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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찬 Dec 31. 2023

올해의 끝자락에서 처음을 바라보다.

2023년 배움의 기록들 1

<마지막을 앞두고>라는 마지막 해의 소회를 담았던 게 벌써 1년이 다 돼 간다니 믿기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마지막 한 해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고, 지금의 나는 마지막 한 해를 떠나보내며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떠나보내는 건 언제나 어렵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나에게는 2023년이 정말 소중했다. 그리고 많은 걸 배운 해이기도 했다. 마지막이라는 말과 함께한 올 한 해의 삶은 그래서 소중했고 아쉬웠고 즐거웠다. 이제는 2023년의 끝자락에서 2024년을 맞이해야 할 때다. 


1월 / 이별과 함께한 1월은 내가 바뀔 수 있던 순간의 연속이었다.


1월은 시작을 의미하는 설레는 달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아쉬움이라는 감정이 찾아왔다. 4년 동안 함께 학교를 다녔던 선배들이 졸업했으며 여러 가지 일도 조금씩 겹쳤다. 이별이라는 건 언제나 어려운 것 같다. 영원하지 않을 걸 알면서 영원하지 않길 바라는 사람의 바람이 이어져 인연이 되는 것 아닐까. 학교에서 학생 대 학생으로 마주하지 못한다 해도 계속 만날 수는 있지만,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었던 선배들이 곁에 없다는 걸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던 기억이 난다. 


이런 막막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찾아오며 나에게 남은 1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졸업한 선배들이 없는데, 회장으로서 학교를 잘 이끌 수 있을까라는 걱정, 후배들과 함께 학생자치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졸업학년으로써의 마지막 배움의 과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나의 진로를 어떻게 모색해야 할지에 대한 끝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여기서 느낀 건 이별이 막상 닥치면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약해진다는 거였다. 누구에게나 이별은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이별 후에 자신에게 닥칠 걱정과 고민을 아무렇지 않게 만드는 게 어렵다. 나에게는 그랬다.  


졸업한 선배들의 모습은 내가 "후회 없는 1년을 보내자"라는 다짐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배움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내가 배운 것 그 이상을 행하기 위해 의미 없이 보내던 방학을 바꿔나갔다. 예전에는 밤낮이 바뀐 채 미디어에만 의존하던 방학이었다면, 올해의 겨울방학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의 생각을 확립하고 내 안의 앎을 넓혀나갔다. 책은 평소에도 읽는 편이었고 글 역시 자주 접했다. 그런데, '객관', '나의 언어'라는 두 가지 제한을 두고 글을 쓰는 건 쉽지가 않았다. 주관적인 글을 쓸 때도 그것이 나의 언어인지 계속해서 확인했고 객관적인 글을 쓸 때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지를 가장 신경 썼다. 그렇게 책과 글이 함께하는 1월을 보내며 나는 점차 바뀌었다. 


당장 2022년까지만 해도 학교의 부회장으로서 역할을 다하며 학교생활을 했지만, 나를 바꾸고 싶었다. 부족한 것들을 채워나가는 배움의 과정을 겪으며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기 시작한 1월의 나는 책을 통해 다른 이의 경험을 흡수하고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했다. 자연스레 생각의 폭이 깊어지고 다른 이에게 내어줄 공간이 생겼다. 야구에서도, 삶에서도 '만약'은 없지만, 내가 만약 무의미하게 1월을 보냈다면 그때의 나, 지금의 나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을 내 손으로 바꾸기 시작한 1월은 그것만으로 특별했다. 


2월 / 체력이 필요했다. 체력이 없다면 정신력은 구호밖에 안 되니까.


4년 동안 학교를 다녔던 당시의 나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품고 같이 가고 싶었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때로는 뒤에서 밀어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체력이 필요했다. 어린 시절 야구선수를 준비하며 기초체력과 멘탈은 준비가 돼 있었지만, 그것을 1년 내내 유지하기란 어려웠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는 정신적 체력도 필요하다. 결국은 체력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프로운동선수들이 비시즌에 운동을 해서 체력을 기르듯 나 역시도 그래야 했다. 확실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었다. 


<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말하듯 무슨 일을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이었다. 체력이 없으니 자꾸 편안한 걸 찾게 되고 약해지는 거였다. 체력이 없으면 정신력은 구호밖에 안 됐다. 체력을 조금 더 길러 다른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힘을 품고 싶었다. 특히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던 마지막 학년은 일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훨씬 더 튼튼한 체력이 필요했다. 마지막이라서 더 필사적이지 않았나 싶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을 계속하다 보니 뭐가 보였다. 집중력이 생겼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체력이 받쳐주니 1월에 시작한 책 읽기와 글쓰기 등의 활동을 하는 데 속도가 붙었고 집중력이 생겨 이해할 때까지 붙잡게 되었다. 이것을 확실하게 느낀 게 마르틴 하이데거라는 독일 철학자가 쓴 <숲길>이라는 책을 읽으면서부터였다. 2월을 이 책과 함께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다. 실제로 형이상학, 존재론, 의식의 경험의 학문 같은 생소한 이론들이 이 책에 들어 있었고 하이데거라는 철학자가 미워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그동안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어려웠던 책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 책이다. 


아무튼 간에 책의 내용이 어렵다 보니 잠깐 멍 때리고 있으면 내용이 담기지 않은 채 다음 장으로 넘어가곤 했는데, 집중력이 길러지고 나니 책의 내용을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깨달음에서 얻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는 형언하기 어렵다. 체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주도적인 배움을 행하다 보니 스스로 바뀌어간다는 걸 느꼈다. 이때 정말 중요하게 느낀 건 내가 1년 내내 글에서 강조한 책에서의 경험이었다. 아무리 매체가 발달했다 하더라도 책에서 얻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책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나는 마지막 개학을 마주했다.


3월 / 낯섦과 설렘은 시작과 함께다.


개학을 했다. 새로 입학한 친구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기대와 학생회장이라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역할은 학교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처음으로 맞는 마지막 학년은 3월부터 시작됐다. 늘상 첫 학기의 첫 순간이 그렇듯 정신없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학년에 적응하랴, 후배들이랑 친해지랴, 해야 할 일 찾으랴 여기저기 뛰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인 만큼 후회 없이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고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지막 한 해가 이렇게 빨리 지나갈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마지막 학년이라 친구들이랑 있는 시간도 늘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친구들과 놀러 갔고 그때마다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3월이 특히 그랬다. 미래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밤늦게까지 하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밥 해 먹고 놀기도 했다. 우리가 이렇게 논 이유야 많지만, 그중 한 가지를 꼽자면, 마지막에서 오는 아쉬움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함께 보낸 5년은 정말 특별했다. 서로가 커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우리는 더 끈끈해졌고 학교에서의 1년을 더 소중하게 느끼게 됐다.


낯설었다. 회장이라는 자리가, 대숲(고2)이라는 학년이 말이다. 매년 찾아오는 3월이지만, 회장으로 맞이하는 3월은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설렜다. 입학할 때부터 꿈꾸었던 자리기도 하고 그 꿈을 이룬 채 다른 사람들 앞에 서 있으니 말이다. 3월은 낯설었지만, 그동안 해왔던 게 있으니 두렵지 않았다. 스스로 의미 있게 보냈다고 생각하는 지난 겨울방학을 생각하면 자신 있었다. 체력을 기르고 교양을 쌓았던 지난날들의 순간이 모여 학교에서의 배움을 더 알차게 만들어 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가호의 <시작>이란 노래는 "새로운 시작은 늘 설레게 하지"로 시작한다. 나의 3월도 그랬다. 낯설었지만, 설렜다. 내가 꿈꿨던 회장을 맡고 있다는 건 거창하게 말하면 꿈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이며, 꿈이 이루어졌으니 다른 꿈을 찾아야 했다. 다른 꿈을 찾기 위해 보낸 3월이었다. 시작은 늘 설렘과 함께였다. 


4월 / 일정이 쌓이기 시작했지만, 견딜 수 있었다.


4월이 되었을 때 나와 친구들은 대숲 학년에 대한 적응을 마치고 학교를 재밌게 다니고 있었다. 사실 적응이랄 것도 없었다. 대숲 학년이 어떤 학년인지에 대한 이해 정도만 있으면 충분했다. 다만 마지막인지라 해야 할 일이 조금씩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학교를 재밌게 다녔다. 일정이 조금 빈다 싶으면 바로 누구 집에 가서 고기 구워 먹고 밤새도록 놀았다. 그리고 학교를 가는 게 반복됐다. 마냥 즐거웠다. 


전체회의 진행을 하면서도 개그를 날릴 만큼 편안해졌고 동아리장을 맡고 있는 요리 동아리 배프(움터길 셰들) 활동도 즐겁게 했다. 그런데 회장과 마지막 학년이라는 특수성은 바쁜 일정으로 작용했다. 당장 옆 학교에서 교류 이벤트를 제안해 왔고 주축으로 활동했다고 말할 수 있는 어느 연대에서의 과정을 정리해야 했다. 이 와중에 <길찾기 집중주간>이라는 장기적인 진로 탐색 수업이 4월 말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대안학교 학생연대>가 처음 모이기 시작한 것도 4월이었다. 학교 생활은 편해졌지만, 학교 바깥으로 나가봐야 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 배움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들으며 이루어진다는 것 역시 깨달았던 순간의 연속이었다.


쉽지는 않았다. 일정이 끝나면 일정이 있는 게 일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방학에 갈고닦은 지적 의식과 체력이 빛을 발했다. 적어도 3년 전의 나였다면 지치는 동시에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을 텐데, 4월의 나는 공짜로 배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엄청난(?) 생각을 했다. 다행히도 몸이 잘 버텨주었고 컨디션이 좋지 지 않은 친구들이 있을 때 건강한 상태로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컨디션이 안 좋은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걸어가며 나만이 아닌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깨달아 나갔다. <길찾기 집중주간>에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다양한 사회단체와 대학을 탐방하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한 나만의 철학을 확립하기 시작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4월은 내가 한 뼘 더 업그레이드되는 시기였다. 이때 일정에 짓눌려 끌려가듯 살았다면, 나는 삶의 의미를 늦게 인지한 채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을 게 뻔했다. 


그러고서 <대안학교 학생연대>의 회장을 맡았고 어느새 4월이 지나가 있었다. 일정이 쌓이기 시작한 4월이었지만, 대비를 해둔 덕에 즐겁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었다. 결국 나의 과거가 축적되어 의미 있는 4월을 보냈다. 야신 김성근 감독은 비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떤 순간이 와도 대비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나 역시 나에게 믿음을 갖지 않고 다음 것을 생각해 두었기에 4월을 잘 마무리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5월 / 일정은 배우고자 하는 나를 막지 못했다.


5월도 <길찾기 집중주간>과 함께였다. 매일 같이 일지를 썼고 일지를 쓰면서 하루를 돌아보니 그날이 얼마나 가치 있었는지 깨닫기도 했다. 배움의 순간들이었다.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된 배움이었고 그 경험은 내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학교에서는 마음껏 실수해도 됐다. 왜냐면 학교니까. 학교는 무엇인가를 배우고 학생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자라날 수 있게 하는 곳이다. 학교는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학교에서는 요리하는 법, 집을 짓는 법, 함께 살아가는 법 등을 가르치며 학생들이 마음껏 경험하게 해야 한다.


<길찾기 집중주간>에 이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마지막 학년이 되어서야 내가 대안교육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돌아봤다.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함께 말이다. 학교가 주는 배움과 그 의미를 깨달은 나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앞만 봤던 것 같다. 학교에서의 배움을 길게 가져가고 싶었던 마음밖에 없었던 것 같다. <길찾기 집중주간>을 마치고 내가 느꼈던 소회를 여기에 모두 담을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나는 <인문학으로 바라본 야구의 세계>라는 주제로 야구계에 대한 칼럼을 쓰며 길찾기 집중주간을 보냈다. 


이 와중에도 <대안학교 학생연대>, 학교의 학생회, <문화제> 준비를 멈추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느끼지만, 일정이 있어도 군말 없이 할 수 있었던 까닭은 학교에서의 배움이 내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여타 대안교육기관과 마찬가지로 우리 학교 역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을 중요시하는데, 학교의 철학을 이해하니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그저 학교 사람들이 좋아서 움직이는 나를 보기도 하고, 더워지기 시작하는 날씨에 흔들리지 않고 어떤 게 더 의미 있는 삶인지 고민하는 나와 마주하기도 했다. 


배움을 갈망했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인간다운 성숙을 스스로 이루어내고 싶었고 그러려면 기본적인 것들을 배우며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이 배움은 다양하게 이루어졌는데, 사람을 통해서, 책을 통해서, 심지어는 나의 모습을 보고 이루어지기도 했다. 다채로운 배움과 함께였던 5월을 금산에서 마무리하며 앞으로 남은 시간이 반년 조금 넘게 남았다는 걸 실감했다. 5월을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길게 느껴졌지만,  유독 시간이 짧은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시간이 흘러가는 걸 모를 만큼 매사에 진심을 다했다는 느낌이 든다. 새로운 환경은 시간을 늦췄고 느릿해진 시간 사이로 새로운 경험, 지식과 함께 넓어진 시야가 잊히지 않을 흔적을 마음에 아로새기며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것을 체감하는 순간 5월이 지나가 버렸다. 


6월 / 잊을 수 없는 장면들과 함께였다. 


일정에 익숙해질 때쯤 6월이 찾아왔고 5월을 기점으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더 깊게 사유하기 시작했고 내 생각을 어떤 언어로 전달해야 하는지 알아가기 시작했다. 바빠도 책 읽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할 일을 찾아서 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노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다음날에 학교를 가야 해도 시간이 있으면 무조건 놀았는데, 밥 해 먹고 노는 게 너무 즐거웠다. 밤늦게 새벽 공기를 맞으며 나가서 놀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아무 생각 없이 순간을 즐겼다. 난 아직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집 앞 놀이터와 주황생 가로등 불빛, 그 아래 서 있던 친구들. 낭랑 18세라는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렸다. 


<길찾기 집중주간>이 끝나고 바로 <문화제>를 준비해야 했는데, 5년 동안 해왔던 문화제인 만큼 후배들에게 경험을 나누어주려 했다. 언젠가 소개했듯 우리 학교는 학교의 행사를 학생이 직접 기획하는데, 내가 그동안 해온 경험을 나눠주는 것은 그것 자체로 의미 있었다. 지난 <길찾기 집중주간>부터 경험이 왜 중요한지를 몸으로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후배들이 나서는 것을 보며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나 역시 학생이라 모르는 게 있었고 그럴 때마다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았다. 나는 아직 더 배워야 한다는 걸 느끼기도 했고 부족한 것을 다른 방식으로 채워나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선배들의 졸업을 걱정했던 나는 언제부턴가 걱정한 적이 있냐는 듯 적응해 나갔다. 선배들의 빈자리를 친구들, 후배들과 채워나갔다. 물이 가득 찬 컵에 끊임없이 물을 붓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빈자리를 채워나갔다. 그 순간이 좋았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후배들, 친구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모두가 한 곳에 모여 의견을 나누고 우리가 배운 것을 어떤 방식으로 나눌지 고민하는 장면은 지금이 아니면 오지 않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시선에서 내가 '친구들'이란 카테고리에 묶여 있기를 바란다. 


이런 순간들을 만끽하던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벌써 반년이 지났다는 걸 말이다. 아쉬움에서 시작한 2023년의 절반이 벌써 흘러가 있었고 내게 들어 있던 아쉬움이란 감정은 또 다른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학교의 즐거움, 배움의 의미와 가치를 너무나 늦게 깨달았다는 아쉬움이 내게 밀려들어왔다. 반년 동안 내가 행한 것들을 돌아보니 더 그랬다. 조금만, 더 일찍, 만약이라는 현실성 없는 말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렀고 어느새 문화제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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