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처럼 인식된 그 고통, 그 기억
영문도 모르고 시작된 이별, 그리고 어떤 의미의 방치라는 시간. 11살의 내가 보호받는다는 느낌은 커녕, 누군가로부터 동생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내던 1년 여. 어느날 엄마가 불현듯 사라졌을 때 우리를 돌봤던 이모가 내 앞에 나타났다. "엄마 보러 가자."
나뿐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가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모는 나를 데리고 엄마를 만나자며 어디론가 갔다. 그곳은 'OOO 정신병원' 우리가 원래 살고 있던 집에서도, 당시 우리가 살고 있던 고모집에서도 차료 넉넉잡아 10분 거리였다.
어디든 상관 없었다. 엄마만 볼 수 있다면. 병원 입구를 들어서 소파가 놓인 로비. 이모와 나와 의사가 대치하듯 앉았다. 엄마가 어떻게 이곳에 와 있는지 이모가 어떻게 알았는지, 왜 이제서야 알게됐는지 나는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여기에 엄마가 있다는 것, 그곳에 내가 와 있다는 것에 나는 그저 들떴다. 얼마 만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엄마가 이곳에 있다니, 엄마를 만나면 나는 엄마를 안고 모든 것을 이야기할 것이고, 엄마는 나를 안고 그 전의 내 모든 서러운 시간을 안고 녹여줄 것이다.
이모는 면회를 신청했지만 의사는 거부했다. 어린 아이, 즉 내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안도했다. 내가 엄마를 보지 못하고 가더라도, 저 멀찍이 서서 나를 보고 있는 고모의 며느리, 이 병원의 간호사가 엄마를 돌봐줬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정쩡히 서 있는 그에게 감사와 친절을 가득 담아 인사했다.
의사는 완강했다. 이모인지 나인지 절대 들여보낼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울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와서 엄마를 두고 갈 수 없다고, 잠깐이라도 좋으니 엄마를 보게 해 달라고. 제발...엄마를 보게 해 달라고 그 뿐이라고 울었다.
무엇에 포기했는지 의사는 나와 이모를 엄마에게 보냈다. 하지만...그는 끝내 그 모습을 나에게 보여서는 안 됐다. 정신과 의사라면 더더욱. 아니 그 전에 엄마를 그렇게 두면 안됐겠지.
병원이지만, 아니 정신병원이지만, 문 앞에서 만난 고모의 며느리를 보면서 나는 어떤 희망을 가졌었다. 그래도 엄마가 어떤 돌봄을 받았겠지. 그러나 그 기대는...엄마가 있는 곳을 들어서자마자 산산히 깨졌다.
차라리 그녀가 그곳에 없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