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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토끼 Jun 11. 2022

<브로커> ★★★☆

위태로운 관계 속에서도 인연의 실로 이어져 함께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


올해 열렸던 제75회 칸 영화제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2019년도만큼이나 한국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긴 영화제였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한편도 아닌 두 편이 경쟁부문에서 수상을 했기 때문이었죠. 하나는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한 <헤어질 결심>,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송강호가 한국 배우 최초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브로커>입니다. <브로커>는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 등의 화려한 캐스팅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큰 팬덤을 자랑하고 있는 일본 최고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첫 한국 영화란 점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죠.



<브로커>는 아이를 키울 여력이 안됐던 '소영'이 자신의 아이인 '우성'을 베이비 박스에 두고 가는 모습을 비추며 시작합니다. 그 아이를 '상현'과 '동수'는 다른 부부에게 돈을 받고 팔려고 하고 이를 알게 된 '소영'이 자신의 아이가 조금이나마 나은 부부에게 입양됐으면 하는 마음에 이들과 동행을 하게 되는 모습을 영화는 로드 무비 형식으로 그려내죠. 아이를 훔치는 부분을 비롯해 극 중 인물들이 전혀 핏줄이 섞이지 않는 관계임에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족처럼 비친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함께 지내면서 정말로 진짜 가족처럼 친밀감을 쌓아나간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겼던 <어느 가족>과 참 많이 닮아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 영화로 유명한 감독이지만 그가 만드는 가족 영화는 그저 따뜻한 분위기만 강조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사회적인 문제들을 날카롭게 다뤄왔었죠. 이번 작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인신매매, 성매매, 미혼모, 낙태 등 현대 사회에 만연한 문제들을 이야기에 녹여내며 관객들로 하여금 이런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끔 만들고 있죠. 또한 사정이야 어쨌든 아이를 유기하려 했던 '소영', 선의라는 말로 포장하며 '우성'을 다른 부부에게 불법으로 입양시키려 했던 '상현'과 '동수', 이들을 현행범으로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범죄를 유도하려고 한 형사 '수진'까지 심성이 악한 사람들은 없다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마냥 선하지도 않은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다루고 있는 소재의 무게감을 강조해주고 있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처음으로 한국 배우들로 라인업을 채운 작품인 만큼 이번 영화에서는 아무래도 연출적인 부분보다도 연기적인 부분에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쏠렸을 것입니다. 기대했던 대로 배우들의 연기는 전체적으로 좋았던 편입니다. 이번 작품으로 한국 배우 최초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는 겉으로 폭발력이 드러나지도 않고 특별히 전작들과 비교해 색다른 연기를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안정감을 유지해주는 단단한 기둥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이 데뷔 첫 상업영화 출연이었던 이지은도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좋은 연기를 통해 연기 경력으로는 대선배인 배우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착실히 드러내고 있죠. 배두나 배우의 연기는 근 몇 년간 보았던 그녀의 연기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고 강동원, 이주영 배우의 연기도 특별히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카메오로 등장하는 여러 한국 배우들도 각자의 개성을 잘 뽐내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로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명성에 비하면 아쉬움도 많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먼저 '상현' 일행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위해 이들을 뒤쫓는 형사 '수진'과 '이형사' 캐릭터는 다소 겉도는 듯한 인상이 강했습니다. 당연히 캐릭터들의 존재감도 부족했죠. 차라리 '상현' 일행의 동행에 더 초점을 맞추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형사' 캐릭터를 제외하고 다른 캐릭터들은 각자의 사연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드러나는 반면 '수진' 캐릭터는 이름이 있는 주요 캐릭터들 중 유일하게 사연이 드러나지 않는 인물입니다. 의도야 어쨌든 그녀의 사연을 알 수 없는 관객 입장에서는 아이를 버린 '소영'에게 과도할 정도로 적대적인 그녀의 감정에 공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녀에게 '동수'처럼 부모에게 버려진 사연이 있다면 모를까 그런 사연조차 드러나지 않으니깐요. 개인적으로 또 아쉬웠던 점은 너무 노골적으로 대사를 통해 주제를 드러내려고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들은 강렬한 주제 의식을 담백하고도 은은하게 드러냈기에 더 진한 여운을 안겨주었었는데 <브로커>에서는 대사들의 의도가 다분히 보여서 오히려 감정적인 여운이 약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어딘가 급하게 마무리 짓는 듯한 다소 부자연스러운 느낌의 끝맺음도 아쉬웠고요.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브로커>는 분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특별히 두드러질만한 작품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한 작품 속에서도 기차 안에서 '소영'과 '상현'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처럼 그만의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순간들도 많았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 역시 그의 팬들에게 최소한의 만족감은 안겨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흔히들 '인연'이란 단어를 표현할 때 '실'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죠. 중반부 '수진'이 '소영'과 몸싸움을 벌인 후 차 안에서 자신의 단추가 떨어진 것을 발견하는 장면이 있고 그 장면이 끝나고 바로 뒤이어 '상현'이 떨어진 단추를 꿰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핏줄 하나 섞이지 않은 위태로운 관계 속에서도 인연의 실로 이어져 함께 행복을 꿈꾸는 '상현' 일행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자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있지만 함께 지내며 과거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가족이 되어가는 그들의 여정은 가족이 해체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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