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추리소설 part1.
프롤로그
콘크리트는 기억하지 않는다.
어떤 날씨였는지, 누가 붓고 다졌는지, 얼마나 울었는지조차.
굳고 나면 그저 구조물일 뿐이다.
하지만 가끔, 굳지 말아야 할 것을 품고 굳어버리는 일이 생긴다.
그날도 그랬다.
비가 예보되어 있었지만, 일정은 미뤄지지 않았다.
레미콘은 예정대로 도착했고, 펌프카는 팔을 뻗었다.
철근 사이로 회색 시멘트가 밀려들었고, 진동기는 숨을 죽인 듯 일관되게 떨렸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무언가가 함께 묻혔다.
“뭐지?”
몇일 후 형틀 해체 도중, 한 작업자가 멈칫하며 말했다.
다른 작업자는 대답 대신 침을 삼켰다.
거푸집이 들리자, 꺼져 있던 형상이 드러났다.
굳은 시멘트 속에서 인간의 형태가 스러지듯 나왔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마치 박제된 것처럼.
죽음은 완전히 굳은 뒤에야,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콘크리트 속의 시신
그날 아침에도 습관처럼 2층 임시 사무실에 먼저 올라갔다.
어제 마무리한 3층 슬래브 타설이 잘 굳었는지 확인해야 했고, 거푸집 해체는 오전 10시부터 잡혀 있었다.
커피를 타며 창밖을 보는데, 거푸집팀 반장인 박태섭이 올라왔다.
그의 걸음은 항상 무겁고 무뚝뚝했지만, 그날은 유난히 빨랐다.
“어제 타설한 거 문제 없죠?”
“소장님 큰일났습니다. 해체하다가....”
“왜요? 다짐이 제대로 안됐어요? 신경쓰라니까 거참 ”
“아뇨. 사..사람... 같아요.”
나는 박태섭의 말을 처음엔 장난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가 꺼낸 말 속에 섞인 진동—익숙한 현장의 분진과는 다른, 알 수 없는 떨림이 내 등을 스쳤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작업자들이 모두 아래로 물러나 있었고, 문제의 구역은 천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정확히는 3층 거푸집 중 계단실 코너, 모서리와 접하는 부위였다.
시멘트가 얇게 남아 있는 부분에 붓자국 같은 게 남아 있었고, 그 위로 형체가 비쳤다. 엷은 회색의 표면, 사람의 뺨과 비슷한 굴곡.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
"손대지 마. 아무도."
경찰은 오전 11시쯤 도착했다.
119를 통해 수사과로 넘겨졌고, 강력팀 두 명이 현장을 수습했다.
그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계급장은 경감. 이름은 김정수.
“직접 보셨습니까?”
“네. 거푸집 해체하다가...”
“여기 감리감독자는 누굽니까?”
“이정학 감리단장입니다.”
“연락됩니까?”
“예? 예! 잠시만요.”
몇 번의 전화시도에도 신호음만 갈 뿐이었다. 그 광경을 보던 경감의 표정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에 뭔가를 적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이 시신... 혹시?”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얼어붙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현장에서 검측을 하던 그였다.
부실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철근 간격을 줄이라고 따지던 얼굴이 눈에 생생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경감은 다문 입으로 내 눈을 바라봤다.
그날 이후, 현장은 멈췄다.
철근팀도, 형틀팀도, 전기, 설비, 모두 손을 놓았다.
슬래브는 완전히 굳었고, 작업은 일시중지 명령을 받았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하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다.
누군가, 이곳에서 감리를 살해하고 콘크리트 안에 묻은 것이다.
며칠 후, 국과수의 결과가 나왔다. 사인은 질식사였다.
갈비뼈 일부는 손상되었지만, 사망과의 직접 연관은 없었다.
무언가에 강하게 가격당한 흔적 없이, 그는 그저 살아 있는 상태로 콘크리트에 묻혔다는 정황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작업자들은 하나같이 말이 없었고, 감리의 평소 행적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소장인 나조차, 이정학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단정할 수 없었다. 일롤 만나는 것 외에는 그의 나머지 생활은 알길이 없었다.
확실한 건 단 하나.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
나는 현장 일지를 다시 펼쳤다. 타설 일, 장비 반입 시각, 장비 반출 시각.
그는 언제 어디서 사라졌으며, 언제부터 그 안에 있었던 걸까?
수첩에는 이정학 감리의 마지막 기록이 남아 있었다.
“슬래브 철근 간격 맞지않음, 결속 상탱 불량. 타설 불가. 시공사에 통보 예정.”
날짜는, 그가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바로 전날이었다.
타설을 위해 감리 지적 사항은 수정을 했었고, 예정대로 타설을 진행했었다.
수첩을 접으며 나는 어려운 퍼즐을 마주한 듯 답답함을 느꼈다.
누가 그에게 침묵을 요구하며, 그 침묵을 콘크리트에 묻었을까?
경찰은 경찰대로 의심스러워 보이는 인물들, 형틀 반장과 타설 기사들, 철근팀 몇 명을 번갈아 조사했다.
아니다. 저 사람들은. 분명 어딘가 단서가 빠져 있을 것이다.
너무 매끄러웠고, 너무 치밀했다.
과연 누굴까?
감리의 과거
사람이 죽으면, 이상하게도 그 사람을 기억하는 목소리가 오히려 커진다.
평소엔 욕만 하던 사람들도, 막상 그가 사라지니 말들을 쏟아냈다.
살아 있을 땐 다들 피하려고만 했던 그의 이야기들 뿐이다.
“지랄같아도 정확했어. 틀린말을 했던적은 없었어. 그 양반.”
“맞아. 그런데 도박한다고 소문도 있지 않았어?”
“가정사 좀 복잡하다고... 이혼했댔나?”
현장 옆 함바 식당에서 김기사와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옆자리의 이야기는 쉽게 내 귀에 들어왔다.
맞다. 이정학은 깐깐한 감리였다.
철근 이격거리, 타설 위치, 용접부 검사, 전기 인입선 굵기까지 하나하나 짚었다.
그런 감리를 대하다 보니 우리 시공사측과 작업자들은 그를 대할 때 마다 진땀을 흘렸다.
나도 매번 감리의 지적으로 직원이 보완 수정해오는 검측서를 결재하며 불편해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꼼꼼한 사람이, 마지막 보고서만은 비워 두었을까?
현장 일지에 남긴 “슬래브 철근 간격 맞지않음, 결속 상탱 불량. 타설 불가. 시공사에 통보 예정.”이라는 메모.
그건 감리단이 시공사에 경고장을 보내겠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보통은, 감리총괄 이메일로 공식 통보를 보내는 게 관례인데…
이정학은 그걸 보내지 않았다. 심지어 컴퓨터에는 관련 문서도 없었다.
메모만 남기고, 아무 실행도 없었다. 나는 그 점이 매우 이상했다.
며칠 후,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그의 개인 차량 블랙박스를 확보했는데, 그 안에서 이상한 장면 하나가 찍혀 있었다는 것이다.
영상은 타설 이틀 전, 저녁 시간대.
이정학이 차를 몰고 나가다 근처 골목에서 누군가와 마주친다. 어두워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대화를 나누고 무언가를 받는다. 그리고 차량 조수석 문을 열어 무언가를 넣는다. 물건은 없었다. 차 안에도, 사무실에도 그리고 집에서도
그가 무엇을 받았고, 누구와 만났는지는 끝내 알길이 없었다. 그의 동선이 이상하다는 것만이 수사기록에 남겨졌다.
이정학의 전 부인을 찾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경찰 조사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학창 시절부터 성격이 극단적이었어요. 승부욕이 강하고, 뭔가 꼬이면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죠. 도박에 손을 댄 것도, 실은 자존심 때문이었을 거예요.”
“가정불화는...”
“저희 딸이요, 대학 다닐 때즈음, 남편이 학교에서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 뒤로 집에 들어오는 날이 줄었죠.”
그녀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정학에게는 소문이 많았다.
옛 직장에서 여직원 문제로 감봉당했다는 얘기도 있었고, 한 현장에선 업체의 부실 시공을 눈감아 주는 댓가로 금품을 받다 적발돼 교체됐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들리는 이야기 일뿐 정확한건 아니었다.
내가 아는 한 그는 그저, 늘 규정대로만 일하는 까다로운 감리감독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콘크리트 속으로 말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나는 현장사무실 옆에 마련한 그의 빈 감리사무실을 찾았다.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지만 정리해도 된다는 경찰의 통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책상 위는 정리돼 있었고, 컵에는 어느새 먼지가 쌓여 있었다.
몇 번의 현장검증으로 살짝 어지럽혀 있었지만 별다를게 없었던 사무실은 조만간 정리를 하기로 했다. 둘러보고 나가려는 그때 소파 아래쪽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노란색의 포스트잇 메모지가 글러다니는게 보였다. 구겨진 메모지를 펼쳐보자 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증오하는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한 동안 몇 번이나 그 문장을 읽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그 글귀는 누군가에게 향해 핏발을 세우며 소리치고 있었다.
타설의 날
콘크리트 타설은 오전 7시에 시작됐다.
수정사항을 고치느라 힘들었고, 전날 밤까지 비가 내려 일정이 미뤄질 뻔했지만, 새벽에 그치면서 힘들지만 예정대로 진행됐다.
타설 구간은 B동 지하 2층, 기둥과 벽체 구간. 총 8시간 예상. 차량은 레미콘 11대 분량. 나는 그날도 평소처럼 새벽 6시 반쯤 도착했다.
타설이 있는 날엔 나는 혹시 모를 문제를 대비해서 가능하면 빨리 현장에 도착 한다. 그날은 이미 레미콘 첫 차가 들어와 대기하고 있었다. 펌프카도 도착했고, 양중팀 인원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무전기를 열고 각 팀장들에게 물었다.
“형틀팀, 확인됐죠?”
“확인 완료, 벽체 거푸집 이상 없습니다.”
“철근팀은?”
“전날 복구 마쳤습니다. 감리 지적 사항 반영 완료.”
그래, 감리단장.... 그날 아침에는 7시가 지나도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도 깐깐하게 뭐라 하겠지’ 싶어 속으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조용했다. 연락도 없었다.
오전 8시 한창 타설이 진행되던 레미콘 4호 차량이 도착했을 때였다.
김기사가 말했다.
“소장님, 이 감리 안보이시네요? 오늘 안오시려나봐요.”
“왜?”
“어제 늦게까지 불 켜져 있던데. ”
“잘 안들려? 뭐? 불? 어디 불 켜져 있었다고?”
“아! 감리단 사무실요. ”
원래 타설이 시작되기전 감리에게 구두로라도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어쩔수 없이 시작하게 된 타설. 그렇다고 타설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펌프카는 세팅이 되었고, 레미콘 차량 스케줄도 우리 때문에 차질을 빗게 할 슈는 없었다. 나중에 연락이 닿으면 설명을 하기로 마음먹고 진행을 시킨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타설, 콘크리트는 무리없이 그날 하루 동안, 모든 벽과 기둥 속을 채웠다.
나는 현장에서 작은 수첩에 메모를 하는 습관이 있다. 그날 현장에 있던 작업자들의 작업사항등 여러 가지를 메모하는 습관이 기사때부터 있어온 터라 아직도 시시콜콜한 것 까지 기록을 하는데 그것이 수사하는 경찰에게는 요긴한 것이었다.
오전 6:30분 출근 6:30~오후 5:00 상주, B동 지하·옥상 반복 이동
철근반장 인원 8명 오전 7:00~오후 4:00, 지하 2층 벽체 철근 조립
형틀 목수 김반장 9명 오전 7:30~오후 3:00, B동 기둥 타설 및 보강
레미콘 차량별 평균 30분 간격 인터벌
펌프카 박기사 오전 7:00~오후 4:00 상주
함바식당 직원: 오전 10시 이후 식사 공급, 1층 휴게소 대기
감리단장 연락이 닿질 않음
이렇게 메모된 수첩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보았다.
감리단장이 연락되지 않은 것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는 작업사항메모였다.
타설 당일 CCTV는 빈틈이 많았다. 지하 2층 쪽 카메라는 공사 자재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고, 출입구 카메라는 공교롭게 고장이 나 있었다.
“시신은 포개진 철근 사이, 가장 압력이 덜한 구간에 있었습니다.”라고 형사가 밝혔고 “숨이 막혀 죽은 게 아니라, 정수리를 가격당한 흔적이 있습니다.”고도 했다.
그건 사고사가 아니라, 정확하게 겨냥된 살인이라는 뜻이었다.
누군가 타설 직전 혹은 전날 밤 몰래 그를 벽체 속에 넣었고 다음 날 까막득히 모르던 우리는 콘크리트로 그를 완벽히 덮은 것이다.
치밀하고 대범한 살인이다. 누구였을까. 그리고 왜였을까?
균열
그날 오후, 형사들이 사무실을 점령하듯 들어왔다. 우리 현장은 언제나처럼 분주했지만, 그날은 뭔가 다른 긴장감이 감돌았다. 형사 반장이라는 사람이 내 책상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는 걸 물끄러미 지켜봤다.
"소장님, 저희는 이 사건을 타살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나는 입술을 다물고 고개만 끄덕이며 대꾸했다.
"타살이요?"
"콘크리트 타설이 끝난 몇일 뒤 거푸집을 뜯어내던 중 발견됐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은… 타설 전에 이미 그 자리에 시신이 있었다는 뜻이지요."
"그렇죠. 타설 시작은 오전 6시 40분이었습니다. 철근 작업과 배근 점검은 전날 마쳤고요. 거푸집도 모두 설치하고 점검을 마쳤습니다. 누가 그 안에 시신을 넣었다면, 그건 타설 직전 그럴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철근들 사이로 시신을 밀어넣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텐데요."
형사가 수첩을 넘기더니, 흘리듯 말했다.
"저희도 그걸 조사하는중입니다. 우선 피해자 감리단장 조명국 씨. 평판이 썩 좋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나는 무심히 커피를 마셨다. 그러곤 잠시 말끝을 고르다 답했다.
"단호하긴 했죠. 강압적이기도 했고. 현장 직원들하고 부딪힌 적도 많았습니다. 감리를 나왔다기보단, 죄인을 찾으러 나온 사람 같았거든요."
"구체적으로 누가 자주 부딪혔습니까?"
"철근 반장, 타설 총괄, 그리고… 형틀 목수들 쪽에서 불만이 많았죠."
그는 내 말에 메모를 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레미콘 차량은 그날 총 몇 대 투입됐죠?"
"총 열여섯 대. 오전 6시 40분 첫 타설 시작, 8시 30분에 마무리. 차량 번호와 운전자는 타설일지에 적혀 있어요. 복사해 드리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럼 궁금한점 생기면 또 연락 드리겠습니다."
형사들이 사무실을 우르르 나간 이후 영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의자에 몸을 던졌다.
조감리단장이 실종된 건 일주일 전이었다. 처음엔 놀라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자 마치 원래부터 불길함을 느꼈다는 듯 반응이 조금씩 달라졌다.
철근반 반장인 최필규는 유독 말이 많았다.
"그 인간, 언젠가 사달 날줄 알았어. 맨날 설계대로 안 했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우리가 뭐 대충했어요? 감리랍시고 와서 사람 기분만 잡치게 하고… 우리가 얼마나 참았는지 몰라요."
그의 말투에선 억울함이 먼저였다. 만약 내가 형사라면 용의자중 한명이라고 생각 할수 있겠지만 범의를 가지기엔 너무 노골적이라 용의선상에서 제외를 할 인물일 것이다.
엊그제 저녁, 타설 영상과 일지를 훑으며 무심히 책상에 앉아 있을 때였다. 담당건축 박대리가 조심스레 말을걸었다.
"소장님… 저기, 말씀 드리지 않은 게 있는데요. 감리단장님 실종 전날 저랑도 대판 싸웠거든요."
"뭐 때문에?"
"전기 배선 트렌치 문제로요. 분명 설계 변경이 있었는데, 도면을 안 보고 욕부터 하시더라고요. 저도 욱해서, 언성을 높였어요. 혹시, 제가 의심 받을까봐서요…"
나는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박 대리, 그런 일로 사람 죽이면, 건설판엔 멀쩡한 놈 하나도 안 남아."
박대리가 쭈뼛거리며 사무실을 나가고 나자 머리가 더 복잡하여 사무실에 계속 머무를수가 없었다.
다음 날, 형사들은 타설 구간의 거푸집 해체 담당자를 찾았다. 형틀 목수 중 오래된 작업자 이도훈이 그날도 현장에 있었다.
이도훈은 마르고 눈매가 날카로운 남자였다. 다들 그를 '속 깊은 사람'이라 불렀지만, 나는 항상 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시신을 발견한 건 당신이 맞습니까?"
형사의 질문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푸집을 뜯으려고 빠루로 거푸집 사이 틈에 밀어넣는데 뭔가 걸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상해서 자세히 보니 옷자락이 보이지 않겠어요."
"그 전엔 아무 이상 못 느꼈고요?"
"네. 전날까지 외부 거푸집 설치하면서 보강하고, 내부는 못 봤어요. 그 구간은 막타설 구간이라 인원 드나들 일도 없었고요."
그는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출근해 있었다는 걸, 다른 목수 하나가 나에게 말했다. 이유는 못 들었지만. 이상할 정도는 아니었다.
형사들이 이도훈과 이야기를 하는 사이, 나는 현장에 드나들던 낯익은 얼굴 하나를 떠올렸다. 식당 여사장님, 현장부근에 있던 식당인데, 현장이 생기면서 함바식당으로 일꾼들이 대놓고 식사를 하는 곳이다. 타설처럼 바쁠 일이 있을때는 현장으로 식사도 배달해주던 곳이다.
현장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 거리지만 딱히 문제가 될만한 사람들은 몇 명으로 추릴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 특별한 혐의는 없는 것 같았다. 형사들도 난감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현장은 점점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시멘트 속에 묻힌 건 단순한 시신이 아니라, 누군가의 오래된 분노가 아닐까? 그리고 그 균열은, 지금 막 시작된 것 같았다.
흔적
며칠째 이어진 조사에, 현장 사람들의 눈빛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더는 "우연이겠지"라고 넘기지 않았다. 다들 조심스러워졌고, 말끝을 아끼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그 시신을 의도적으로 콘크리트 속에 묻었다는 전제가, 이제는 ‘가정’이 아니라 ‘사실’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감정 없이 수첩을 넘기고, 타설일지를 재검토했다.
그날, 콘크리트 타설 전 최종 순회를 누가 했는지. 거푸집 내외부를 마지막으로 점검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누가 그를 그 안에 넣었는지 추리해보았다.
감리단장 조명국은 실종 당일 오후 4시 20분까지 회의실에 있었다. 5시 이후로는 그를 목격한 사람이 없었다. 다만 그의 사무실에 불이 켜져있다는 사실만 알 수 있다.타설이 시작된 건 그 다음 날 새벽.
딱, 12시간.
그 사이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형사들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일용직 명단, 작업자 동선, CCTV 사각지대까지 하나하나 짚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도우면서도, 속으로는 나름의 추리를 해가며, 무거운 의문을 품게 됐다.
형사가 내게 물었다.
"소장님, 혹시 현장근처 외부에서 감리단장을 만날 가능성이 있는, 떠오르는 인물 없습니까?"
"글쎄요… 외부라면, 근처 식당이나 편의점정도?“
"아 그 함바식당 말입니다. 거기 사장님은 어때요?”
“어떻다니요?”
“아 소극적이시던데...”
나는 얼핏 웃으며 말했다.
"원래 그래요. 전 주인이 갑자기 가게를 넘기고 떠났거든요. 한 달 전쯤 왔는데, 조용하고 깔끔한 사람입니다. 일하는 것도 혼자고요."
"그 전엔 뭐 하던 사람입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저도 딱히 궁금하지 않았고요."
형사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이 이상하게 오래 내게 남았다.
나는 다음 날 점심시간에 일부러 식당에 들렀다. 여사장은 말없이 밥을 퍼주고, 반찬을 놓고, 고개도 들지 않고 한마디 말없이 주방으로 발길을 돌리려했다. 어색했지만 일부러 말을 걸었다.
"요즘 피곤하시죠? 사람들 많이 오가니까."
"괜찮아요. 원래 체력은 좀 있는 편이라."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때 문득 그녀의 팔목 위로 슬쩍 드러난 흉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얇고 길게, 예전 화상 자국처럼.
내 시선을 의식한 그녀는 곧바로 소매를 끌어내리며 손을 닦았다.
"예전에 주방에서 데인 거예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궁금증들 때문에 애꿎은 사람을 불편하게 했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오래 묻어둔 먼지가, 다시 공기 중에 흩날리는 느낌이었다.
다음 날 형사는 철근 반장 최필규를 다시 불렀다. 그는 묘하게 불안한 눈빛이었다.
"그날, 타설 전 야간에 현장에 다녀갔죠?"
"아… 네, 철근 배근 체크 때문에요. 확인 안 하면, 다음날 감리단장한테 또 욕먹을까봐."
"단장님을 봤습니까?"
"아뇨. 그런데 사무실에는 불 켜져 있다라고요. 그냥 슬쩍 보고 간 겁니다."
하지만 형사의 시선은 매서웠다.
"그날 새벽 3시. 당신이 식당 앞 자판기에서 커피 뽑아 마시는 모습이 CCTV에 잡혔습니다. 감리단장이 사무실에서 실종된 날 밤, 말입니다."
최필규는 그제야 말문이 막혔다.
"그냥, 그냥… 그 인간이 때문에 타설 못할까 무서워서… 혹시라도 또 트집 잡힐혀서 재시공 떨어질까봐 점검하러 온 겁니다."
말은 맞았다. 하지만, 어딘가 껄끄러웠다.
현장은 더 무거워졌다. 콘크리트에 묻힌 시신은 말이 없었지만, 어쩐지 모든 구조물들이 그 죽음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푸집 하나하나, 콘크리트가 식어가는 틈마다, 뭔가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 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일지를 넘기며 중얼거렸다.
"가장 조용한 사람, 가장 들키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식당 아주머니, 윤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