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고 살지?

일단, 퇴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by 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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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처음부터 퇴사부터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제법 연차가 쌓인 나는 어엿한 직책도 있었고 업무가 부담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부담이 된다 싶으면 일당백으로 일 잘하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또 걱정 없이 업무를 나눌 수도 있었다. 일이 재밌었던 적도 있었다. 오히려 잘 모를 때, 배울 게 있었을 때, 더 발전하고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을 때 나의 열정은 뜨거웠고 하루하루 책상 앞 시간이 신났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노력이나 흥미들은 오로지 나 스스로만 아는 것들이었고 아무리 노력한 들 대외적으로는 아무런 가치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을 흘려보낼 동안 나는 내 가치를 공고히 하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던 일이 지루하고 힘겹게 느껴졌다. 매일 똑같은 일을 10년 넘게 해왔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기계 속 하나의 부품처럼 그냥 반복적인 일을 기한 안에 해내기만 하면 되는 모습이 정말 내 모습인지, 이렇게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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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이 들고나서 처음에는 행복해지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일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니까, 다른 즐거운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던가. 특별한 일없이 연차를 사용해 보는 시답잖은 일들을 해보는 것이었다.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를 풀어볼 테지만,) 그 안에서 나는 행복의 실마리를 찾았고 꽤 긴 시간 동안 행복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일은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왜 여기에서 하고 싶은 일도 아닌 이런 일들을 하고 있을까. 즐거운 일상을 하나씩 더 해가도, 결국 9 to 6로 묶여있는 순간들은 나를 같은 고민 속으로 불러왔다.


예전에 나는 나 스스로 굉장히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유난히 감성적이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하는 등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표현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허나 지금. 새로운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업무를 똑같은 사람들과 1n년째 하는 업무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저 날카롭게 예민해져 잔뜩 구긴 얼굴을 모니터에 박고 있는 내 모습만 있을 뿐이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도입하기 쉽지도 않고 고루하지만 기존의 것을 유지해야 하는 경직된 일들. 그런 일에서 유난히 집중하지 못하고 실수를 반복하는 나는 더 이상 이 일이 신나지도 재밌지도 나의 열정을 살려주지도 못했다. 그저 항상 '정신 차려라', '똑바로 해라'라는 말을 들으며 하루를 보내게 만들었다.


내가 이 일을 왜 선택했을까. 생각해 보면 단 하나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안정'

어릴 때부터 뭐든지 도전해 보고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그 안에는 언제든지 '안정' 또는 '안전'한 것을 한편에 준비해두고 있었다. 미대입시를 준비했지만 떨어질 것을 대비해서 안전한 다른 학과를 지원했고 대학교 때도 나중에 필요할지 모르니 미리미리 안전하게 운전면허를 따두었고 또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그러나 전공과는 영 계열이 다른 자격증도 따두었다. 내 선택의 기반에는 '안정'이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기보단 '지금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쉽게 지속할 수 있는 일'을 기준으로 현재의 일을 선택했었다.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눈앞의 지금 해야 하는 일만을 처리하는 데에 모든 시간을 쓰기에도 부족해지자 나는 결국 절대적인 시간의 총량에 부딪혀하고 싶은 일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원래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를 하던가, 집중하지 못한 채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시간을 보내며 해야 할 일을 미룬다던가 점점 더 그런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나는 정말 그렇게 정신없고, 무책임하고, 무기력하고, 무능한 사람인 걸까?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일을 그만둔다고 하면 아이들에게 드는 학원비나 식비나 각종 보험, 저축, 집 대출금을 당장에 내기 어려워지는 이러한 현실이기에 상상도 못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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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와 다른 배경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자니 나는 왜 이렇게 협소한 관점을 가지고 긴 시간 동안 작은 상자 안에 갇힌 듯 아무런 도전도 어떠한 위험도 가지지 않았는지 아쉽고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않았으니 내가 어떠한 강점이 있고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히 고민해 볼 수가 없었다. 유한한 인생에서 오로지 안정감만을 가지고 달려 지금까지 온 내가, 그럼 정말 안정감을 가졌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그렇지만도 않다. 어떤 직장이든지 하루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치열하게 처리해야 하는 업무 속에서 '안정'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아 찾을 수 없는 것이 아니었나.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기에 일단, 퇴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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