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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토끼 Feb 02. 2022

<하나 그리고 둘> ★★★★★

영화가 내 인생의 반쪽인 이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6년 BBC에서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편을 선정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국 영화 중에서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66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30위에 랭크되었지만 아쉽게도 10위 안에는 한국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었습니다. 10위 안에 든 작품들 중 아시아권 영화는 총 4편이 있었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오늘 리뷰할 영화인 대만의 거장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입니다. 칸 영화제에서도 감독상을 수상할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작품이지만 영화 마니아가 아닌 이상 많이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기도 하고 러닝타임도 무려 3시간이나 되기 때문에 아마 못 보신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긴 러닝타임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관한 무척이나 깊은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하나 그리고 둘>은 한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엄마 '민민'의 남동생인 '아디'의 결혼식날 할머니가 쓰러지게 되고 할머니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는 동안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겪게 되는 일들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죠. 30년 만에 첫사랑과 다시 마주한 아빠 'NJ', 쓰러진 자신의 어머니에게 하루하루 있었던 일들에 대해 할 말이 없을 만큼 공허한 일상을 보내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절로 떠난 엄마 '민민', 할머니가 쓰러진 것이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던 중 친구의 애인과 사랑에 빠진 딸 '팅팅', 그리고 궁금한 것이 많은 아들 '양양'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들이 처한 상황들을 그려내고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과정 속에서 생명의 탄생과 죽음, 사랑의 시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등 인생의 모든 것을 3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알차게 담아냅니다. 결혼식으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나는 영화의 구성도 이와 무관하지 않죠.



흔히들 인생은 반복의 연속이라고 하죠. 극 중 일본인 사업가인 '오타'는 'NJ'에게 '왜 우린 처음을 두려워할까요? 매일 하루가 처음과 같은데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매일 아침 눈뜨는걸 두려워하지는 않죠. 근데 왜 그럴까요?'란 말을 합니다. 그의 말처럼 우린 언제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합니다. 같은 하루를 두 번 살지는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영화 중반부 'NJ'가 자신의 첫사랑인 '루이'와 옛날 추억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영화는 교차 편집을 통해 딸 '팅팅'이 '패티'와 첫 데이트를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을 보면 'NJ'와 '루이'의 옛이야기와 '팅팅'의 첫 데이트가 상당히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가 딸의 사랑 이야기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 또한 삶의 순환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죠.



계속 반복되는 것이 삶이라면 우린 삶의 모든 것을 알고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들 잘 알다시피 인생은 마음처럼 되지 않죠. 영화의 후반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빠 'NJ'와 엄마 '민민'이 대화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민민'은 절에서의 생활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고 말하고 첫사랑과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NJ' 역시 두 번째 기회가 주어져도 똑같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죠. 왜 그럴까요? 그건 우리가 절반의 진실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중반부 아들 '양양'이 아빠 'NJ'에게 '우린 앞만 보고 뒤는 못 보니까 반쪽짜리 진실만 보는 거죠.'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소년의 말처럼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절반의 진실밖에 보지 못합니다. 'NJ'가 자신을 떠난 이유를 몰랐던 '루이', 자신을 좋아한다 생각했지만 이내 다시 원래 여자친구에게로 돌아간 '패티'를 바라봐야만 했던 '팅팅', 자신이 싫다고 생각했던 소녀를 알고 보니 좋아하게 된 '양양' 등 영화 속 인물들은 미처 그들이 보지 못한 나머지 절반의 진실을 뒤늦게 깨닫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할머니가 쓰러지시게 된 과정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 것도 우리가 볼 수 없는 나머지 절반의 진실에 대해 말하기 위함일 것이고 영화의 원제가 <Yi Yi (하나 하나)>인 것도 하나가 둘의 절반이라는 점에서 이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죠.



그럼 우린 영원히 절반의 진실을 볼 수 없는 걸까요? 각자의 눈에는 보이는 게 서로에게는 안 보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양양'에게 'NJ'는 그래서 카메라가 필요한 것이라 답합니다. 그때부터 '양양'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기 시작하죠. 그리고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그 사람들에게 줍니다. 여기서 카메라의 역할은 결국 영화의 역할일 것입니다. 극 중 '패티'는 삼촌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팅팅'에게 해줍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영화가 탄생한 뒤로 인간의 수명이 3배 늘어났다. 일상을 통해 얻는 것 말고도 영화를 통해 2배의 삶을 더 경험하기 때문이다." 즉, 에드워드 양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영화란 우리들이 못 보는 세상의 나머지 반쪽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들이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존재이고 우린 영화를 통해 세상과 인생을 알아가는 것이란 걸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하나 그리고 둘>이 에드워드 양 감독의 유작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영화의 메시지는 마치 에드워드 양 감독의 유언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어느덧 서른이 넘은 나이가 됐지만 세상엔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고 앞으로도 알아가야 할 것이 많다는 걸 항상 느낍니다. 그렇기에 저에겐 제가 못 보는 세상의 나머지 반쪽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존재가 필요한 것이고 그렇게 영화와 함께 나이가 들어가다 보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요?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전하는 '양양'의 편지 속 마지막 구절처럼 '나도 이제는 다 컸나 보다'라고 느끼는 순간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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