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결심만.
30대 중반, 사무직 nn년차.
십수 년째 하는 일은 똑같고 얻은 거라곤 유리 같은 손목과 허리, 한 번씩 시큰대는 디스크증상들뿐.
1n 년을 넘기면서 갑자기 모든 것이 재미없는 노잼시기가 시작되어 버렸다.
곧잘 잘하던 업무도 자꾸만 실수를 하고, 의식은 저 멀리 어딘가 들판에 굴러다니는지 기억력도 깜빡깜빡.
출근부터 퇴근까지 오로지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빙빙 돌아다녔다.
그렇다고 퇴근하면 무언가 달라지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강아지 같은 귀여운 아들, 딸과 쌓인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쉬거나 치우거나 놀아주거나 하는 모든 시간이 부족했다.
쉬자니_ 집안이 엉망이 되어버렸고 아이들은 보채거나 방치되었다.
치우자니_ 아이들은 내 뒤를 쫓아다니면서 치워놓은 것을 다시 어지르거나
치워야 할 것은 가지고 놀 거라고 떼를 쓰거나 도와주겠다며 일을 더 만들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조차 나는 늘어져 기대거나 누워서 영혼 없는 리액션을 할 뿐
쉬지도 그렇다고 안 쉬지도 않는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점차 무기력한 시간이 늘어갔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너무너무너무 아~무것도 하기 싫다'
육퇴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당최 내 옆이 아니고선 잠을 잘 수 없는 사랑스러운 두 아이들을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양손으로 토닥이며 재우면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보드라운 살을 비비며 더더욱 나의 몸에 밀착해서 다가오고
눌리는 어깨의 답답함 보다도 두 몸으로 조여 오는 답답함 보다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시간을
대략 1시간에서 2시간 사이 끝날테지만 체감으로는 한 서너 시간은 되는 것 같은 이 긴긴 시간을
온전히 견디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분명 나는 아까까지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었는데 이때의 나는 하고 싶은 게, 또 해야 하는 게 너무나 많다.
드라마나, 유튜브도 보고 싶고, 책도 읽고 싶고, 일기도 쓰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고, 운동도 하고 싶고,
그런데 청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옷정리도 해야 하고, 내일 등원준비도 해야 하고,
그런데 고등학교 때 버스 손잡이에 기대어 서서 자본적이 있을 정도로 잠만보인 나는
그 한두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잠들어 버리곤 한다.
그리고 눈을 뜨면 7시. 아침이 되어버린다.
아침 잠깐이라도 정리라도 해볼까 하고 스리슬쩍 몸을 일으키면
사랑스러운 두 아이의 센서가 켜진 듯 동시에 모두 잠에서 깨어 '배고파요' 알람을 울리고
곧 나의 할 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또다시 오늘 하루 할 일들이 새롭게 리셋된다.
집안은 엉망이고 아이들은 케어해야 하고 아이들을 각각 어린이집으로 보내면 나도 출근해야 하고
이렇게 매일매일 퇴근이 없고 출근만 있는 생활에 지쳐버리면
결국 몹시도 아끼고 사랑하고 귀엽고 무엇이라도 내어줄 수 있을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고야 마는 것이다.
이렇게 짜증 내는 나 자신을 자책하고 매일매일을 나를 미워했다.
내 소중한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고 결국엔 단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극에 치닫던 어느 날. 어떠한 계기로 나는 결심하게 된다.
나.
하고 싶은 걸 할 거야.
행복한 일을 할 거야.
행복해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