정 또한 티 없이 맑아야 함은 스포츠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또한 슬라이딩이라는 기술 자체가 이 엑스트라 시도를 더 잘 받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WCA 규정은 타이머가 0.06초 미만을 가리키고 있으면 파견위원의 재량에 따라 엑스트라 시도를 줄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슬라이딩은 방법의 특성상 타이머가 매우 짧은 시간동안 작동되어 정상적인 타이머가 0.06 미만에서 멈출 수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엑스트라 시도를 받는다면 그것을 공정하다고 볼 수 없을 겁니다.


해외에서 시스템 문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는 이헝 선수를 옹호해서가 아닙니다. 4-Pad Mode라는 확실한 물리적 해결책이 있음에도 보급과 흥행을 이유로 도입을 미룬 협회의 안일함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박진감만을 위해 도입된 H2H 방식이 기록의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부정행위를 한 선수에 의해 그렇지 않은 선수가 피해를 봐야 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시스템의 퇴보입니다. 고장 난 저울을 방치하면서 그 위에서 속임수를 쓰는 손을 완벽히 잡아내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헝 측에서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입장문은 상당히 길고 내용도 많습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헝의 시작 동작은 허용 가능한 오차 범위 내였고, 타이머 자체에 결함이 있었으며, 자신들은 합리적인 제안을 했을 뿐인데 쉬안이 측 부모가 현장에서 소란을 피웠다. 델리게이트의 태도도 권위적이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잘못한 것이 없고, 보복하지도 않을 것이며, 떳떳하다.


중국어 원문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영어 번역본이나 영어 번역본의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감정적인 느낌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읽고 나면 기분이 묘합니다. 뭔가 중요한 것이 빠진 느낌이랄까요.

슬라이딩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이 없습니다.


타이머 결함, 상대 부모의 소란, 델리게이트의 태도. 이 모든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그것은 전부 주변 이야기입니다. 프레임 단위 영상 분석으로 반복적으로 확인된 슬라이딩 의혹에 대해서는 "오차 범위 내였다", "타이머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로 넘어갑니다. 이것이 입장문 전체의 설득력을 무너뜨리는 지점입니다.

입장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설적으로 그 태도입니다. 떳떳하다, 다른 사람이 잘못했다고 한 적이 없다, 등의 입장이 반복됩니다. 보복하지 않겠다는 말도 여러 번 나옵니다. 이 당당함이 문제입니다. 경고와 페널티를 여러 번 받고, 세계기록까지 무효화된 경험이 있는 선수의 부모가 이 타이밍에 이런 톤으로 글을 쓴다는 것. 대중의 시선에서 보면 반성은 없고 억울함만 가득한 글로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국내 커뮤니티에서 이헝 선수에 대한 자격 정지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은 결코 감정적인 비난이 아닙니다. 그것은 큐빙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하나의 스포츠로서 존중받기를 바라는 '원칙의 목소리*입니다.

명백한 규정 위반이 반복되고, 그로 인해 다른 선수들이 피해를 입는 상황에서 합당한 징계가 내려지지 않는다면 큐빙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자격 정지는 한 천재에 대한 처벌을 넘어, 큐빙 정신의 근간인 '정직'과 '공정'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입니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뼈아픈 교훈을 얻었습니다. 시스템은 더 정교해져야 하며, 선수는 자신의 실력만큼이나 커다란 도덕적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점입니다.


WCA가 어떤 선택을 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WCA는 4패드 적용 이야기가 나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4패드를 적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는 있습니다. 아직 4세대 타이머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것을 모두 5세대 타이머로 교체하는 것은 상당한 비용이 들겠죠. 하지만 스포츠의 공정성을 생각한다면 그 비용 써야 하지 않을까요? 또한 H2H 방식의 허점으로 지적된 엑스트라 시도 관련 문제도 조속히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큐빙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당당한 스포츠로 남으려면, 우리는 속도보다 먼저 '공정함'이라는 가치에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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