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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찬 Nov 07. 2023

개별로 존재하다 만나는 것은

11월 4일 대안학교 학생축제 비하인드

맨땅에 헤딩

지난 11월 4일 토요일, <대안학교 학생축제>가 진행됐다. 이 축제는 대안학교 학생연대 참여자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진행한 행사였기에 더 뜻깊은 축제였는데, 거의 한 해 동안 준비한 축제가 끝났으니 연대 회장으로서 느꼈던 점을 써볼까 한다. 꽤 오랜 기간이 걸려 준비한 만큼 할 말이 많은데, 이제는 그걸 이야기하고 싶다. 축제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지금이 아니면 도저히 쓸 수 없을 것 같으니 말이다.      


지난 4월, 대안학교 학생연대(이하 학생연대)는 첫 모임을 가졌다. 첫 모임이라 그런지 다들 어색한 기색이 역력했고 우리가 올해 어떤 행사를 진행하며 대안학교 학생끼리 모일 수 있는지 이야기 나누기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올 한 해 연대를 이끌어갈 회장과 부회장, 연대의 예산을 관리할 총무, 회의록을 정리해 줄 서기를 뽑는 정도였다. 우리는 대안교육이라는 큰 틀 안에서 개별로 존재하고 있었기에 같은 대안학교 학생인 걸 알면서도 낯설어하며 첫 만남을 진행했고 숙박으로 진행된 회의인 만큼 밤에 이야기를 나누며 각 학교의 문화를 알아가는 것으로 시작했다.  


첫 모임에서 느낀 점을 말하면 코로나로 인해 닫혔던 교류의 문을 다시 열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서로 만날 수 없었던 2년 동안 연대에 참여하는 학생은 매번 바뀌었고 직전의 학생연대 문화, 시스템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2년의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찰나일지 몰라도 우리, 하다 못해 나에게 있어서 놓치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었다. 회장을 맡게 된 나에게는 과제가 생겼다. 지난 2년 동안 대안학교 학생들이 만나지 못하며 퇴색된 교류의 의미를 찾아야 했으며 우리가 지금 모이지 않으면 모일 수 없다는 경각심을 가진 채 올해가 마지노선이라 생각하고 임해야 했다.      


학생연대의 회장?

학생연대의 특징은 학생주도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인데, 이건 양날의 검이었다. 학생들이 어떤 것을 기획하는 만큼 끝나고 나면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지만, 그게 만약 잘 되지 않았다면? 책임은 오롯이 학생에게로 돌아간다. 학생 시절에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도 좋지만, 가중된 부담이라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의미는 옅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내가 해야만 했다. 학생연대의 다른 친구들이 책임지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조금 고생하는 게 나았다. 만약 학생연대 친구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기억할지 모르겠다. 회의를 진행하며 “저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보다는 여러분의 의견이 실현될 방안을 고민하겠습니다.”(왜곡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라는 말을. 회의가 시작될 때마다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실제로 많은 의견을 내지 않았다. 내가 낸 의견은 학생연대 친구들이 낸 의견에 몇 가지 추가한 것에 불과했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그 책임을 내가 지려고 했다. 어떤 의견이 오가든 실현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여러 단체, 개인과 소통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다시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개인을 점차 모으다 보면 더 이상 개인이 아니지 않은가. 당연하게도 내가 노력하는 만큼 학생연대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었다. 다른 친구들이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되자 할 수 없을 일이라 생각했던 교류의 문을 여는 게 점점 할 만하다고 여겨졌다. 여기서 느꼈다.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는 없고 다 함께 해야 한다고. 그리고 단체를 움직이는 사람이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나는 책임질 준비가 된 채로 움직였다. 학생연대 친구들이 보기에는 확신에 찬 모습이었을 거라 생각하는데(아닐 수도 있다.), 사실 아무것도 확신하지 않았다. 그래서 겁이 났지만, 일부러 태연한 척 지내며 우리가 해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을 주었다. 이 과정에서 나 개인의 확신보다 우리의 확신이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새로 배웠다.      


지난 4월 첫 모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나를 포함한 학생연대 사람들은 참 많이 바뀌었다. 예전 사진 보면 외모도 조금씩 달라져 있었지만, 가장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한 건 학생연대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는 것이다. 지난해 연대를 참여한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만나다 보니 학생연대를 좋게 바라보지 않았다고 들었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다고 느껴진다. 맨 처음엔 어색하기도 해서 선뜻 나서기 어려웠지만, 계속해서 만나다 보니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는데, 회장을 맡고 있었으나 내가 여기서 한 건 하나밖에 없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만남을 계속해서 추진한 것이다. 무조건 참여하라고 닦달하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닦달한다고 해서 좋은 성과를 낼 거란 생각도 안 할뿐더러, 학생연대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한 학교를 대표해서 오는 사람들이다. 즉, 행동을 하면 답이 나올 걸 아는 사람들이다. 행동을 하면 답이 나올 수 있는 사람이 행동을 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건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문화였다. 나, 그리고 학생연대는 닦달에서 비롯된 경직된 문화가 아니라 오프라인 회의를 추진하는 문화를 통해 2년 동안 닫혀 있었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대안학교 학생연대가 가진 의미

앞서 말했듯 우리 학생연대 참여자들은 대안학교 학생들이 모일 수 있게 논의를 이어가는 게 주된 활동이다. 당연히 선생님이 관여하지 않고 전국 각지 대안학교에서 모인 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대화가 꽤 잘 된다. 우리는 다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별로 놀랍지도 않은 대안학교를 다닌다는 사실인데, 대안학교라는 우리의 공통점은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대안학교에서 추구하는 가치인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고 있는 우리는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끝까지 들어주는 것은 기본이고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혹자는 당연하게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세상 밖으로 나가보면 이런 기본을 지키지 않는 곳이 많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한 거지만, 세상에는 당연한 것을 홀대하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학생연대는 기본부터 출발해 돈이 아닌 사람을 남겼다.      


사실 연대의 본질은 개인이 만나 단체가 되는 것이다. 각자 다른 인격체들이 만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연대의 본질이다. 각자 다른 개인이 모여 서로를 안고 나아가는 것은 이상주의일 수 있으나 우리는 그것을 현실로 만들었다. 특별한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늘 하던 일을 했을 뿐이다. 얘기를 귀담아듣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말이다. 대안학교에서는 이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상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삶의 주된 가치인 공동체 정신을 함양한 채 살아가는 대안학교 학생들이 모여 연대하고 교류하며 우리만이 아닌 다른 학생들도 만날 수 있게 준비했던 기억이 추억으로, 추억이 역사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대물림된다면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축제그 후

다 끝났다. 나에게 부담을 주어 나를 눌러 앉힐 수도 있었고,  부담을 이겨내 내가 더 성숙해질 수 있었던 두 가지 갈림길이었다. 나는 나를 믿지 않았다. 끊임없이 확인했고 구멍 난 곳은 없는지, 준비가 부족한 부분은 없었는지 확인하면서 30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를 다시금 느꼈다. 나의 행동거지 하나가 대안학교만의 축제를 망칠 수도 있고 더 활기차게 만들 수도 있었다.     


내가 앉아 있던 자리가 그런 자리였다. 모두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무너지면 우리가 준비한 모든 게 물거품이 될 게 분명했다. 쉴 수 없었다. 그리고 나와 학생연대 친구들이 주도하는 이 행사의 흥행여부에 따라 외부 지원이나 대안학교의 인식에 영향을 끼친다는 그 무게감을 뼈저리게 느꼈다. 300명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인원을 통솔하고 이끌며 모두가 즐길 수 있었던 축제를 만들었다는 것은 내게 있어 아주 큰일이었다. 축제가 임박한 일주일 동안은 잠도 줄인 채 준비에 임했다.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별거 없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좋다는 이유 딱 하나다. 대안학교 학생들은 서로 만날 기회가 상대적으로 흔치 않으나 대안학교 학생이라는 것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모두가 서로를 배려할 줄 안다. 게다가 자신의 길을 자신이 찾는다. 이런 비슷한 학생들이 한 데 모여 즐기는 자리를 갖지 못했던 지난 2년의 시간을 3년으로 늘리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나를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졸업하기 전에 대안학교 학생들을 더 만나고 싶었고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다른 곳에서 실천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의 후배들, 혹은 다른 학교의 후배들에게 우리 학생들이 축제를 스스로 준비했다는 것을 강조했으며 함께 기획하거나 참여한 게 좋은 경험으로 남길 바랐다. 만약 공연을 했다면 무대에 올라가 나중에 무대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으로 변모한다면 정말로 뿌듯할 것 같고, 축제에 참여해 열심히 즐겼다면 다음에 이런 행사를 직접 기획하거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게 내가 추구하는 의미였고 가치였다. 나는 나와 같은 대안학교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게다가 대안학교라는 공동체는 정말 따뜻했다. 가장 먼저 돈도 안 받고 심지어 밥을 사주면서까지 음향 부스에서 애써준 졸업생 선배 덕분에 공연을 비롯한 축제가 전반적으로 원활히 진행될 수 있었다. 특히 음향관리는 내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었다. 경험과 무대를 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졸업생 선배가 선뜻 나서 도와준 덕에 성황리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웠다. 주말에 나와 피곤할 텐데 나서준 졸업생 선배를 보고 대안학교의 공동체의 유대감을 다시금 느꼈다.    

  

한 분이 더 계신다. 축제 대관 장소의 담당 선생님. 우리의 축제가 잘 이루어질 수 있게 백방으로 지원해 주셨고 짐도 날라 주시며 정말 많은 부분을 지원해 주셨다. 게다가 내가 잘 모르는 것들을 알려주시며 많이 도와주셨는데, 덕분에 정말 많이 배워갔다. 어느 것을 기획할 때 소통하는 거나 맞춰야 하는 것들을 배우며 한 단계 더 성숙해질 수 있었다. 축제가 끝난 지금 돌아보면, 축제를 준비라던 그때의 난 아직 어린아이였다고 느끼지만, 여러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받고 영향을 받은 지금은 그때보다 성숙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축제를 준비하며 나는 리더가 되는 법을 배웠다. 300명을 컨트롤한 건 둘째치고 학생연대 친구들이 내준 의견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였다. 학생연대 친구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노력하는 법을 익혔다. 리더는 희생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 희생은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젠 안다. 나는 그저 대안학교 학생들이 좋아서 맡았고 좋아서 행동했을 뿐이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이런 축제 기획하면 얼마 받느냐고 말이다. 바로 대답했다. 돈보다 중요한 게 따로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어떤 내용인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러나 확실한 건 어떠한 형태로든 금전적인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금전적인 것을 바라는 순간 축제를 준비하며 내가 느꼈던 부담감은 모두 돈으로 환산된다. 조금 풀어서 설명하면 모든 행동들이 돈을 받기 위해서로 바뀌고, 돈을 바라게 되면 대안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개인의 이득에 무게를 두게 된다. 나는 축제를 준비하며 어떠한 형태로든 금전적 이익을 바랐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축제는 우리 모두가 즐겨야 하지만 돈과 같은 물질만능주의 사상이 개입하는 순간 즐기는 것은 뒷전이 되고 축제 준비를 하는 모든 이들이 축제를 준비하면서 느끼는 힘듦을 불쾌함으로 전환하게 될 게 뻔했다. 불쾌함이라는 화폐는 우리가 중요시 여기는 대안교육의 가치인 공동체 의식을 개인주의로 바꾸어 버린다. 물론, 학생연대 활동을 하며 돈을 받지는 않지만, 내게 질문을 했던 분이 이 글을 본다면 꼭 설명하고 싶었다. 우리는 돈이 아닌 사람을 남긴다는 것을.


이제는 글을 마쳐야 할 듯싶다. 나를 포함한 대안학교 학생연대 친구들은 모두 각자 개별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축제는 개별로 존재하던 우리들이 만나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의 연속이었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을 함께 해내며 서로 가까워지기도 했다. 각자 존재하던 개인이 강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우리는 서로 도울 거였으니 말이다. 이제 내게는 졸업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내년 학생연대 참여자들에게 맡겨야 할 때다. 나는 이렇게 느낀다. 평생 남이 닦아 놓은 길만 따라갈 게 아니라면, 내가 새로운 길을 내야 한다. 누군가 그 길을 따라온다면 그걸로 됐다. 그걸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니 말이다.  

    

개별로 존재하다 만난 우리는 서로를 보고 큰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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