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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를 모르는 ENTP
Apr 09. 2021
"엄마는 왜 뚱뚱해졌어?"
뭐라고 해야할 지, 마음이 복잡해지네.
"엄마, 저 예쁜 여자도 엄마야?"
어느 평온한 휴일 오전, 침대 위에서 함께 뒹굴거리며 여유를 즐기던 네가 내게 갑자기 물었어.
말랑말랑한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쳐다보니, 안방 벽면에 무심히 놓아둔 우리 부부의 웨딩 화보가 있었지.
어느새 퍼렇게 빛이 바래졌더라고.
하긴, 7년 전 찍은 사진이니 그럴 만도 해. 내가 봐도 사진 속 그 얼굴은 좀 낯설었거든.
당시 유행하던 쇼트 미니드레스를 입고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예쁘게 보이고픈 욕심과 보정의 힘이 뒤섞인 결과물 같아서 머쓱한 기분이 들었어.
넌 참 천진난만한 표정이어서 웃어줘야 했는데, 내 마음이 복잡해서 입꼬리가 묘하게 휘어버렸네?
빗물 고일 듯한 쇄골뼈도, '꺾이랴' 걱정되는 갸냘픈 각선미도 사라진 지 오래였거든.
가까스로 괜찮은 척 얘기했지.
"그렇지. 엄마가 너 태어나기 전에 아빠랑 결혼하려고 찍은 사진이지. 네가 보기에도 예뻐?"
넌 무슨 꿍꿍이인지 눈동자에 장난기를 가득 머금고 깔깔거리더라고. 아무래도 내가 바란 '응, 예뻐'라는 대답은 안 들려줄 속셈인가 보지?
"까르르. 근데 지금 엄마는 왜 뚱뚱해졌어?"
땡땡땡.
누가 내 뒷골에다 대고 종을 울리는 거니.
단 한마디에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고, 끓어오르는 용암까지 간신히 집어삼켰네.
나도 한때는 몸무게 0.5kg에도 바들바들 떠는, 무척이나 예민했던 사람이었거든.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당연히, 너 때문은 아니었지. 그냥 방향 없는 남탓이었어.
아주 조그만 씨앗이 내 배안에 뿌리를 뻗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9개월 여, 당기는 음식을 집어먹은 건 내 손이고 움직이지 않은 건 내 의지였으니까.
그리고 뱃속의 꼬물이가 세상 빛을 본 후에도 난 전혀 변하지 않았단다. 그래, 인정!
사랑하는 남편, 너와 함께하는 저녁은 늘 맛있었고 달콤했거든.
행복이 따로 있니? 입도 행복하고, 마음도 행복하면 매일 밤이 낙원인 것을.
그럼에도 머리론 꽤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했지. '몸매'라는 단어에 갇혀서 오랫동안 열등감을 앓은 적이 있었거든. '여자라면 자고로 예쁘게 가꿔야 한다'는 나쁜 생각이 날 괴롭게 했나봐.
주변에서도 은근히 충고에 가까운 면박을 주기도 했다? '살빼라' '남편 딴 생각 품으면 어쩔래?' '니가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 거리낌없이 내 주위를 맴돌기도 했어. 뿌리 뽑히지 못한 그 편협한 생각들에 지배당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던 모양이야.
그랬던 내가 달라진 건 얼마 안 됐어. 아마, 2년 전인 2019년부터였지?
이 땅에 진짜 다양한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한거야. 여자, 연대, 갑질, 약자, 회복, 정의, 여러 키워드가 여자인 나를, 딸래미 엄마인 나를 툭툭 건드렸어. 건강을 위해 몸을 관리하는 거라면 몰라도 남의 눈에 잘들기 위해, 혹은 여자이기 때문에 날씬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낡아빠진 거라는 걸 조금씩 체감했어.
그땐 나도 많아 깨지고 부딪혔단다. 말할 때 '여자라서' '여자라면'이란 불필요한 조건을 빼려고 연습하고 또 연습했지. 내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는 용기도 필요했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못난 나를 똑바로 보고 수긍하며 수정하는 게 힘들었지만, 아주 귀여운 네가 앞으로 나처럼 주눅들거나 자책하지 않고 살게 하려면, 네 자존감 수업을 위해서라도 내가 꼭 지나와야만 했던 순간이었다고 생각해. 그래야 내가 썩 괜찮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을 테니까.
네 질문이 그 이후에 터져나온 건, 참으로 다행이야. 적어도, 있는 그대로 대답할 수 있어.
"엄마가 왜 뚱뚱해졌냐고?"
쉽진 않아도 쉼호흡 가다듬고 다시 미소를 입가에 걸어봤지.
"우리 딸이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엄마가 먹고 싶었던 것도 먹고. 많이 먹어서 살이 쪘어. 하하. 그래도 아가!"
"응?!"
"엄마는 뚱뚱해도 예쁘고, 날씬해도 예뻐."
"왜?"
"왜냐하면."
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몹시 궁금해하니까, 왠지 더 뜸을 들이고 싶어지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중 가장 확실하게 널 설득할 수 있는 건 이것 아니겠니.
"이 세상에서 널 정말, 제일, 최고로 사랑하는 건 바로 '엄마'니까. 그런 엄마라서 딸래미 눈에도 예쁘겠지?"
네가 세상 환하게 웃는다.
까르르 넘어가는 그 소리가 깃털처럼 내 마음을 간지르네.
어수선하고 무겁게 느껴지던 체증이 이제야 조금 내려가는 기분이야.
"우리 딸도 똑같아. 넌 뭘 해도 예뻐."
"진짜? 제일 예뻐?"
"응. 그냥 너라서 예쁜 거야."
조그만 두 손이 내 뺨을 부비니 그토록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네가 너라서, 엄마는 엄마라서.
그래서 우리는 사랑스럽고 누구보다도 예쁘게 빛나는 거겠지.
P.S. 딸~한편으로는 그런 마음도 들었어.
'오케이, 넘어가~ 이번에도 그럴 듯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