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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 Oct 03. 2020

밤 산책

추석 보름달빛 아래서

일주일 긴 추석 연휴 동안에도 빠지지 않고 한 것이 있다면 산책이다. 우리 아파트 단지 뒤편에는 쭉 펼쳐진 오솔길이 있다. 밤에 가로등이 켜져 있는 그 길의 끝에서부터 산책을 시작할 때면 마음마저 탁 트이는 기분이다. 보름달이 뜨는 추석 당일, 마침 집에도 있고 해서 엄마를 졸라 밤 산책에 나섰다. 보통 낮에는 많이 했지만 밤에, 그것도 엄마와 산책하는 것은 오랜만이었기에 설렜다.

사람의 마음과 몸은 연결돼 있다고 느낄 때가 산책할 때이다. 시작할 때만 해도 근육이 긴장되어 있어 말도 잘 안 나오다가 걷다 보면 이완되어 말도 술술 잘 나온다. 산책 나올 때만 해도 나는 정면을, 엄마는 땅을 보면서 걷기만 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대화의 주제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몸과 마음 건강하게만 해달라는 바람을 이야기하고, 엄마 친구 이야기, 고생했을 적 이야기, 서로에게 고맙다는 이야기 등등. 매번 듣는 이야기지만 또 듣고 싶은 엄마의 이야기.


예전의 나는 이런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말을 걸어도 벽보고 이야기하는 것 마냥 대답 없는 엄마. 무표정의 엄마. 내가 엄마에게 보내는 관심을 알아달라고, 또 나에게도 관심을 보내달라고 해도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에 난 엄마의 기색을 살피고, 한 마디에도 귀를 쫑긋 세우고 좋은 말로 대답하고 싶다. 있을 때 잘하라는 그 말을 직접 겪어 보고 나서야 알았다.


상실을 겪지 않고서 그 말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실할 뻔한 순간에 가까스로 상실하지 않을 기회의 끝을 잡았다면 절대 놓쳐선 안된다. 그 끈은 위에서 상대방을 잡고 있는 줄이 아니라 절벽 양 끝에서 서로 잡고 있는 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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