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교사로 함께 한 여행
내가 졸업한 학교에서는 졸업생이 지원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원교사는 교육과정을 이수한 졸업생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친근하게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아이들 역시 자신들과 가깝게 지내던 선배가 졸업하고서 학교에 찾아오면 반갑게 맞아주곤 한다. 아직 학생이던 때 졸업하고도 학교와 후배들을 위해 애써준 선배들을 보며 많이 배웠고, 어려운 점이 있으면 터놓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지원교사로 와준 선배들을 보며 느낀 사실은 학교를 졸업해도 학교, 그리고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지원교사로서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현재 학교에서 맨몸운동, 생활체육(풋살), 그리고 마을여행에 지원교사로 나가고 있는데, 오늘은 3살 아래 후배들과 함께한 마을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배움터길(필자가 졸업한 학교)에서의 여행은 봄학기 동안의 배움을 마무리하고 여름학기를 준비하는 시기다. 각 학년별로 도보(작은나무), 공정(가온나무), 마을(큰나무), 책(솔숲)이 테마가 되어 여행을 떠나는데, 앞서 이야기했듯 내가 지원교사로 함께한 여행은 마을여행이다. 마을여행에서는 학생들이 농장으로 찾아가 그곳의 지역 주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지내는 과정의 여행이다. 배움터길에서의 여행은 놀러 가는 게 아닌,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시선을 넓혀 배움을 행하는 엄연한 교육과정인데, 나는 학교의 교육과정을 모두 이수한 졸업생임에도 불구하고 4박 5일 동안의 마을여행에서 배우고 느낀 게 정말로 많았다. 학생 때는 그저 농사일을 하는 법, 우리가 유기농 농산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만 귀에 들어왔는데, 졸업 후 지원교사로서 여행에 함께하게 되니 지역 주민분들이 추구하시는 의미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교사로서 아이들을 만나는 게 얼마나 보람찬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여행 2주 전부터 나는 함께 여행을 떠나는 큰나무 학생들을 만나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쏟았다. 우선 4박 5일 동안의 아침, 점심, 저녁을 준비해야 했고, 아이들이 마을에서 하는 노작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안내를 조금씩 해줘야 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을여행이 의미 있는 배움 활동이 될 수 있도록 소외되는 학생 없이 모두가 즐거운 여행 분위기를 조성해야 했다. 여행에서 학생들이 추억을 쌓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준비하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말한 활동을 잘 살펴보면 모두 학교를 다니며 자연스럽게 했던 것들이다. 학교에서 밥상을 차려보는 수업을 해봤고, 소외되는 후배나 친구 없이 모두가 즐기는 것, 여기에 더해 추억과 배움을 만들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은 어떻게 보면 매우 당연한 거였다. 동시에 나 이전에 지원교사로 함께한 선배들이 같은 전철을 밟아 내게 물려주었다고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가슴이 뛰기도 했다. 학교와 후배를 생각하는 마음이 대물림되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준비를 마치고 떠난 4박 5일의 여정은 큰나무 13명, 큰나무의 학년교사(담임) 한 분, 학교의 행정교사 한 분, 그리고 나까지 총 15명이 함께하는 일정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걱정도 좀 됐다. 내가 5년 동안 학교에서 배운 걸 행한다고 생각해도 '교사'가 되어 가는 것과 학생일 때 가는 것은 다를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5명의 식사를 책임진다고 생각하니(그래도 같이 간 두 분이 많이 도와주셨다.) 부담도 되었다. 여기에 더해 일정도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아침 식사를 준비할 때 일정에서 정해진 기상시간보다 1시간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는 등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니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4박 5일 동안 일정을 소화하고 좋은 컨디션으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학교와 학생들을 향한 애정, 그리고 같이 간 선생님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나만 힘든 게 아니란 사실이다. 큰나무의 학년교사를 맡고 계신 분은 아이들과 함께 농사일을 하시는 동시에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계셨으며, 행정교사를 맡고 계신 분은 제천에 사시는데, 초등학생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차량으로 합류하시는 등 엄청난 일정을 소화하고 계셨다. 이 두 분께서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신 걸 옆에서 본 나도 더 힘내서 밥을 하고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을여행에서 함께한 선생님들이 학교와 학생들에 대한 애정을 갖고 계셨기에 4박 5일의 일정을 잘 소화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분명히 달랐다. 학생이 아니라 지원교사가 되어 여행을 함께하는 것 말이다. 학교를 같이 다니긴 했지만, 학생들이 나를 어려워하면 어떡할까란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사진을 찍는 대상도 내가 아니라 학생들로 바뀌었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놀기보다는 다 함께 재밌게 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런 과정에서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4박 5일을 지내며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소외되는 학생 없이 모두가 즐거운 여행이 되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중점을 맞춘 고민을 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학생들이 나를 어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워했다. 나를 볼 때마다 "오~~ 차니(교사들은 별명을 쓰는데, 내 별명은 차니다.)~!"라고 맞아주는 학생과, "형, 쑥을 먹으면 쑥쑥 큰대!"라며 개그를 치는 학생, 어깨를 두드리며 "근육 빵빵?"이라고 말하는 학생 등등 어렵거나 어색해하지 않고 반겨주며 자신들의 내면에 내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학생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어려워하지 않으니 나 역시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나를 어려워하지 않아 다행이었던 만큼 더 가까이에서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고 교사와 학생 사이 그 중간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었다. 이와 동시에 소외되거나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말을 붙이는 게 낯선 학생이 있으면 모두가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거듭 말하지만, 같이 여행을 간 큰나무 학생들이 너무나 좋은 아이들이었다. 조금 늦어도 기다려주고, 편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뭇거리는 친구에게 말을 걸어주는 등 남녀 할 것 없이 즐거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교사로 간 여행이지만, 오히려 교사의 시선으로 학생들을 만나니 배우는 게 정말로 많았다. 학생일 때와는 결이 다른 책임감을 느꼈고, 함께 일하고 나누는 삶이 왜 중요한지 농장에서의 생활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마 나보다는 직접 몸으로 익힌 학생들이 더 잘 알 것 같지만, 학생들이 이런 것들을 배울 수 있게 뒤에서 노력하고 있었다 생각하니 괜스레 뿌듯해진다. 선생님들과의 회의 자리에서 학생들이 나를 믿고 잘 따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오빠는 좋은 선생님 같아.", "형, 밥 해주느라 수고했어." 같은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학교를 다닐 때 한 선생님께서 내게 해주신 말이 있다. "답답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많지만, 아이들이 해주는 따뜻한 말과 행동을 보면 그게 싹 가신다." 이제야 어떤 말인지 알았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있으며 배운 것이다. 마을여행 기간 동안 나는 선배이기도 했고, 교사이기도 했다. 마을여행에서 함께한 선생님 중 한 분께서 학생들을 향한 애정 어린 마음을 표현하셨을 때 가슴이 울렸다. 교사라는 직업은 아이들을 만나는 아주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4박 5일을 큰나무 곁에서 보내며 학생들이 더 가까워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학생이 사정이 생겨 남은 남은 여행 기간에 함께하지 못하게 됐는데, 나는 그때 진심으로 친구를 걱정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걔가 같이 있었으면 더 재밌었을 텐데"라며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며 큰나무 학생들이 참 좋은 아이들이란 걸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남은 여행 일정을 함께하기 어려워 누구보다 아쉬워할 친구를 위해 진심을 담은 글을 써주는 학생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가까워지고 있었다. 친구를 걱정하는 이들의 순수한 마음은 나를 돌아보게 했고 더 가까워지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은 앞으로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4박 5일이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원교사로 함께한 4박 5일 동안의 마을여행은 학생들이 서로를, 농부들의 삶을 이해하고 앞으로 남은 학교생활을 잘 준비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 기간 동안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차니'라는 별명으로 함께 지내며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를 들여다보며 귀중한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