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코치 Feb 03. 2021

'기억'이 아니라 '추억' 혹은 '관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함께한 시간, 공간 그리고 공감의 정도이다.


오래 전 영화 '오!수정'이 생각 나는 날이다.

지금보다는 세상을 알아가는 일이 재미있고, 사람을 알아가는 일 하나하나가 의미있었던 나이에

인상깊게 봤던 영화 중 하나가 '오!수정'이었다.


같은 상황, 사건을 두고 남녀 주인공의 다른 기억으로 스토리를 각각 보여주는 당시에는 너무 새로운 방식의 영화였다.

영화를 보며 방식의 새로움에 느끼는 재미보다 같은 상황을 두고 사람마다 제각기 자기의 해석과 마음과 욕구로 기억한다는 것이,


그 기억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동감하고 놀라워하며 엄청난 것을 발견한 기분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영화의 끝은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각자의 다른 기억이 둘의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오늘 6년여만에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던 지인을 만났다.

6년 전에 그녀와의 사이에서 내가 크게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고, 그 마음상함에 대한 타당함은 한치의 의심도 필요없는 너무나도 그럼직한 것이라고 수년간 생각해왔다.


하지만 5년쯤 시간이 지나니  과거의 시간에서 새로운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마음 상했다고 생각했던 이전의 시간에 나로 인해 그녀가 받았을 마음의 상처가 보였다.

그래서 오랜 망설임 끝에 이른 저녁을 함께하며 어제 만났던 사이인양 아무렇지도 않게... 수다를 떨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사실'확인을 거친 '기억'이 아니었다.

그저 둘 다 각자 힘들었던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이해관계에 얽혀 보내면서 지난하게 함께 해왔던 관계와 그 당시의 공감이었다.


우리는 적절한 퉁침으로도 괜찮을 사이라 가능한 수다였을지 모른다.

오랜 시간 좋은 지인으로, 언젠가는 몇몇이 함께 보면 좋을 사이. 잘 기억도 나지 않을 이러저러한 일들이 쌓여 끊어버린 인연인 것이 마음 한 켠에 옹이져 남아있던 그런 정도의 관계말이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관계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살다보면 이 정도의 관계도 얼마나 흔치않고 소중한 관계인지를 깨닫는 순간이 온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기억을 헤집는 대화는 하지 않았다.

각자의 마음에 담긴 것이 다르고, 기억되는 사실이 다르겠지만 한 가지 같은 건 둘 다 그 시간의 추억과 지난한 관계에 대한 마음을 끊어진 인연으로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추억과 당시의 공감이 중요한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침묵을 듣는 것이 최고의 정보를 얻는 방법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