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나의 엄마....
병원 2층으로 올라가자 엄마가 있다는 병실이 있었다. 병원, 병실...그 어떤 경험도 없었던 나는 막연히 TV에서 보던 그런 병실을 상상했다.
어둡던 복도, 누군가 문을 열었다.
들어선 곳에는 아무 빛도 색도 없었다. 눈이 내리는 겨울이었고 맑지 않은 날이었지만 낮이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어떤 빛도 없었다. 차츰 적응된 눈에 널찍한 마루 바닥, 왼편에 모포같은 것을 둘러쓴 엄마가 있었고, 그것을 제대로 보기 이전에 온기 하나 없는 공기가 느껴졌다.
나는 엄마가 나를 보자마자 "아이고 내 새끼..."라고 울며 불며 나를 껴안을거라고, 나도 그간의 모든 그리움을 그렇게 쏟아내고야 말거라고, 그렇게 엄마를 데리고 나올거라고 작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나와 이모를 보면서도 어떤 반응이 없었다. 한 사람이 있기엔 넓은 공간, 그러나 온기는 없고 오히려 벽쪽에 가로세로 약 50센치 가량의 뚫린 구멍, 아무 감정 없이 다만 웅크리고 바닥에 앉아 있는 엄마.
엄마는....내가 왔다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와락 안기며 엄마도 나도 서로를 보듬는 장면은 없었다. 아무 감정 없어 보이는 엄마 앞에 나도 얼어붙었다. 엄마는 그냥 엄마가 아니었다. 나를 낳고 경제력 없는 아빠 때문에 하숙을 치는 힘든 상황에서도 그 이후에도 우리 남매를 떼어놓은 적이 없다. "잠깐 내가 봐주마"고 나를 데리고 서울로 가는 외할머니를 택시타고 쫒아와 기어이 나를 데려간 엄마였다.
서운할 틈도 없이 그곳에 있는 무엇이라도 집어서 바람이 새는 벽의 그 구멍을 막느라 애를 쓸 뿐이었다. 이모가 엄마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 듯 했지만, 엄마....나 왔어, 나야...라는 말에 제대로 대꾸도 못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황당함, 당혹스러움, 배신감, 서운함 아니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에 휩쓸렸던 듯 했다. 그곳을 어떻게 나왔는지 아직도 기억에 없다. 다만, 다음날 나는 우리 가족이 살던 집에 갔고, 가방을 찾았다. 우리를 잃어버린 것 같은 엄마를 위한 나와 내 동생들의 사진, 편지지, 펜, 엄마를 위한 겨울 옷 등등을 담아 이모에게 건냈던 것만 기억이 난다. 꼭 엄마에게 전해달라고. 그리고 그 이후는 내 기억에 없다. 11살에게 그것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면피할 뿐.
훗날 엄마가 돌아온 뒤, 그리고 오랫동안 나는 그들을 기억하면서도 모른척 했다. 왜 그랬을까. 진즉 나는 그 의사를 고뱔하거나 가족들 사이에서 고모와 그 며느리를 폭로할 수도 있었는데. 나는 왜 아무일 없었던 듯 살았을까.
엄마가 암에 걸려 내 곁에서 살때 아픈 엄마를 보면서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모의 며느리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그 딸에게 네 엄마가 무슨 짓을 했인지 아느냐고 알리는 상상을 했다. 틈틈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검색하던 그 의사의 딸이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그 사람이 그 고통을 충분히 겪기를 바라기도 했다. 실제로 나는 학회를 통해 그 사람이 작고했다는 소식을 받고, 딸이 자살하기 전에 죽었다는 사실에 실망하기도 했다.
아무튼 1985년의 그날 이후, 나는 엄마를 어떻게든 보호해야만 했고, 그래서 자유롭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