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 예과? 그게 뭐죠?
“왜 간호학과를 선택했어요?”
미국에서 간호대생으로 살면서, 졸업 후에 어느 과로 가고 싶냐는 질문 다음으로 많이 받는 질문이다.
글쎄. 사실 난 아이들을 좋아해서 학교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영어로 가당 키나하나.
“얘, 너 옷을 앞뒤로 바꾸어서 입었어.”
라는 말조차 쉽게 나오질 않는데, 초등학교 교사를 어찌한단 말인가. 그래서 결정한 곳이 간호학과였다.
미국에서 외국인인 내가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전문직을 가져야 한다는 남편의 말에 사실 공감을 했다.
미국은 간호사들이 가장 신뢰로운 직업 1순위에 꼽힐 만큼 믿고 존경해 주는 직업이다. 물론 페이도 많이 받고. 근무 환경도 나쁘지 않다는 말도 들었고 무엇보다 현직 간호사선생님들께서 정말 만족하신다고 적극 추천해주시기도 했고. 지루할 틈이 없는 직업이라나. 병원발고도 갈 수 있는 곳이 다양해서 좋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난 미끼(?)를 겁도 없이 덥석 물고서는 공부에 손 놓은 지 15년이 넘어가는 아줌마가, 그것도 순도 100% 쌩문과 출신이 내가 미국 간호학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미국 간호학과는 1학년은 프리 널싱 (pre-nursing)이라고 해서, 해부학, 생리학, 화학, 미생물학 등등 기초 과학과목을 배운다. 그리고 1년 후, 시험을 쳐서 간호본과로 들어가거나 성적순으로 간호본과에 입학할 학생을 뽑는다.
프리 널싱 과목이 매우 빡빡한 게, 기본적으로 과학과목들은 수업과 병행하는 랩이 있는데, 이게 만만치가 않다. 랩 시험은 지필고사와 랩 프랙티컬이라고 불리는 땡시로 나누어서 보는데, 긴장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스테이지를 나눈 후,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면서 시험문제를 풀고 몇 분 후 “땡!” 하면 다음 스테이지로 돌아가는 형식이라 순간순간 집중하지 않으면 땡시는 망하기 마련. 특히 해부학 땡시의 꽃은 뇌나 근육의 특정 부분에 핀을 꼽고 그 부분의 이름과 역할 등등 모두 적어내야 하는 종류의 시험이라 완벽히 외우지 않으면 참 힘들게 된다.
난 한국에서도 천상 문과였다. 문과 과목 중에서도 국어를 매우 좋아했었다. 게다가 미국에서 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대학에서도 교양영어를 제외하고는 영어과목을 전혀 듣질 않았다. 그런데 미국살이에 더해서 미국 대학교, 이과 학생이라니.
6차 교육과정에 있는 고등학교 공통과학 말고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 책을 펼쳐보니 세포와 DNA와 RNA의 향연.
급하게 유튜브 강의를 찾아서 공부하고, 잠을 줄이고 독학을 했다. 일단 수업시간에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려면 기본은 익히고 수업에 가야 했으니깐. 프리널싱은 독학, 수업, 복습으로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다. 캠벨 바이올로지 레벨을 이해하고 시험을 쳐야 하는 레벨까지 단시간에 끌어올리려면 역시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바이오도 바이오지만, 해부학도 정말 만만치가 않았다. 이틀에 슬라이드 200장이 넘는 양. 시험은 무조건 100문제씩. 중간고사라는 개념도 없었다. 과목당 중간고사를 기본 3-4번씩은 시험을 치기 때문에, 시험 끝나면 바로 그다음 시험준비 이렇게 학기가 계속 돌아갔다.
‘간호본과에 들어가면 좀 낫겠지.’
이렇게 순진한 생각을 하고 내내 공부하다가 짜증 내면서, 울면서 간호예과를 보냈다. 나의 간호 예과는 포르말린 냄새 때문에 집에 오자마자 컵라면을 먹고, 동물들 해부하고 뒤돌아서서 울고, 실험실에서 배양하기 쉬운 이유로 가장 좋아하는 균이 E. Coli 가 되었고, 그렇게 점점 이과에 스며들면서 간호예과를 성공적으로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