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찬 Feb 03. 2024

ABS(자동 볼 판정 시스템)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자동볼판정 시스템(ABS) 비판

1. 2024년 KBO리그의 변화


올해 KBO리그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피치클락과 ABS를 운영하기 시작하여 더 빨라진 야구, 공정한 야구를 추구하겠다는 다짐이라 할 수 있겠다. 피치클락은 메이저리그(이하 MLB)에서도 적용 중인 규칙이며 실제로도 경기 시간이 단축되는 효과를 얻었다. 피치클락에 대해서는 부상 우려도 물론 존재하지만, 아직까지는 야구의 역사를 바꿀 룰이라는 호응을 받고 있는 중이다. 2023년에 MLB에서 운영하기 시작한 피치클락은 올해 KBO리그에도 도입될 예정이다. 


다만, 올해 KBO리그에는 MLB에서도 적용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룰인 ABS를 최초 도입하기로 했다. 이유야 당연하게도 공정성과 더불어 볼판정으로 인해 겪는 선수와 심판 간의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기 위해서다. KBO는 2020년부터 퓨처스리그에서 ABS를 시범 운영해 왔고 자잘한 오류나 개선점들을 반영한 후 현장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공정성과 더불어 경기시간이 단축될 것 같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ABS 도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2. ABS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


1) 야구는 어떤 스포츠인가


야구를 정의해 보자면 3개의 베이스를 돌아 홈으로 들어오는 경기다. 조금 더 살을 붙이면, 9명이 한 편이 되어 9회까지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가며 승패를 겨루는 경기도, 상대 투수의 공을 타석의 타자가 치면서 루상을 전진하다가 홈을 밟으면 1점을 얻는 스포츠다. 그런데, 정의가 아닌 의미를 생각해 보면 조금 복잡해진다. 여백의 의미가 넓고 깊다. '야구는 인생이다.'라는 말처럼 예측하기 힘든 일이 한 경기 안에서 모두 일어난다. 도전과 실패의 과정, 웃고 우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래서 50년 이상 경력의 언론인 레너드 코페트는 저서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야구가 과학이 아닌 예술이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밝혔다. 야구는 불확실한 인간적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자연법칙이 아니며 무수한 직관과 의지의 산물이라는 해석이다. 즉 야구는 불확실한 인간적 요소가 만드는 예술이라는 의미를 가지기에 충분하다. 야구는 축구, 농구 같은 타 스포츠와 달리 시간제한이 없다. 한 이닝당 3명의 타자가 아웃되기 전까지 그 이닝이 끝나지 않고 정해진 시간 속에서도 승부를 겨루지 않는다. 야구에서 타자 한 명, 투수 한 명, 공 하나의 의미는 시간을 초월한다. 


대한민국에서 2000년대 이후로 야구를 즐기는 연령과 성별이 다양해짐에 따라 야구는 하나의 현상이 아닌 대중문화로 자리 잡았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도 야구가 인기 있는 까닭에 대해 염경엽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야구장에 오면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흥분이 된다. 친구 따라왔다가 응원하는 재미에 빠져들고, 서서히 야구에 대해 알게 되면서 계속해서 야구장을 찾게 된다." 여기에는 144경기 모두가 시즌 중에 모두 중계되는 탓도 크다. 염경엽 감독은 야구의 매력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야구는 자신이 감독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작전을 내서 투수를 바꾸고 대타를 내고 번트를 댄다. 야구를 9회까지의 인생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게 야구의 매력이다...(중략)"


야구는 불확실한 인간적 요소가 만드는 예술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야구를 좋아하는 까닭은 예측을 불허해서,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경기를 즐길 수 있어서다. 야구는 예술이다. 현재 말이 많은 이미지 인공지능(AI Image Generator)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예술에 인공지능이 붙어 있는 게 자연스러운지 묻고 싶다. 예술은 인간 자신의 자기 철학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타자는 타격의 기본원리에 입각해 방망이를 휘두르지만, 그 방법은 타자마다 다르다.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공을 더 잘 맞출 수 있는 스윙을 하는 이도 있고 공을 더 멀리 보내기 위한 스윙을 하는 이가 있다. 사람마다 다르니 다른 방식의 야구를 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이미지 인공지능은 자아가 없는 인공지능의 작품에 예술성이 있느냐에 대한 질문이었다. 즉 하나의 예술인 야구 안에 인공지능이 들어있을 수 있는가?


인간의 예술에는 넘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한 사람의 작품 속에는 그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 상상,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겨있기 마련이다. 야구 역시 마찬가지다. 야구는 인본주의적인 스포츠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스포츠에서 심판을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공정성에 대해서는 다음 목차에서 다루겠다. 



2) 직업적인 면에서의 심판의 존재가치 하락


공정성은 야구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에 있어 중요한 잣대다. 그중에서도 볼판정은 선수의 기록, 팀의 성적과도 연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다. 이 볼판정 때문에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는지 필자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공정성을 중요시하려는 심판의 중요성과 직업적인 면에서의 심판의 존재가치다. 


먼저 심판은 플레이에 대한 판정을 내린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공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ABS가 도입된 후 달라진 존을 적응하는 과정에서 심판의 판정과 받아들이는 게 달라져 인공지능이 판정하는 시스템이니 무조건 옳다는 관념이 생기게 된다. 크게 보면 심판의 오심과 다를 게 없다.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공이 타자 입장에서 스트라이크로 보이니 말이다. 어필의 대상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ABS가 인간보다 정확한 건 사실이니까.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뻗어나가 투수 입장에서 자신의 장점으로 사용하던 코스의 결정구가 볼로 판정받았을 때는 투수는 자신의 기량을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며 여기에 더해 기량을 의심하게 된 투수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기 위해 한가운데로 슬슬 던지거나 피해 가는 승부를 하면 투수들의 기량은 하락하게 되고 이는 곧 국제대회 경쟁력도 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ABS의 공정성은 적극적으로 바라볼 만하지만, 그것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며 받아들이려는 계획은 검토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세계 야구의 표본이라고 불리는 MLB에서도 아직 검토하고 있는 걸로 보아서는 조금 더 지켜보는 게 리그의 발전이나 흥행에 있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성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오심이 아니더라도 판정에서 비롯된 갈등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이것은 심판뿐 아니라 선수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그럼에도 심판은 사람이 해야 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그때의 내용과 크게 바뀌진 않는다. 야구의 본질은 인간이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그중에서 야구는 공을 매개체 삼은 인간이 주체가 된다. 공을 던지고 치고받으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야구는 공을 던지기 위해 인간과 인간이 소통하고(배터리), 뜬 공을 누가 잡을지에 대해 인간과 인간이 소통한다(콜플레이), 그리고 인간이 하는 스포츠기에 실수(실책)가 나오고 시련(슬럼프)을 견뎌내는 인간을 보며 인간(관중)이 환호한다. 게다가 야구는 희생을 거룩하게 여겨 기록(희생타) 해 주는 유일한 스포츠다. 희생은 우리가 팀이라는 공동체 정신이 깃들어 있는 단어다. 인생을 한 치 앞도 모른다고 표현하고 인간 역시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하는 일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다르고, 심지어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르다. 이런 예측불가능한 스포츠인 야구를 즐기려면 인간이 필요하다. 인간이 주체인 스포츠인 야구 경기를 인간이 아닌 존재가 진행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은지 묻고 싶다. 뭔가 괴리감이 느껴질 것 같지 않은가? 게다가 계속해서 말하는 오심에 대한 공정성은 인간이기에 나아질 여지가 있다. 인간이 주체인 스포츠를 기계가 진행한다면 공정하고 일관성 있다는 평가가 뒤따를 것이다. 그런데, 공정과 일관성이라는 두 단어가 마냥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우리에게 박진감을 주는 건 사람의 모습이다. 기계에게 명령(볼판정)을 받고 움직이는 건 꼭두각시로만 보일뿐이다. 


심판은 사람이 해야 한다. 물론 관습이 바뀌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심판들은 더 이상 권위만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같은 야구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하며 경기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란 걸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야구 규칙에 따르면, '타구가 심판을 맞고 굴절되어도 볼데드로 간주하지 않는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심판은 경기장에 없는 존재로 간주된다는 뜻이며 경기장 안에서 심판의 역할은 판정밖에 없다. 그런 심판의 역할이 판정이 아니게 된다면 심판의 존재가치는 없어진다. 심판은 그라운드에서는 없는 존재지만, 꼭 필요한 존재다. 그렇기에 더더욱 로봇이 대체할 수 없다. 만약 판정에 대한 갈등이 벌어졌다면 서로의 간극을 좁혀나가려는 시도를 하면 된다. 심판도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 있고, 선수도 사람이기에 볼판정에 예민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둘 다 사람이기에 실수하고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어도 둘 다 같은 인격체임을 인지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ABS에 기대지 않고도 야구를 즐길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심판들은 예로부터 로봇만큼 정확하지는 않아도 인간적인 판정을 해왔다. 야구팬이라면 알 만한 0B 2S에는 비슷하게 꽂히지 않는 이상 스트라이크 콜이 잘 들리지 않고 반대인 3B 0S에는 엄청나게 빠지지 않으면 스트라이크 선언을 한다.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다. 조금 돌아가서 우리는 지금 취업 문제로 허덕이는 청년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국가의 지원은 없다시피 하지만, 많은 직업이 로봇으로 대체되는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필자도 그중 한 명이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이 주체가 되는 야구에서조차 심판이 로봇으로 대체된다면 심판의 직업적 존재가치는 떨어진다. 물론 이어폰을 끼고 판정하지만, 그는 노동의 신성함을 느끼지 못하고 볼판정에 대한 노하우조차 가지지 못한 채 로봇의 꼭두각시가 된다. ABS의 약자에는 자동을 뜻하는 'auto'가 들어 있다. 자동이 주는 편리함은 인간의 성장을 막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3) 빠름을 추구하며 바꾸면 다인 줄 아는 사회


세상이 빠르게 변했다. 쇼츠, 릴스, 틱톡 같은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우리 삶 곁으로 스며들었다. 이러한 매체를 접한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도 결론이 요약된 짧은 것을 찾는다. 야구가 그렇게 될지 모른다. 아니, 그렇게 되고 있다. 날이 갈수록 빠름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야구는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야구는 축구나 농구처럼 코트를 누비는 격렬한 운동으로 보이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느긋해 보이기까지 한다. 사회가 빠름을 추구함에 따라 야구는 그 본질인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있다. 


사람들이 빠름을 원하는 순간부터 야구는 바뀌기 시작했다. 피치클락 같은 경우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는 것은 동의하지만, 야구의 인간성 및 예술성을 망쳐서는 안 된다. 누구나 루틴이 있다. 운동을 해본 사람은 안다. 루틴을 지키지 않으면 불안하고, 정해진 시간 내에 준비를 끝마쳐야 하는 압박감은 온전한 자신의 기량을 뽐내기 힘들게 한다고 말이다. 빠름을 추구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빠름을 추구함에 따라 지루함을 못 견디는 것에 길들여져 야구를 즐기는 세대가 한정적이게 됨을 뜻한다. 야구는 빠르지 않다. 플레이 시간은 짧지만, 대기 시간이 길기 때문인데, 그 순간 속에서 자신이 감독이 되어 야구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게 야구의 매력이라고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빠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어느 것에 문제가 있으면 바꾸라고 말한다. 다른 대안은 내놓지 않고 오로지 교체만을 외친다. 심판도 그렇다. 오심에 따른 공정성과 충돌에 문제가 있으니 바꾸라는 여론이 나와 ABS로 대체될 예정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바꾼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이번에 도입되는 ABS 역시 적응 면에서 많은 혼선을 빚을 게 분명하다. 인간은 기술을 도구로써 사용해야지 주체로서 사용하면 안 된다. 기술은 인간의 편리를 위해 개발되었음에도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절로 붙는다. 인간을 대체한다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인간의 설 자리를 빼앗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ABS를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인간들이, 특히 야구계의 선수, 심판, 코칭스태프, 구단 관계자들이 서로가 같은 인격체임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존중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서 생겨나고 야구인들이 ABS가 시행되는 원인이 무엇인지, 그 원인을 다른 방법으로 타파할 수는 없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 빠른 걸 위해서, 혹은 맹목적인 신뢰만으로 기존의 시스템을 단번에 깨트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사회상이 변함에 따라 인간이 사는 모습도 다양해졌지만, 그 무엇도 인간의 본질을 헤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올해의 끝자락에서 처음을 바라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