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과 어머니

by 최미옥

강아지가 낑낑거리며 안방 문을 긁어댄다. 비가 올 모양이다. 남편이 깨기 전에 녀석을 진정시켜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딸아이가 결혼하면서부터 찬밥신세가 된 녀석이다. 마음 같아선 혼수에 얹어 보내버리고 싶었지만 맞벌이 신혼집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은 비상사태, 나는 녀석을 보호해야 하고 놈은 내 도움을 받아야 한다. 연신 하품하며 딸아이 방으로 들어가 썰렁한 침대에 몸을 누인다. 깜도 냉큼 뛰어오른다.

그뿐, 녀석의 기척은 더이상 없다. 이불을 들춰보니 발치께서 도르르 몸을 말고 누워있다. 마치 ‘주인께서 저를 좋아하지 않은 줄은 알지만 달리 의지할 데가 없으므로 의지는 하되 최소한만’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도 스킨십은 내키지 않으므로 벽에 바짝 몸을 붙인다. 몽롱하던 정신이 점점 또렷해진다.

어머님이 생각난다. 좁은 침대에서 최대한 거리를 두고자 애쓴 듯한 녀석을 바라보는데 왜 어머니가 떠오를까. 어쩔 수 없이, 살갑지 못한 며느리와 동거는 하게 되었지만 ‘최대한 폐가 되지 않으마.’ 작정한 듯했던 어머니.

딸아이가 떠난 둥지에 어머니가 오시게 되었다.

시골집을 지키며 혼자 지내던 어머니가 큰댁으로 합가한 것은 팔순을 훌쩍 넘기고서였다. 사이좋은 고부간은 아니었지만 쌓인 세월만큼 서로 마모된 덕분에 큰 마찰음은 없었다. 형님 덕분으로 온 가족이 한숨 돌리게 되었다.

삶은 예기치 않은 일의 연속일까. 그해 겨울, 형님이 얼음판에 넘어지면서 갈비뼈가 부러져 장기입원을 하게 되었다. 소식을 전하면서 남편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전업주부도 아니고 체력도 부실한 사람이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이어졌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용기를 내는 대신 남편에게 말했다.

ㅡ지극 정성으로 모시기를 바란다면 갈등이 커질 것이니 그냥 같이 삽시다.

하루 이틀로 끝날 일이 아니기에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이튿날로 비어 있던 딸아이 방에 여장을 풀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좀 이상했다. 여느 때와 달리 소리를 전혀 못 들으셨다. 보청기에 의존한 지 오래되었지만 저렇게 깜깜하지는 않았다. 이리저리 거처를 옮겨야 하는 작금의 사태가 고령의 어머니껜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였을 것이고 그 후유증이지 싶었다. 나는 어정쩡하게 선 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달랐다. 보청기의 배터리를 점검하기도 하고 기기를 바꿔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자 어머니의 야윈 어깨를 흔들며 소리소리 질렀다. 왜 이러시냐고, 대체 언제부터 이러냐고 어머니를 다그치며 그는 온몸으로 울고 있었다. 눈은 충혈된 채 번들거리고 목울대는 금방 튀어나올 듯 꿈틀거렸다. 모자 사이에는 육친애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었다.

딸이 결혼한 후 내 차지가 되어버린 강아지 때문에 갈등할 때 놈을 맡겠다고 나선 친구가 있었다. 당장 보내겠다고 딸에게 통보했다. 에미의 완강함에 눌려 얼떨결에 동조한 아이가 오밤중에 울면서 전화했다. 깜은 못생기고 고분고분하지도 않아서 사랑받고 살기가 어렵다. 남의 집에 가면 버림받았다는 충격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죽을 것이다. 한번 인연 맺었으면 가족이다.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나도 모르게 ‘깜은 내 운명’ 해버렸다. 강아지에 대한 연민보다는 자식의 눈물에 마음이 흔들렸다. 예기치 못한 난관, 받아들이자니 내키지 않고 밀어내자니 여의치 않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 고민할 땐 두통이 오지만 일단 예스, 하고 나면 갈등했던 순간들이 우습게 여겨질 때가 있다. 깜과의 관계가 그랬다.

이번에는 ‘어머니도 내 운명’ 할 때인가 싶었다. 머릿속이 새까만 것 같다며 고개를 자꾸 흔드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무엇보다 남편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가족이야말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이리라.

봄이 한창일 즈음, 며칠 집을 비울 일이 생겼다. 그동안 누님 댁에 가서 계시기로 먼저 의논한 후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벽에 몸을 바짝 붙인 채 남편을 쏘아보며 또 내쫓으려 하느냐고 소리 질렀다. 또 내쫓는다는 말이 가시처럼 박혔다. 오랫동안 계획했던 여행이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말았다.

동거는 큰 부딪힘 없이 이어졌다. 애초에 극진히 모시지는 못한다고 선언한 덕분에 남편이 적극적인 역할도 했지만 정정하셨기에 모시기보다는 함께 살았다.

오히려 내 일을 거들어주셨다. 거실 청소며 욕실에 던져두는 남편의 양말도 빨아 널곤 하시더니 하루는 ‘내가 강생이 씻겼다’며 웃었다. 목욕이란 말만 해도 재빠르게 숨어 눈만 떼굴거리는 녀석인데 어머니의 완력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가. 꼼짝없이 잡혀 목욕 당한 모양이었다. 억울한 듯 낑낑대는 녀석에게서 빨래비누 냄새가 폴폴 났다.

깜은 차츰 어머니의 껌딱지가 되어갔다. 어머니가 한 뼘쯤 방문을 열어놔서 자유로이 드나드는 특혜를 누리기에 이르렀다. 집안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마뜩잖아하며 호통치고 밀어내실 땐 걱정이었다. 온종일 한 공간에서 각자의 언어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깜과 어머니가 친해진 건 참으로 다행이었다.

일 년여 우리 집에 계시다가 큰댁으로 가신 어머니는 목련이 눈부시던 어느 봄날 주무시듯 먼 길 떠나셨다. 연세는 많았어도 정정했기에 갑자기 떠나실 줄은 몰랐다.

황황히 장례를 치르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잠시였어도 함께 살았으니 딴에는 소임을 다했다 싶었는데 아니었다. 이름 붙은 날에나 얼굴 뵙는 것이 고작이던 지난 세월에 비해 함께 사는 동안 정이 들었을까. 집안 곳곳에서 때 없이 어머니가 보였다.


이불을 들추고 발치께서 도르르 몸을 말고 있는 녀석을 끌어당겨 본다. 뜻밖의 포옹이 어색한 듯 두어 번 뒤채더니 이내 긴장을 푼다. 깜의 체온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어머니를 떠올린다. 왜 좀 더 살갑지 못했을까. 마른 낙엽 같은 어머니를 한 번이라도 뜨겁게 안아드릴 것을. 신산한 세월을 건너오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받아 마땅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마음이 푹 젖어드는 밤이다.

이전 06화바리스타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