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조영래
초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태일이>라는 만화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충격은 잊히지 않는다. 내가 본 만화들의 결말은 주인공이 결국 목표를 이뤄내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태일이>는 반대였다. 이 만화의 주인공은 흔히 말하는 ‘안락한’ 생활을 평생토록 하지 못했다. 22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칠 때까지 말이다. 만화 속 전태일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굉장히 침울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에서야 느끼지만, 그때 처음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시선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침울해했던 그 순간을 지나고 <태일이>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때 전태일 열사의 삶을 다룬 <전태일 평전>을 접했다. 전태일의 삶을 읽으며 거꾸로 된 사회를 뒤집으려는 사상과, 인간을 향한 사랑과 인간성을 엿볼 수 있었다.
<태일이>를 읽었던 어린 시절에는 단순히 사회의 불합리함에 맞서 투쟁했던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때가 되니 그의 가슴속 연대하고자 하는 정신과 사랑이 보이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전태일은 ‘안락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 평생토록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살았고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던 1년도 채 안 되는 시절을 “오직 나를 위해 존재하는 시간 같았다.”라고 묘사했는데, 여기서 많은 걸 느꼈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학교를 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에게는 당연함마저 사치였다. 당연함 마저 당연하지 않았던 그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면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어 진다. 전태일에게 있어서 학교를 가는 일상은 내일의 인간다운 삶을 약속하는 배움의 보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수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늘과 그늘을 오가며 자라온 나는 한없는 행복감과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서로 간의 기쁨과 사랑을 마음껏 느꼈습니다. 내일이 존재하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나는 내가 살아 있는 인간임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고 진심으로 조물주에게 감사했습니다.” 15세였던 그는 배움의 나날을 보내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서로를 사랑하는 기쁨이라는 ‘인간만의 특권’을 마음껏 누렸다. 청옥공민학교 시절의 그가 꿈꾼 것은 부와 명예가 아니었다. 수기를 통해 언급하였듯 그늘과 그늘을 옮겨 다녔던 이 청년은 그의 이웃들 역시 그늘과 그늘 사이에서 절망의 나날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역설적으로 서로 간의 사랑을 통한 전태일의 기쁨은 곧 그로 인한 슬픔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그가 남긴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하루는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런 환경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라는 수기를 보았을 때야 느낄 수 있었다. 전태일이 사회의 불합리, 부조리에 맹렬히 저항했던 까닭은 그 역시 그늘진 곳의 삶을 잘 알고 있었을뿐더러 이런 생활에서 비롯된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의 가슴속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은 사회개혁의 높은 꿈과 사명감을 그에게 심어주었다.
그의 어린 시절 가치관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장면이 있다. 거리의 천사였던 16세의 전태일이 수기에 이름 붙인 ‘부한 환경’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가 고학을 위해 집을 나오고 여동생을 미아보호소에 맡겼던 것도 ‘부한 환경’이라는 냉혹한 현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태일은 이를 악물었다. 저주받은 현실에 결코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을 거부하는 ‘부한 환경’에 짓눌려 버리면 안 된다고 끊임없이 다짐하며 절망감을 밀어냈다. 16살 소년의 꾀죄죄한 몰골은 자신을 억누르고 거부하고 옭아매며 자신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 가려는 비정하고도 냉혹한 사회현실의 힘에 도전하는, 온몸을 다해 자신의 인간성과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찾으려는 약하디 약한 밑바닥 인간의 처절한 투쟁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언제든지 밑지는 생명을 연장하려고 부단히 애쓰는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다.”는 청옥 시절의 꿈을 이루어야 했다. 그것만이 그의 쓰라린 삶에 대한 보상이었고 계속해서 자신을 거부했던 ‘부한 환경’에게 돌려주어야 할 인간적인 대답이었다. 실제로 그는 당구장에 우산을 팔러 나갔다가 어떤 여자에게 들은 폭언을 통해 위의 신념을 드러내고 있다. “변명은 말라, 너희들이 그런 지저분한 변명을 하니까 밤낮 그 모양 그 꼴인 거야. 이 거지 같은 자식아.”라는 그녀의 말을 기록하며 “내내 도도하라.”라고 말하고 있다. 전태일은 ‘밤낮 그 모양 그 꼴’인 게 그가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뒤집어씌우고 혐오하는 ‘부한 환경’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들고 있는 것이다. 왜 그것이 전태일의 책임인가? 태어날 때부터 거지가 따로 있고 ‘도도한 사람’이 따로 있는가?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같은 인간을 경멸하는 도도한 인간들을 향해 “내내 도도하라.”라고 퍼붓고 있다. 이 말인즉슨 ‘내내 도도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는 뜻이 아닐까. 16살 전태일의 성장과정은 자신을 거부하는 ‘부한 환경’의 실태에 대한 비판, 그리고 ‘부한 환경’과 싸워서 이기려는 의지가 확립되던 시기였다. 저자인 조영래 변호사는 이 부분에서 “현실이야 말로 가장 좋은 교사다. 그 현실의 가장 깊은 질곡 한가운데에서 몸부림치면서 자기의 심장으로 느끼고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었던 사람이야 말로, 교과서의 해설이나 권위자의 암시를 통하여 왜곡되는 일이 없는 현실의 벌거벗은 모습을 생생히 본 사람이야 말로, 현실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자신의 인간성을 가장 열렬하게 지킬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전태일은 이때를 기점으로 현실과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16살 전태일의 삶을 보고 19살인 나와 빗대어 보았다. 그는 현실이라는 지독히도 차가운 교사와 만나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배웠다. 지금의 나는 현실이라는 교사에 대해 절반 정도만 알게 된 경험 없는 청년일 뿐이다. 그러나 전태일의 업적이 아닌, 전태일의 삶을 읽었다. 그가 내 가슴속에 지핀 불꽃이 점화되어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인간의 주된 가치인 사랑이 어떤 것을 뜻하는지 미약하게나마 깨닫게 됐다. 어느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순간 이전보다 성숙해지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완벽하게 이해하기엔 모자를 수 있어도 그가 얼마나 존경받고 본받아야 할 사람인지는 말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지금 계속해서 강조하고 싶은 건 그가 품고 있었던 인간을 향한 사랑이다. 달리 말하면 그가 진정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삶을 공감하고, 수많은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을 위해 투쟁할 수 있었던 거라 본다.
전태일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을 비교하면 많은 게 달라져 있지만, 사회의 모습만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인간을 비료화하며 쓰다 버리고, 인간다운 대우조차 하지 않았던 1960~1970년대를 간단히 표현하면 인간을 비인간으로 만들고 있는 사회였다. 지금은 노동환경에 대한 처우가 많이 나아졌지만, 전태일이 안타깝게 여긴 공장에서 일하는 한창 뛰어놀 때의 13살에서 19살의 아이들은 지금 노동 대신에 입시라는 환경에서 자신을 잃어 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시다가 미싱사로 승진해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꿈이 좋은 대학에 가서 안정적인 삶을 살겠다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시다가 미싱사가 되기까지 걸리는 4~5년 동안 다락방 속에서 온갖 병을 앓는데, 지금의 학생들도 별반 다를 건 없다. 인간다운 삶을 상실하는 병에 걸리는 것이다. 전태일이 살았던 시대든 지금의 시대든 간에 인간을 비인간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 사회는 스스로 인간다운 삶을 되찾으려고 일어서는 사람들을 향해 조소를 던지고 그들을 바보라고 낙인찍는다. 노예사회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간이 되려고 발버둥 치고 맞서 싸우려는 사람들을 비정상적이라고 취급한다. 전태일이 어느 친구에게 남긴 글을 보면 그는 “현실의 조롱과 냉소가 너무나도 잔혹하고 괴로웠다.”라고 했다. 깊은 실의와 낙담에 빠져 좌절과 자학을 거듭한 그가 박차고 일어날 때 인간과 사회의 현실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가 이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말했듯 그는 부조리한 현실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바보회’를 거쳐 ‘삼동회’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전태일 사상’이라고 이름 짓고 싶다던 노동하고, 사랑하고, 투쟁하는 한 젊은이의 참으로 주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인간적인 사상의 형성기였다. 마치 칠흑 속에 불꽃이 튀기듯이 말이다.
앞에서 잠깐 다루고 넘어갔지만, 우리는 ‘안정적인 삶’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다소 도전적일 수 있지만, 안정적인 삶은 곧 ‘부’를 뜻한다. ‘부’라는 말을 낱낱이 파헤쳐 보면, ‘부’의 본질은 재산으로 사람을 지배한다는 뜻이란 걸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부자의 부유함은 가난한 사람의 빈곤으로 인해 두드러진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부자들의 재산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재산으로 사람을 부리며 그를 통해 자신의 부를 훨씬 돋보이게 만들곤 한다. 나라로 범위를 넓혀 봐도 마찬가지다. 선진국의 부의 원천이 무엇인가. 우리가 후진국이라 칭하곤 하는 가난한 나라의 재산(자원)과 인력(이주노동자)이다. 빈익빈부익부라는 말만큼 경제를 잘 나타내는 말은 없다. 경제를 발전시키면 발전시킬수록 가난한 사람, 가난한 나라는 부유한 사람과 나라의 독점으로 인해 더욱 가난해지고, 그 반대로 부유한 사람, 부유한 나라는 더욱 잘 살게 된다. 불평등을 원료로 한 사회가 전태일이 바라본 사회였다. 부, 그것은 안일함이다. 전태일이 바라본 안일한 삶은 무엇인가? 아무리 화려한 생활의 연속일지라도 감방 안에 갇힌 죄수가 감방 벽에 화려한 그림을 그려 놓고 자기도취에 취한 꼴에 불과한, 어리석은 행복이 아닌가. 전태일은 안일한 삶을 바라지 않았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스스로가 택한 길이 ‘양심의 명령’이므로 진리이며, 역사가 그것을 증명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남들과 같은 안일한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면 그는 자신을 꾸짖었다. 그런 삶에서는 가치를 찾을 수 없는 의미 없는 삶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태일이 생각한 삶의 이상은 인간이 서로를 사랑하며 오늘보다 내일의 삶을 더욱 낫게 노력하는 것이었다. 여기의 ‘양심의 명령’이라는 말이 참 묘하다. ‘스스로가 택한 길’이라고 이야기하긴 했으나, 스스로 선택을 할 때는 자신의 가치관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그러한 가치관은 어디서 형성되는가를 생각해 보았을 때 전태일은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이었기에, 그늘과 그늘 사이에서 살아가면서도 그림자 속에서 부조리한 인간사회의 실태를 통해 ‘현실’이라는 교사를 만난 것이다. 아무런 해설이나 편향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회를 바라본 전태일이 할 수 있던 행동은 전태일의 사상, 즉 밑바닥 인간의 사상이자, 억압받던 인간이 사회의 부조리함을 느끼고 행동하려는 사상이었다. 결국 현실과 마주한 어린 나이에 길러진 가치관이 전태일에게 있어서 ‘양심의 명령’이었고 곧 진리였던 것이다.
그는 노동절 행사 때마다 “이 나라의 경제 성장은 묵묵히 땀 흘려 일하는 산업전사들의 헌신 덕분”이니 뭐니 입에 발린 소리를 떠들며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노동자들의 복지를 뒤로 미루려는 이들(지식인, 정치인, 자본가 등등)의 횡포에 환멸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에게 보내는 서한(전송되지 않았음)에 노동자들의 참상을 열거하고 “이것도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입니까?”라고 항의했다. 노동자뿐만 아닌 모든 민중이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약육강식의 질서 아래 짓밟히는 모습을 본 전태일은 노동자들을 ‘부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기업주들의 모습이 사회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있다 생각했다.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 전체가 ‘인간의 둘레를 얽어매고 있는 타율적인 구속’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이 타율적인 구속 아래 물질적 가치로 전락해 버렸다. 인간이 인간에게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박탈당하고 박탈하는 시대였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적인 존재다. 전태일이 말한 ‘전체의 일부’가 바로 그것이다. 지위, 재산 등과 상관없이 인간은 기뻐하고 슬퍼할 줄 알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다. 즉 모두가 가치적으로는 동등한 인간인 것이다. 그러나 전태일이 본 인간사회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인간 최소한의 요구는 묵살당하기 일쑤였고 너무나 불의했다. 전태일은 인간이었기에 인간의 존엄한 권리를 되찾고자 투쟁했다. “나의 전체의 일부여.”라고 쓰인 수기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전태일이 아가페적인 사랑을 통해 연대하고자 했던 것이다. “내가 앞장설 테니 뒤따라 오게나.”라는 그의 말은 무조건적으로 그의 말을 따르라는 게 아니라 거꾸로 된 사회를 뒤집어 놓기 위해서는 누군가 앞장서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가 언급했듯이 노조가 몇 명의 자본가들에게 눌리는 까닭은 조직화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전태일을 따랐던 이들 중 그의 사람됨에 이끌렸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그에게는 신념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던 듯하다. 현실과 한패가 되지 않으려는 신념과 더불어 인간과 인간을 엮어주는 정신, 그것을 사랑이라고 칭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의 저자 크로포트킨은 동물들이 야생에서 살아남는 까닭은 상호경쟁이 아니라 상호부조를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흔히 이야기하는 “뭉치면 산다.”와 같은 맥락이다.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것은 곧 한쪽은 낙오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상호부조라는 것은 같은 군의 동물끼리 연대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이 대조적인 두 단어를 인간 사회에 대입해 보면 상호경쟁을 통한 자본주의 사회는 빈익빈부익부라는 불평등을 낳았고, 상호부조를 통한 연대와 투쟁은 4.19, 5.18 등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변화의 바람을 불어왔다.
전태일의 투쟁은 비인간적인 현실에 의해 파괴되어 가고 있는 모든 인간상을 위한 투쟁이었다. 어느 영웅심리가 아니라 진정한 인간이 낼 수 있는 목소리였다. 인간 된 삶을 향한 투쟁, 그것의 근간이 되는 사랑. 전태일은 돌아가야 했다. 전태일의 결단대로, 밑바닥 인생에서 사회의 부조리함에 저항하는 불꽃이 되어야 했다. 우리는 보았다. 한 명의 인간이 도저히 바뀌지 않을 것 같던 잔혹한 사회의 벽을, 다시 말해 무관심의 벽, 한기가 서린 상업주의의 벽,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의 억압과 침묵의 벽을 파괴해 버리는 깊은 곳에서 끓어 나오는 처절한 분노와 사랑의 불길을 보았다. ‘참되다’의 정의는 어쩌면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바칠 수 있다는 것 뜻하지 않을까 싶다. 참으로 바라는 게 있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절절하게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바라는 게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위해 “나의 생명까지 바칠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 반항하는 청년의 몸부림은 칠흑 속의 불꽃이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 한 순간의 불꽃만이 보이듯이 보지 않으려는 자들에게 노동자들의 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게끔 만들었다. 그늘과 그늘의 그림자 속에서 살며 배운 것 없이 살아간 전태일은 참된 가치를 실현했다.
전태일은 우리 가슴속에 살아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그는 여전히 우리에게 현실과 타협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전태일이 불꽃이 된 지 50년 넘은 시간이 흘렀고 우리 사회의 모습도 달라졌다. 달라진 것은 전태일이 측은하게 여기던 여공들 또래의 학생들이 입시라는 지옥에서 인간다운 삶, 즉 서로 간의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전태일 같은 인간이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 똑똑한 사람, 현명한 사람이 되어 남들을 속이고 속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전태일의 외침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인간을 물질화하며 쓰다 버리는 사회, 인간이 주체성을 잃고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 사회를 바라본 것이었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지섭이 말한 것처럼 ‘죽은 땅’이 된 사회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인간 전태일이 보여주고 실천했던 사랑을 통한 연대가 필요하다.
모두가 내 전체의 일부라는 마음으로 모든 이를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