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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찬 Apr 20. 2023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모였다

4.14 기후정의 파업

별다를 게 없는 날. 하루만 견디면 주말이라는 해방감에 물든 평일이었다. 살면서 마주할 수많은 금요일 중 하나였으며, 일어나서 보았던 아침 풍경의 모습이었다. 2023년 4월 14일 금요일은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 중 하나였고 다른 누군가는 주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들에게는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려 모이는 날이었다. 평일임에도,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리는 동시에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모였다. 4월 14일 세종시에서 열린 기후정의 파업 이야기다.


나는 이전 글에서 말했듯 99도(대안학교청소년기후정의연대)에 속해 있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기후정의를 외치기 위해 연대하는 우리 단체는 각 학교에서 학생들을 모아 이번 기후파업에 참여했다. 세종까지 먼 거리를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참여해 준 학교 친구들, 연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게다가 우리만 기후정의를 외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함께 목소리를 낸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서 함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지금과 완전히 다를 세상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불평등이 사라지고, 서로 돕고 나아가기 위한 세상이 그려지는 동시에 우리의 노력은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우리가 세종까지 가기에는 거리가 있어 부담되는 상황이었지만, 관광버스 기사님들이 모인 노동조합에서 버스비를 깎아주셨다. 기사님이 마이크를 잡고 "함께 싸워나갑시다. 투쟁!"이라는 말씀을 하실 때 나는 느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지금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미래는 오늘 내가 무엇을 하며 보내는지에 따라 바뀌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버스 기사님이 하신 '투쟁'이란 낱말을 곱씹으며 뒤에 있을 파업 행사를 상상했다. 투쟁은 어떤 것을 얻기 위해 싸우는 것을 일컫는 낱말이다. 기후정의가 실현된 사회를 바라는 우리들은 지금 투쟁을 하러 나선다는 걸 인지한 채 안전벨트를 맸다.


 세종에는 사람이 많이 모여 있었다. 4,000명 정도 되는 사람이 모였다고 후에 들었지만, 그 이상인 것 같았다. 사람은 빼곡했고 규모는 굉장히 컸다. 가장 놀라운 건 평일에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노동자들과 단체들이 의기투합하여 모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같은 학생들까지 한 마음 한 뜻으로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파업'을 했다. 아마도 그들은 앞으로 다가올 평일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대로 계속 흘러가 지구의 환경이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다면 우리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는 평범한 '일상'이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싸우러 온 것으로 보였다. 4.14 기후정의 파업에 참여한 4,000명의 사람들은 학교에 안 간 게 아니고, 회사에 안 간 게 아니다. 세상에 좀 더 오래 남아 있기 위해, 아니 더 많은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종으로 등교(출근) 한 거다. 오늘이 없으면 내일도 없으니까. 다음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만약 이런 대규모 시위를 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모여서 목소리를 냈다. 다음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라는 불안과 초조함을 안고 있으면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향상심이고 투쟁심이다. 우리는 투쟁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모두가 가치 있는 삶을 살길 바라며 말이다.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으면 하고 싶을 때 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걸 잃었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무한 경쟁 속에서 사람들은 죽어나간다.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일하게 하는 기업,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빠질 수 없는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인해 사람들은 죽어나간다.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아 돌아가신 수많은 노동자들,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인해 날씨가 계속해서 바뀌며 이 날씨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너무나 치명적이다. 급증한 난방비로 인해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해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의 문제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생긴다. 자동차가 생겨서 음주운전 같은 사고가 일어나고 IT기술이 발전해 게임 중독 같은 현상이 생긴다. 이런 것에서 비롯되는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과 정부는 많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정작 어려운 사람 한 명 돕지 않는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가장 소중하게 여겨져야 할 사람의 목숨과 자연 본연의 모습을 말이다.


그래도 아직 할 수 있다. 더 나아지기는 어려워도 멈출 수는 있다. 4.14 기후정의 파업은 그런 의미를 갖는다.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을 멈추는 동시에 기후위기를 앞당기는 체제를 잠깐 동안이라도 멈추고 싶은 것이다. 바뀌는 것이 없더라도 우리는 해야만 한다. 결국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 만약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삶과 내 삶이 아직 만나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다. 자신이 한 행동은 돌고 돌아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우리가 일상을 잠시 멈춘 그 행동은 후에 기후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로 돌아오지는 않을까. 천천히 오래가야 할 세상에서 정부와 기업은 빨리빨리만을 외치며 사람들은 밟고 지나간다.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기후위기로 인한 불평등을 겪지 않는 걸 기후정의라고 부른다.


4,14 세종 기후정의 파업은 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이 행동으로 인해 사회체제가 조금씩 바뀌어 기후정의가 실현된다면 그 역사의 한 순간에 우리가 있었다는 것이 된다. 기후정의 파업에서의 기억은 시간이 흘렀을 때 아련한 추억으로 남고 아련했던 그 추억은 하나의 형태로 만들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른다. 기후정의 파업에 참여한 우리들은 모두 역사에 남을 게 분명하다. 우리는 잠시 멈추기 위해 멈추었다. 멈춘 채 각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단체, 장애인, 빈곤층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공감했다. 가장 중요했던 건 사회단체, 장애인, 빈곤층으로 불리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모두가 평등하게 사람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같은 사람이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낯설게 만들었던 사회체제에 대해 다시 목소리를 내었다. 우리의 멈춤은 숨 고르기였다. 더 큰 목소리를 내기 위한 숨 고르기.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역사를 만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잠시 멈추었다. 우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을 만들기 위해 투쟁했고, 투쟁할 것이다. 미래는 오늘 내가 무엇을 하며 보내는지에 달려 있기 마련이다.


나 혼자 꿈을 꾸면 한낱 꿈일 뿐이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꿈을 꾼다면,
그것은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 된다.
-훈데르트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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