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 그녀

by 최미옥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할 때였다. 찬바람이 겨울을 재촉하던 어느 날 가녀린 아가씨가 방을 구하노라며 들어섰다. 따뜻한 커피를 권하며 몇 가지 기본적인 것을 물었다. 고객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려고 이런저런 말을 수다 떨듯 건네는 것은 내가 하는 업무 중의 하나였다. 그래야 마침맞은 방을 찾기가 쉽기 때문이다.

집을 구하는 일은 타인에게 민낯을 보여주기와 비슷해서 시시콜콜 풀어놓기가 꺼려지기도 한다. 가령 이사할 날짜는 정해졌는지 준비된 돈은 어느 정도인지 가족 구성원은 어떤지 등. 필요에 의한 질문이지만 뭘 그런 것까지 물어보나 할 수 있다. 불편하다면 불편할 그 자리에 놓인 커피 한 잔은, 설탕 프림과 커피 알갱이가 따듯한 물에 풀어지듯 마음을 풀어주는 역할도 한다.

두어 모금 홀짝거리던 커피를 내려놓으며 그녀가 나를 재촉했다. 쓸데없는 수다 집어치우고 방이나 보여주세요, 하는 눈치였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이사해야 하는 날은 다가오고, 마땅한 공간은 찾아지지 않아 애가 타는 심정은 이해하겠는데 그렇더라도 지나쳤다. 그녀는 고슴도치 같았다. 온몸에 가시를 세우고 여차하면 찌를 기세였다. 심하게 경계하는 눈빛은 자주 흔들렸고 그저 그런 질문에도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 데다 체구가 작아서 더 그런 느낌이 들게 했다.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작은 아가씨가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나를 앞서기 일쑤였다. 몇 군데 방을 함께 보면서 좀 편해졌다 싶을 즈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엄마하고 나하고 단둘이 살았는데 엄마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들키고 나면 상대방이 얕잡아 볼 것 같아서 말하기 싫었노라며 고개를 떨구는데 말문이 턱 막혔다. 비로소 까칠하던 분위기가 이해되었다.

단 하나 혈육과의 준비 없는 이별은 세상을 적대시하며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우게 했으리라. 혼자임을 ‘들키고’ 나면 ‘얕잡아’ 볼 것 같다는 말이 더 아프게 들렸다. 내 딸보다 어려 보이는 아이를 잠시 껴안는 것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몇 군데 본 중에서 제일 낫다는 원룸 205호가 둥지로 선택되었다. 햇빛은 인색하지만 베란다가 딸려 있어서, 차마 정리하지 못한 엄마의 짐을 수납할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

이사 한 후로도 그녀는 가끔 들렸다. 무람없이 들어와 셀프 커피를 마시곤 하더니 하루는 보온병을 들고 왔다.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 중인데 자기 손으로 내린 커피를 꼭 한번 드리고 싶었다며 뚜껑을 열었다. 한 방울 한 방울 내렸다는 핸드드립커피는 달달한 믹스커피에 길들여진 내 입에는 당기지 않았다. 한 모금 맛본 후 난감한 얼굴로 쳐다보니 까르르 웃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이 맛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하거든요.”

그녀는 연신 생글거리며 커피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교육생 중에 아줌마들이 있어서 좋다고도 하더니 원두를 갈 때 풍기는 깊은 향을 맡고 있노라면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고도 했다. 수다 떠는 얼굴은 그저 평범한 이십 대 아가씨였다. 저 표정을 찾는 데는 커피가 큰 역할을 한 것 같았다. 할 일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모습이 안타깝더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바리스타의 길로 정진하느라 바쁜지 그의 걸음도 멀어졌고 나도 잡다한 일상에 묻혀 지내던 어느 아침이었다.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원룸 주인이 기다렸다는 듯 들어섰다. 몹시 화난 얼굴이었다.

“205호에서 고양이를 키우던데 알고 있었어요?”

금시초문이었다. 원룸 건물에서의 애완동물 키우기는 양해받기 어려운 문제다. 그래도 1차 경고 정도로 끝낼 수도 있을 텐데 다툼이 치열했던 듯, 당장 이사 가겠다고 했단다. 고슴도치 같던 첫인상이 떠오르면서 걱정이 앞섰다. 메시지를 보냈더니 퇴근길에 들르겠노라는 답이 왔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는 정장 차림이었다. 단정한 입성은 여느 때보다 당차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내 앞에 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심리치료를 받았는데 치료의 한 방법으로 애완동물 키우기를 권유받았다. 고양이는 얌전해서 좀체 소리를 내지 않고, 특수처리 된 모래를 쓰기 때문에 이웃에게 피해도 주지 않는다. 옆방의 학생에게 냄새나느냐고 물었더니 고양이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하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엄마의 흔적만 남은 집이 무서워서 이사는 했지만 겨울 들판에 선 것 같은 마음은 가시지 않았으리라. 체온을 나눌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했겠고 고양이의 온기가 도움이 되지 싶었다. 그 슬픔이나 외로움 혹은 두려움의 깊이는 알 수 없다. 누구도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고양이와의 교감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지는 이해할 것 같았다.

심리 상담을 자청한 일도, 그 권유를 받아들인 고양이 키우기도 칭찬하고 싶었다. 반듯한 정장 차림 또한 자신을 추스르는 한 방편이리라. 난관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려 애쓰며 이런저런 방법을 찾고 실행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녀는 이사한 것을 후회했다. 그대로 살면서 고양이를 키웠더라면 좋았을 거라면서. 엄마의 흔적을 지우고 싶어 이사했지만 그것이 해결책은 아니었다 싶은 모양이었다. 사람살이 정답이 어디 있으랴. 살던 집에서 고양이를 껴안고 견디는 것이 더 나았을까. 그 또한 정답은 아니리라. 원하던 대로 깨끗하고 따듯한 원룸으로 이사했는데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을 뿐이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일이 복병처럼 숨어 있을 텐데 그때그때 지혜롭게 답을 찾아야 하리라.

그는 고양이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옮겨야겠다고 말했다. 이사는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주인과 또 마찰이 생길지 모른다, 할아버지뻘인 어르신께 맞서지 말고, 내게 이야기했듯이 차근차근 설명하며 시간을 벌라고 당부했다. 마음 정리가 되었는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잘 해낼 것 같았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삶의 가장 기본인 밥이 되어줄 것이고 고양이는 허기진 마음을 채워줄 테니 적당한 공간을 찾아 옮기는 일은 어렵지 않으리라. 망망대해에 아슬하게 떠 있던 조각배가 등대를 발견하고 방향을 잡았을까. 세상 속으로 또박또박 걸어가는 뒷모습이 전에 없이 야무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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