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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찬 Apr 30. 2023

길을 찾아서

대안학교 학생의 일지 모음

최근 들어 글을 쓸 시간이 없어 글을 올리지 못했다. 내가 다니는 대안학교인 <더불어가는배움터길>은 졸업학년(대숲)이 되면 앞으로의 진로를 모색하고 세상과 마주하기 위해 '길찾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길찾기'는 교육과정 영역 중 '진로' 영역에 속해 있으며 학생들이 졸업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영역이다. 


이번 대숲 길찾기는 대학 탐방, 사회적 기업 탐방, 사회단체 탐방, 직업인 인터뷰 등의 활동을 진행하고 이렇게 2주 동안 학교에서 활동한다. 탐방 같은 경우엔 탐방만 가는 게 아니라 탐방 가는 곳에 대한 자료조사, 팀별 자료조사 발표, 인터뷰 질문 작성의 과정을 거치고 탐방을 향한다. 직업인인터뷰는 세상과 먼저 만난 부모님을 '부모님'으로 만나 인터뷰하는 게 아니라 한 '직업인'으로 만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의식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번 글에서는 내가 일주일 동안 쓴 길찾기 일지를 보여주려 한다. 


4.24 <길을 걷는 방법은 저마다 다른 것 같다.>

오늘은 길찾기 집중 주간 첫날이었다. 오티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바로 팀원들과 활동을 이어 나갔다. 우리 팀의 주제는 <청년과 진로>인데, 친구들과 함께 서울혁신파크라는 곳을 조사하며 청년의 진로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갔다. 아무래도 팀으로 하는 활동이다 보니 혼자 하기에는 조금 벅찬 게 많이 있었고 그때마다 친구들과 역할을 나누며 함께 진행해 나갔다. 예전 같았으면 귀찮게 분업하지 않고 혼자 할 생각만 하고 있었을 텐데 이제는 이런 활동을 왜 해야 하는지,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부터 제대로 숙지하고 친구들과 소통하며 더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일정이 조금 타이트한 건 변함없지만, 말 그대로 집중 주간인 만큼 내 할 일에 집중해서 하는 중이다. 그냥 성격이 그런 것 같다. 과제나 할 일 밀리는 거 싫어하고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은 그런 성격 말이다. 게다가 오늘은 길을 걷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 철학적이기도 하지만, 매일 쓰는 일기 대신 쓰는 일지니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겠다.     


보통 삶을 길을 걷는다는 것으로 비유하곤 한다. 인생에서의 수많은 선택은 갈림길을 나타내고 앞으로 닥칠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앞만 보고 달린다고 하는 등 우리의 삶을 길로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길을 걷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혼자 저 멀리에서 뛰고 있는 사람, 천천히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함께 손잡고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 뒤에서 다른 사람들을 밀어주는 사람 등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길을 간다. 나는 함께 손잡고 걷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모두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오늘 새로이 알게 되었다. 배움터길에 입학하고 좀 됐을 땐 모두가 함께 걷는 걸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지만, 당장 오늘 14기 친구들을 살펴보니 저마다 길을 가는 방법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지 나아가는 방법은 모두가 달랐다. 다른 이야기지만, 작은나무(중1)가 도보여행을 가는 이유 중 하나도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길을 걷는 것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한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게 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으로 보였다. 길을 걷는 방법이 저마다 다르니 서로서로 함께 존중하고 헤쳐 나가야 하는 듯싶다.     


길을 가는 방법은 다르지만 우리는 지금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 <청년의 진로> 팀 친구들 역시 그랬고, 때문에 더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내가 걷는 방법으로는 알 수 없었던 재미와 색다른 발견을 할 수 있었기에 더 그랬다. 그냥 요즘은 정겹다. 졸업을 하고 나면 우리의 방향은 모두가 달라지고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기에 친구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하는 시간이 소중해진 것 같다. 아까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사람은 어차피 후회를 하는데, 열심히 하나, 열심히 안 하나 후회할 수밖에 없다고.” 사람은 후회할 수밖에 없다는 말엔 동의를 하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걷는 그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겼을 때 나오는 후회는 그 소중함을 기억하며 나중에 같은 방식으로 걷지 않겠다는 다짐을 통해 삶을 살아가며 어떤 것이 의미 있는 삶인지 가치 정립을 할 수 있지만, 길을 가는 그 과정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을 때 나오는 후회는 소중히 여기지 않았기에 무엇인가를 느끼기 힘들다. 그저 ‘다음엔 더 열심히 하겠다.’는 한 마디만 나올 뿐이다.      


그렇기에 이번 길찾기 집중 주간에서 열심히 걷고 싶다. 이 과정을 통해 세상과 만나 실수하고 때로는 좌절도 하고 싶다. 사람이 계속 잘하면 다음번에 그대로 하는 수밖에 없지만, 실수를 통해 좌절한다면 그렇게 하지 않는 법을 배우니까 그렇다. 그러니 안 해본 것, 새로운 것을 찾아 열심히 걸어가고 싶다. 열심히 걷자. 


4. 25  <나를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틀이 지났다. 억울하게도 몸과 정신 상태가 너무 멀쩡하다. 운동 좀 덜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컨디션이야 늘 좋다. 우선 오늘의 일과에 대해 정리해 보면 간단하게 어제 했던 팀별 조사와 발표 준비, 발표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단순한 일과 속에서 ‘나를 믿는다.’는 말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볼 땐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살았는데 항상 아쉬움은 남는다. 아쉬움의 형태는 날마다 다르지만.     


오전에는 발표 자료를 잘 만들었다. 팀원들끼리 서로를 믿고 함께 도와줘서 결과물도 잘 나왔다. 마감 시간에 맞춰 올리려 하는데 슬라이드가 몇 개 날아가서 다 같이 후다닥 해낸 것도 기억에 남는다. 이때 서로 다독여주며 괜찮다고, 천천히 하자라고 말한 것을 보면서 팀 활동의 묘미를 오랜만에 느껴본 것 같다. 어제도 말했듯 혼자 하는 활동이 아니기에 서로를 믿고 도우며 나아가는 게 팀 활동의 장점인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팀 활동이 뜸해지고 다시 이렇게 모이니 모두가 성장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모두의 결과물이란 것을 인지하고 하나 되어 움직여서 잘 마칠 수 있었다. 자료 조사, 파워포인트 제작, 인터뷰 질문 작성 같은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같은 팀 친구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오늘의 생각 주제인 ‘나를 믿는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본 계기는 오후 발표 때 나왔다. 우리 팀 발표를 내가 맡았으나 냉정히 말해 발표가 진짜 별로였다. 전체 발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대본에 있던 내용을 압축하고 거의 백지상태에서 발표했는데, 글의 내용을 제대로 압축해 말하지 못했을뿐더러, 말이 조금씩 꼬였다. 예전에는 발표할 때 내용 압축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스스로 만족했지만, 지금은 계속 뜯어고치고 싶어 진다. 나를 믿었기에,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에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크다. 가장 아쉬운 건 친구들과 조사한 자료에 관한 정보 전달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전에 발표문을 다른 친구들에게 나눠줘서 어느 정도 전달은 됐겠지만, 말과 시각 자료만으로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발표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내게는 그저 후회의 순간일 수밖에 없었다.      


발표를 마치고 다른 팀의 발표를 들으며 생각을 꽤 오래 해봤고 ‘나를 믿는다’라는 말의 본질적 의미를 도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조금 주관적이지만, ‘나를 믿는다.’는 말의 뜻은 내가 잘할 수 있다고 되뇌는 게 아닌 잘할 수 있게 될 때까지의 숱한 고난과 같은 과정을 견뎌내고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믿는다는 뜻이라 본다. 발표할 당시 낙관적으로 잘하겠거니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게으름에서 피어난 성장 억제제일 뿐이다. 조금 덧붙여서 지금껏 잘해왔어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 방법이 먹히지 않을 수도 있는데, 지금의 내가 그런 것 같다. 이런 상황과 마주하면 길을 찾기 위해 스스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 길(답)을 찾는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고 길을 찾으려면 계속 부딪쳐야 한다. 부딪치는 방법은 간단하다. 계속 시도하는 것이다.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는 것. 내가 결론 낸 열심히 사는 삶은 이것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잘할 수 있게 되기까지 나아가는 삶 말이다. 나를 믿으려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다시 돌아와서 아쉬움이 크게 남는 오늘, 이 아쉬움과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있었기에 조금 더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 결국 나는 노력해야 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승리하면 배울 수 있다, 그러나 패배하면 모든 걸 배울 수 있다.”라는 야구계 격언이 생각난다. 나의 승리와 패배를 단정할 수는 없어도 오늘의 아쉬움을 패배에 빗대어 본다면 결국 나에게 졌다. 이 과정 속에서 나는 나를 믿는다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깨우쳤고 다음엔 이런 식으로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마지막으로 졌더라도 성장이라는, 감격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나중에 오늘 일지를 보고 피식 웃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 


4. 26 <나는 왜 쓰는가>

길찾기 3일 차, 생활에 적응했고 학교에 대숲밖에 없으니(다른 학년들은 길찾기가 진행되는 2주 동안 여행을 떠난다.) 조금 심심하다. 그러나 작년 솔숲 길찾기 때 했던 끈기와 관련된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임했다. 오늘은 직업인 인터뷰 준비를 준비하느라 시간이 얼마 안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조사하고 쓸 게 많아서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결국 할 일을 다 해서 상관없을지는 몰라도 나는 왜 써야 하고 쓰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어서 나름대로의 답을 오늘 일지에 적어보려 한다.      


사실 길찾기에서 제일 기피하고 싶었던 게 직업인 인터뷰였다. 부모님을 인터뷰하는 것은 크게 상관없지만, 평소에 아빠, 엄마로 만나던 사람들을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게 뭔가 어색하고 기피되었다. 평소 같은 모습의 내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점 때문에 내가 왜 쓰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정확히는 내가 왜 이런 활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었다. 다른 활동이었으면 잘했을 텐데, 하필 부모님이라서 계속 걸렸다. 쓰기 시작할 때의 내 심정은 ‘차라리 졸업생을 인터뷰하지’였다. 너무 솔직한가? 아무튼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부모님 직업 조사를 하고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직업에 대한 자료도 제대로 나와 있지 않아서 세상이 나를 싫어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당시엔 그랬다. 그래도 잘 해낸 나에게 고맙기도 하다.     


상술한 의문을 가지고 어제 일지에 쓴 대로, 나를 믿었다. 세상이라는 게 결국 그런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주어진 것에 충실히 임했다. 내가 던진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면서 말이다. 선생님들께서는 부모님을 부모님으로 만나 뵙는 게 아닌 직업인으로 만나며 직업인의 삶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해 주셨지만, 나는 나만의 이유를 찾아 나갔다. 세상과 먼저 마주한 직업인으로 부모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대한 간접적 체험을 하는 것이다. 독서와 비슷하게 보였다. 나만의 결론을 내리고 나니 아침에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종이에 쓰인 “죽어가는 노인은 불타는 도서관과 같다.”라는 글의 뜻이 와닿았다. 결국 알고 있는 것을 새롭게 발견했다. 새롭게 발견하려는 시도의 과정을 거치며 의구심이 조금씩 사라져 나갔다. 내가 이걸 왜 쓰냐고? 스스로 세상과 부딪치며 배우기 위해서다. 늘 하던 것에 안주해 있으면 새장 안에 든 새와 마찬가지다. 넓은 세상의 풍경을 보지 못하는, 마치 <진격의 거인> 속 세계의 인간 같은 그런 존재일 뿐이다. 조금 돌아왔지만, 나는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해야 할 일은 성장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하루가 꽤 길었다. 같은 것을 반복하던 지난날들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새로운 것을 찾아가보지 않은 곳으로 떠났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새로운 환경은 시간을 늦추는 것 같다. 느릿해진 시간 사이로 새로운 경험과 지식, 그리고 넓어진 시야가 잊히지 않는 흔적이 되어 나에게 스며드는 것으로 보이는데, 평소 아빠, 엄마로만 불렀던 부모님의 직업을 알아보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의 감정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새로워서 낯설 뿐이었다.     

길찾기 집중 주간 동안 이런 ‘낯선 상황’들이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이런 새로운 느낌은 언제고 적응이 안 될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더 폭넓은 경험을 하며 세상과 마주할 수 있다는 건 확실하니 도망치지 않을 생각이다. 하루하루를 귀중히 여기며 부딪치고 길을 찾자. 할 수 있을 때 안 하기 싫다. 세상과 만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하더라도 학교라는 공간은 그런 실수를 관용할 수 있는 곳이니 마음껏 시도하고 그 과정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자. 천천히 오래가면 좋겠다.      


4. 27 <내 눈으로 본 대학>

성균관대학교 탐방 날, 어느덧 길찾기가 시작된 지 4일이 지났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말이 진짜인 것 같다. 내 할 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빠르다. 나중에 정신 차려보면 졸업식일 것 같다. 남은 시간 동안 학교에서 많은 걸 배우고 싶다. 오늘의 일과는 성균관대학교 탐방으로만 이루어졌는데, 대학이란 공간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 설명을 듣고 대학 내를 돌아다녔다. 정문에서 안내해 주시는 분과 만나기로 해 다 같이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스태프 목걸이를 차고 계신 학생분과 눈이 마주쳤다. 저분이 오늘 안내를 해주시겠구나 생각하는 중 눈이 마주쳤는데, 그분 표정이 희번뜩(?) 해지더니 나에게 대뜸 다가오셔서 “오늘 탐방하기로 하신 분들 맞죠안녕하세요선생님.” 이러셨다. 순간 뭐지 싶었다(나 안 늙었는데.). 도움을 청하려고 친구들을 보니 다 웃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뭐 한두 번도 아니고 상황이 웃겼다. 그분께서도 당황하셨는지 성숙해 보였단 뜻이라고 급하게 말씀하셨다(그분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덕분에 투어 하는 내내 안내해 주시는 분은 내 눈을 못 마주치셨고 눈을 마주쳤을 땐 말을 더듬으시며 웃참을 하시는 게 보였다. 박민찬의 선생님 데뷔전이었다. 친구들은 연신 “선생님 안녕하세요?”를 외쳐대며 대학 탐방을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아무튼, 이런 해프닝이 있었지만, 말로만 듣던 대학이란 공간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던 오늘이었다. 안내해 주시는 분께서 설명을 너무 잘해주셨고 공간 같은 곳이 너무 예뻤다. 궁과 학교가 맞닿아 있는 걸 보고 역사가 느껴지며 내가 이몽룡이 된 것 같은 착각도 아주 조금 했다. 사실 대학이라는 공간에 거의 처음 발을 들여봤다. 초등학교 때 온 것 같긴 하지만 기억이 안 나니 처음이라고 치겠다. 진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요즘, 대학 역시도 진로 고민에 포함돼 있었는데, 오늘 설명을 듣고 탐방을 하고 나니까 조금 더 깊은 고민에 빠졌던 것 같다. 함께 탐방을 다녔던 친구에게 대학을 갈 거냐고 물어봤는데, 그 친구는 “대학을 공부의 목적으로만 삼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의 장소로 삼고 싶다.”라고 말하며 가장 아름다운 나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 나이인 대학생 시절에 많은 경험을 하며 청춘을 즐기고 싶다는 대답을 들었다.      


조금 빠져서, 여기에서 말하는 경험은 소통이다. 헤겔의 ‘의식의 경험의 학문’에서는 의식이란 ‘알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을 뜻하고 경험은 의식의 상태가 확장되는 순간이라고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해 책을 읽을 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는데 직접 경험하니 이해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의 확장으로 인해 배울 수 있다. 이게 곧 학문이고 학문은 자기 자신을 검사하며 어떤 배움이 되었는지를 의식과 경험을 토대로 정의 내리는데, 아까 들은 친구의 말과 함께 엮어 설명하면 대학생의 신분으로 의식을 확장해 나가며 자기 자신이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대학 생활에서의 배움 같다. 어느 에세이에서 학교는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가는 곳이라고 하는데, 세상과 소통하는 것은 의식의 확장을 통해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목적으로 끊임없이 사유하고 실천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대답해 준 그 친구는 이 세상에서 함께, 더 아름답게 살기 위해 대학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한 것 같았다. 어쩌면 당연한 말을 늘린 지도 모르겠으나 대학을 비롯한 학교는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가기 전 마음껏 경험하고, 많은 실수를 하는 곳이라고 본다.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그것을 포용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경험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성균관대라는 공간에서 이러한 생각을 해나갈 수 있었다는 건 학교의 시설 및 주변 환경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앞으로 어떤 배움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대학교를 진학할 마음이 있을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그와 반대되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곳이 대학 말고 어느 곳이 있을까라는 질문도 던져 보았다. 그런데 나는 결국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것 같았다.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이 보였는데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맺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싶었다.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는다는 건 단순히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관계를 맺는 것 같은데 또 딴 데로 빠졌네.     


음, 오늘 성균관대학교 탐방은 나에게 새로운 시선을 제공해 주었다. 제공의 원인이 투어 안내일 수도, 친구와의 대화일 수도, 내 고민일지도 모르겠으나 캠퍼스 내에서 돌아다니며 즐거운 추억과 많은 생각거리들을 갖고 가는 것 같다. 진부한 표현일 수 있지만 대학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직접 느껴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나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낯섦이라는 이름의 안개가 걷히며 설렘이라는 빛이 들어온 것 같았다. 그동안은 안개가 안 개서 잘 몰랐던 것 같은데 오늘 좀 피곤하게 살았나 보다. 다른 일정이 있어 서울에서 놀지 못한 게 조금 아쉽지만, 오늘 하루 잘 마쳐줘서 너무나 고맙다. 수고했어요 민찬 선생님.


4. 28 <지금 내가 생각하는 사회의 문제>

사회적 기업 <리맨>에 탐방을 간 5일 차, 이렇게 한 번만 더 반복하면 길찾기가 끝난다. 오늘 정말 많은 것을 얻어갔는데, 아침에 있었던 일과 리맨에서 들었던 대표님의 강연이 조금 이어져서 여기에 적어보려 한다. 일찍 다니는 게 습관이 된 나는 9:20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일찍 출발한 것도 있지만, 지하철 운이 좋았던 것 같은데, 노원역에 도착하기 전 노약자석에 앉아 계신 분께서 편찮아하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숨쉬기가 버거워 보이셨고 지하철 벽을 두드리며 괴로워하셨다. 이어폰 너머로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기에 순간 몸이 먼저 반응했다. 노약자석 옆에 있는 비상전화로 기관실에 연락을 드린 후에 노원역 안에 있는 의무실로 데려다 드렸다. 직원분께 듣기로는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하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사회는 나를 고민에 빠뜨렸다. 사람이 위급한 상황임에도 사람이 오지 않은 모습이 아직 잊히지 않는다.     


꺼림칙한 마음을 안고 다른 지하철을 타고 진접에 도착해 리맨으로 향했다. 대표님께서 직접 와주셔서 우리를 데려가 주셨는데, 대표님이라는 사람께 오늘 정말 많은 걸 배웠다. 도착하자마자 대표님께서 강연을 해주셨고 질문 및 탐방으로 진행된 오늘의 일과에서는 대표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사람은 책과 같다.”는 말씀, 많은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는 말씀, 그리고 함께 사는 사회를 원한다는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마침 이런 부분에 관심이 있어서 귀에 더 쏙쏙 박혔다. 사실 이런 탐방에서의 인터뷰는 직업과 기업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분명히 있지만, 좋은 어른들을 만나 말씀을 들으며 생각을 확립하는 것에서 의미 있는 것 같다.

      

말씀하신 책과 경험은 일지에서 꽤 다룬 기억이 나는데, 책은 저자의 경험을 내가 해볼 수 있는 수단이며 그러한 경험을 통해 보다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과 만날 수 있다. 책이 없다면, 아까 말했듯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들으며 다른 사람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살아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는 것이다. 직접 겪어본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경험이라는 낱말은 철학으로 접근하면 의식의 확장이다. 알고 있는 것이 더 많아진다는 것인데, “죽어가는 노인은 불타는 도서관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은 사람이 살아가며 축적된 경험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를 나타내 준다. 그런 면에서 오늘 대표님의 강연과 말씀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싶다.     


궁금한 것이 꽤 있었고, 그중 하나가 기업의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리더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대표님께서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든 생각이 다른 사람은 늘 있기 마련인데, 설령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 하더라도 사람이 없으면 어떤 일이든 해내기 쉽지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통을 통해 의견의 차이를 좁히고 추구하는 의미와 가치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너무 와닿았다. 가장 쉽지만, 가장 어려운 게 소통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있어 깊게 다가왔던 것 같다. 게다가 진로를 고민할 때는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의미 있는 일을 하며 경험을 해보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좀 놀랐다. 니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셔서 그랬다. 잘할 수 있는지, 하고 싶은지, 가치 있는 일인지를 항상 따져보는 나의 가치관이 자랑스러워지기도 했다.      


배움터에 빗대어 설명해 주시기도 했는데, 가장 강조하신 게 주도성이었다.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보고 자꾸 시도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그런 주도성을 기를 수 있는 곳이 배움터길이라고 하셨다. 이러한 주도성이 경험을 하는 데 있어 크게 작용하는 건 분명했다. 여기에 배움터길은 주도성을 기르며 함께 사는 법, 환경오염을 줄이는 법 같은 함께 사는 사회를 실현하는 학교인데, ‘기업가’ 정신이라는 단어를 통해 말씀하신 이 내용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어느 순간 나도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 리맨이 추구하는 의미와 가치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였다. 강연이 끝나고 탐방을 나서며 나도 모르게 “대표님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라고 내뱉었다.      


함께 사는 사회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나는 아침의 지하철에서 느꼈다. 사람들은 남 일에 관심이 없다. 누가 위급하든 아니든 간에 바쁘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외면한다. 상황을 지켜보고서도 시끄럽다고 투덜대던 한 아주머니의 모습과, 지하철이 움직이지 않아 짜증 난다고 친구에게 전화하던 한 형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자신만을 위해 살며 타인에게는 무덤덤한 세상이 오고야 말았다. 종점 부근이라 많은 사람이 없었으나 불평하는 입장이었던 열 명 남짓한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인지, 사람은 사람대로 존중받을 수는 없는지 묻고 싶다.      


결국 사회는 아름답지 않다. 사회는 삶의 목표가 성공이라는 것은 알려주면서 정작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은 알려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회색이 되었다. 묵묵히 자기 일만 하며 신경을 안 쓰고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을 못 본 체하고 얼굴에는 회색 먼지가 쌓여 간다. 마치 아주 큰 바위 같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아주 커다란 바위. 바위 같이 굳건하게 그 자리에서 자신의 할 일만 하고 있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바위는 함께 옮겨야 한다. 바위를 언젠가 치워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다. 감정이 없는 돌가루 휘날리는 회색 인간들은 욕망만 가지고 있다. 서로를 존중하는 사랑이 없는 곳은 죽은 땅일 수밖에.


사회의 문제점? 회색 인간들이 모여 커다란 바위가 되었고 그 바위는 혼자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겁고 땅 속 깊이 박혀있다. 이것을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이러한 이념들이 뿌리내려 혼자 사는 데만 급급한 세상이 만들어졌다.      


리맨이라는 사회적 기업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이 커다란 바위에 균열을 만드는 것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려 하는지도 모른다. 위험을 무릅쓰고 유용한 가치를 알리기 위한 모험과 도전을 한다는 뜻이 담긴 기업가 정신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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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지난 일주일 동안의 길찾기 일지다. 아직 일주일이 더 남아서 다음 주 글도 이렇게 올라올 예정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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