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이 있어서 내려간 걸음에 친정에서 하룻밤 자던 날이었다.
“오늘 밤에는 불 끄고 자도 되긋다. 딸이 있으니께.”
깜깜한 데서 혼자 저승사자를 만날까 봐 불을 켜고 잔다며 어머니는 멋쩍게 웃었다. 아흔 고개를 바라보는 노인의 현주소가 서늘하게 와닿았다. 도저히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의논 끝에 우리와 함께 살기로 했다. 마침 결혼해서 떠난 딸의 방이 비어 있었다.
한집에서 살게 된 남편과 나와 어머니, 셋은 알게 모르게 몸살을 앓았다. 서로에게 스며들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평온하게 흐르던 남한강과 북한강이 두물머리에 이르러면 물살이 뒤섞이느라 소용돌이친다. 강물도 서로에게 스며드느라, 서로를 받아들이느라 한바탕 몸부림친 후 비로소 방향을 잡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것이 순리이다.
어머니가 오시던 해 어느 봄날이었다. 혼자 다녀오겠다는 산책길이 미덥지 않아 멀찍이서 지켜보던 적이 있었다. 등교 시간이 지난 여자대학 후문 길은 연극이 끝난 무대 같았다. 어머니는 인적 드문 그 길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천천히 걸었다. 이따금 바람이 불어 벚꽃이 흩날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허리 펴고 하늘 한번 올려다봄직도 한데 무심히 가던 길을 갈 뿐이었다. 계절은 돌고 돌아 다시 봄이지만 ‘다시 봄’을 허락받지 못한 노인의 산책은 제자리걸음처럼 답답했다.
이윽고 마을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어머니는 오도카니 앉은 그대로 그림 속의 풍경이 되어버린다. 등 하교 시간이면 인근의 중 고 남학생과 여대생들의 수다가 거리를 점령하는 동네다. 팝콘처럼 튀는 그들의 시간대를 피해 눈치 보듯 핀 할미꽃 한 송이일까. 봄과 노인, 어우러지지 않은 두 단어가 눈앞의 풍경화 속에 있다.
한참을 지켜보고 섰다가 어머니 옆에 털썩 앉았다. 놀란 어머니가 아이처럼 웃었다. 무슨 생각을 하냐고 여쭈니 ‘저 쪼맨한 버스는 어데로 어데로 가능고. 저넘을 타고 가다가 가다가 보믄 우리 동네가 나올랑가.’라고 하셨다. 진양조의 노래가락처럼 늘어지는 이야기를 챙겨 듣다가 철렁했다. 혹시 치매의 시작일까. 생각의 끝을 잡고 조금 더 나간다면 혼자 마을버스를 타버릴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닿자 아찔했다.
나는 기숙사 사감처럼 엄숙하게 말했다. 엄마, 이젠 여기가 엄마 동네야. 이 동네에 정 붙여야 해. 그리고 지금처럼 움직일 수 있게 노력하셔요. 그래야 나랑 오래오래 같이 살지. 엄마가 정신줄을 놓고 운신 못 하면 나도 자신 없어. 어머니는 듣는지 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셨다. 건듯 부는 바람에도 꽃잎은 속절없이 떨어지던 어느 봄날이었다.
노인의 새 둥지 적응은 예상보다 어려웠다. 원체 조용한 분이 더 말이 없어지고 낯선 집에 다니러 온 아이처럼 눈치를 살폈다. 텃밭의 모종도 옮겨 심고 지켜보면 흙내를 맡기까지 여러 날 몸살 한다. 성정 급한 농부는 지레 포기하고, 느긋하게 지켜보던 이는 ‘이제 흙내 맡았네’ 하며 마음을 놓는다. 뿌리는 흙에 스며들어야 하고 흙은 식물을 품어야 한다. 둘의 교감이 이루어졌을 때 때 흙내 맡기는 끝난다. 어린 식물의 자리 옮기기도 그러한데 노인의 이사가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리라.
어머니의 흙내 맡기는 끝이 났을까. 오 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함께 살기는 그렁저렁 편안하다. 나는 동거를 계획하면서부터 효녀 노릇은 안 하기로 맘먹었다. 그저 불을 끄고도 두려움 없이 잠들 수 있으면 되지 싶었고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생로병사의 여정에서 누군들 자유로울까. 상황이 달라지면 그때 가서 동생들과 의논해서 또 길을 찾으면 될 터.
어머니는 이제 암막 커튼을 치고도 잘 주무신다. 전구가 나가도, 텔레비전이 고장 나도, 번호키 배터리가 닳아서 문이 안 열려도 걱정이 없다. 혼자 살 땐 손수 해결해야 했기에 벅찬 일이었다. 나는 이럴 때마다 쌓인 불효를 퉁 치고 싶어서 어머니 앞에 얼굴을 디민다. 엄니가 걱정 안 해도 되니 얼마나 좋으셔.
남편은 열이 많은 체질이라 사철 속옷 바람인데 어머니가 오신 후론 숙제하듯 반바지를 챙겨입더니 언제부턴가 벗어던졌다. 옷 입으라 채근하는 대신 어머니께 말한다. 엄니가 편한가 봐. 못 본척하셔. 여름에도 맨발을 보이지 않은 어머니가 합죽합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백년을 살아보니’의 저자는 아흔 노인은 스스로 밥을 챙겨 먹는 것도 큰 운동이라고 했다. 내게 허락된 불효의 범위가 더 넓어졌다. 고맙게도 어머니는 정신이 맑고 움직임도 자유로운 편이다. 손수 끼니를 챙길 수 있고 싱크대에 기대고 서서 그릇 서너 개 정도는 너끈히 헹군다. 얼마나 다행인가.
더 무얼 바라랴. 내 집이 어머니의 마지막 둥지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