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우리의 마지막 페이지

by 윤슬


이 이야기는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를, 한때 ‘우리’라고 불리었던 기록이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을 아직 기억할까. 나는 여전히 생생하다. 2023년 9월, 여러 기타 소리가 섞여 나던 동아리방. 그때 나는 어른스러운 척 애를 쓰던 스무 살이었고, 너는 졸업을 앞둔 스물다섯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어쩌면 그 출발선부터가 서로 다른 방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첫인상은 그저 '노래 잘하고 기타 잘 치는 신입 부원'이였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너 앞에서는 어떤 가면도 필요 없었다. 이미지 관리 따위는 잊은 채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였고, 그 편안함에 나는 가랑비에 옷 젖듯 너에게 스며들었다. "이제 연애는 안 해"라고 호기롭게 선언했던 다짐이 무색할 만큼, 나는 점점 더 깊이 너를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도 가끔 그날의 새벽 산책을 후회한다. 내가 무거운 진심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그 새벽의 공기를 함께 마시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너는 내 아픔을 듣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했지만, 결국 그 진심이 우리를 망가뜨리는 시작점이 될 줄은 몰랐다. 가정을 해본들 이미 끝난 관계라는 사실만 선명해질 뿐이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은 시리다. 첫 데이트와 첫 입맞춤, 우리가 가장 예뻤던 그 순간들은 어디서부터 길을 잃은 걸까.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연애는 똑같은 주제로 싸우고, 지치고, 다시 붙잡는 굴레에 갇혔다. 너는 내 우울증과 무기력증, 그리고 삶을 놓으려 했던 상처들을 다 알면서도, 정작 싸움이 시작되면 그것들을 날카로운 칼날로 바꿔 나를 베었다. "너는 정상이 아니야", "로봇 같아", "비정상이야". 너는 내 우울과 가정사를 핑계라는 이름으로 난도질했다.

나는 어느새 우리의 관계 속에서 '비정상적인 아이'가 되어 있었다. 5년이라는 삶의 경험치를 억지로 내 안에 밀어 넣으려 했던 너의 눈치를 보며, 나는 스물 살에서 스물 두 살의 내가 아닌 너와 같은 스물 다섯, 스물일곱의 모습으로 살기를 강요받았다. 참다 못해 내 안의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지던 날, 너는 오히려 "이제야 정신 차렸다"며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이 내게는 가장 잔인한 선고였다.

서로를 놓지 못한 채 상처만 주고받던 시간들 속에서 네가 망가지는 것을 보았고, 나 또한 애정 결핍이라는 이름 아래 너를 차마 밀어내지 못했다. 우리는 결국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너는 그 이유를 알고 있을까. 나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한때 우리였던 그 시간의 잔해를 헤매고 있다. 시간이 흐른 뒤 이 기록을 다시 펼쳐보았을 때, 그때는 우리가 왜 그토록 서로를 아프게 했는지 웃으며 답을 내릴 수 있을까. 다만 지금 확실한 건, 이 글을 끝으로 비로소 너를 향한 원망을 내려놓는다는 것이다. 서로가 독이었던, 행복했지만 아팠던 기록은 여기에 두고, 나는 이제 우리의 다음 페이지가 아닌 나의 페이지를 넘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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