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집 2년 차쯤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종종 주문하던 손님이셨는데 뜻밖의 제안을 주셨다. 손님 본인이 코스트코 마케팅팀에 근무 중인데 '비즈니스 엑스포'라는 행사에 파이집도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너무 애정하는 파이집이라 자기가 적극 추천을 했다면서 파이집 홍보에도 도움이 될 거라며 권하셨다.
그땐 맘카페에서만 홍보하며 장사할 때라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전단도 없어서 급하게 만들고 친한 동생한테 같이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코스트코에서 해본 파이집 홍보
코스트코에서는 매대 앞쪽에 테이블을 제공해 줬다. 판매하는 건 아니고 상품 샘플을 진열해 두고 홍보만 했다. 준비해 온 호두파이를 작게 잘라서 종이컵에 담아 시식용으로 나눠주고 전단도 같이 돌렸다.
행사는 오픈부터 저녁까지 계속 됐다. 전단을 천장 넘게 돌렸다. 얼마나 홍보가 됐는지는 사실 알 수 없었다.
근데 어떤 여자 아이가 그 시식용 호두파이를 먹고 엄마한테 이 호두파이를 더 먹고 싶다고 졸랐단다. 그래서 주문이 왔다.
그때부터 파이집 단골손님이 된 가족 이야기이다.
어느 날은 파이 배달을 갔더니 그 댁 사모님이 날 붙잡고 막 웃으시는 거다. 어젯밤에 자다가 남편이 중얼중얼 잠꼬대를 하더란다.
"맛있어요.... 드세요... 드세요..." 이런 잠꼬대를 반복하길래아침에 일어나서 물어봤단다. 무슨 꿈을 꿨길래 잠꼬대를 그렇게 했냐고... 뭐가 그렇게 맛있냐고...
남편이 잘 떠오르지 않는지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무릎을 탁! 치더란다.
"아! 호두파이!"
꿈에서 거래처 사장님들께 이 호두파이 맛있다고 한 번씩 잡숴보라며 나눠줬단다. 떠올리니까 먹고 싶다며 당장 호두파이를 주문해 달라고 하셨다는 거다.
상상하니 너무 재밌어서 같이 한참을 웃었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주문해 주셨다.
명절 같은 때는 정말 거래처에 선물로도 돌리시고 간식으로 댁에서도 늘 주문 주셨다.
한 번도 많이 주문하니 할인해 달라거나 서비스를 달라고 요청하신 적도 없었다.
언제나 맛있는 파이를 구워줘서 고맙다며 감사의 인사를 해주셨다.
그러니 오히려 나도 막 퍼주게 됐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게 맞다.
나도 춤췄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주문을 안 하셨다.
꾸준히 주문하다가 주문이 끊기는 경우는 2가지 경우다.
질리게 먹었거나 이사를 갔거나.
그분들도 그런가 보다 하고 내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그런데 얼마 전에 파이집에 갑자기 그 손님이 찾아오신 거다.
오래전 친구를 만난 듯 너무 반가웠다!
손님은 지금 공항에서 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파이집부터 오신 거란다.
사실은 그동안 사업체가 커지셔서 해외로 나가셨단다.
거기서 적응하느라 너무 힘들었다며 괜히 나갔다고 하소연을 하셨다.
이번에 잠깐 남편과 한국에 들어올 일이 있어서 같이 오셨는데,남편이 비행기에 앉자마자 그러더란다.
"한국 가면 나 그 호두파이부터 좀 사줘! 너무 먹고 싶어!"
그래서 비행기가 도착하자마자 여기부터 찍고 오셨다는 거다... 세상에... 너무 감사하고 감동했다.
그러면서 다음에 한국올 때 또 올 테니 꼭 자리를 지켜달라고 절대 문 닫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가셨다.
..............
진상 손님 이야기가 아니라 고마운 손님 이야기다.
꿈에서도 호두파이를 찾으신 손님도 감사하고, 코스트코에서 홍보할 기회를 주셨던 손님께도 감사한 일이다. 사실 진상 손님의 비율은 매장 운영할 때 극소수다.
대부분은 친절하고 따뜻하고 배려해 주는 손님들이시다. 오래된 손님들은 우리 아이들 커가는 것도 아시고 종종 안부도 물어주신다.
물론 정말 간혹 만나는 뚜껑 열리게 하는 손님들 때문에 현타가 오기도 하고 장사를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다.
그게 워낙 강렬하게 남다 보니 훈훈한 손님들 이야기보다 진상손님 이야기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나 역시 요새 세상엔 또라이가 너무 많다고 느끼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가 반복적으로 진상 손님 이야기만 해서 더 크게, 더 많이 느끼는 게 아닐까. 돌아보면 내 주변엔 따뜻한 이웃들이 훨씬 많은데 말이다. 간혹 만나는 장애물은 너무 맘에 남기지 말고뛰어넘어버려야 할 텐데... 쉽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