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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M Mar 11. 2020

코로나 사태와 하이브리드 종교의 탄생

2120년 내 딸이 사는 세상은 행복할까?

코로나 사태로 지난 수십세기 동안 지켜왔던 예배 문화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길것 같다.  
사람들의 생명과 직접 관련된 일이기 때문일까? 사회적 동의와 토론도 없었다. 
 다들 이러한 변화를 자연스롭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제 각자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를 대체하는 시대가 되었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현실로 다가오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또하나의 시대적 사건을 계기로 시대적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여기 미국 한인교회들도 한국교회에 발맞추어 선제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미 교회는 탈종교화, 동성애, 성직자 도덕성 문제 등 세상으로 부터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상황까지 겹쳤다.  교회로서는 민감하게 반응할수 밖에 없을 것이다.




종교는 이미 보편성을 잃었는가?


어느 종교나 마찬가지로, 종교에 대한 가장 큰 변화와 흐름은 탈종교화이다.

이미 종교인구 감소, 탈종교화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종교 종사자들의 신뢰성 감소, 신앙으로는

이겨내기 어려운 경제위기 등이 종교인규 감소의 이유라고 한다.


여러 이유중에서, 나는 과학의 발달로 인해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 대한 회의가 온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현대인들은 병에 걸리면 신께 기도하기보다는 의사와 과학기술에 더 의존한다.  

과학이 발달할 수록 창조주나 절대자로서 신에 대한 믿음은 계속 약해질 것이다.


이미, 미국과 유럽의 경우, 탈종교현상이 뚜렸한 반면, 남미와 아프리카 등 제 3세계 국가에서는 종교에

심취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특히 선진국의 경우, 나이가 어릴수록 종교가 없는 인구 비율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탈종교화가 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종교별, 연령별대로 보면, 사회 주축 인구인 40대, 50대에서 종교인구가 많이 줄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이탈자가 늘고, 새로운 진입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남아 모태신앙의 비중이 높은 기독교나 이슬람교은 불교에 비해서는 선방한다고 할수 있을까?  

한국이나 미국 어디서나 주일에 교회에 가서 주위를 돌아보면 대부분 젊은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는 이미 기성세대를 위한 것이 되어 버린것 같다.




행복을 찾는 방법은 많다


두번째, 큰 흐름의 변화는 현대사회 사람들은 종교에만 의지하지 않고,  행복을 찾는 새로운 방법에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내일이 아닌 '바로 오늘의 행복'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희생하지 않고

오늘을 즐기자는 것이다.


주말에 교회에 가기 보다는,  취미생활을 한다던가, 여행을 떠나면서 나의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이 늘어난다.  특히 삶에 지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나타난다.  이는 막을수 없는 기류인것 같다.


특정 종교단체에 얾매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습은 1인 가구 시대로 변화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반영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종교는 이 사람들에게 행복의 길을 안내해 줄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기복신앙의 형태를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종교는 어려운 고통을 당할때 마음 편안히

해주고, 더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는 물음에 답을 해주어야 한다.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

행복해지고자 하는 열망에 대해 종교는 답해줘야 한다.


또한, 살면서 생기는 많은 고민과 괴로움을 교회가 아닌, 현대의학에 의지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무지했을때는 굿도 하고, 교회도 가고, 성당에서 가서 회개도 했지만, 이제는 우리는 안다. 

이제 마음의 병도 일정부분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이미 정신의학과의 문턱도 낮아져졌고, 연애인들이 공항장애를 고백하는 것은 큰 뉴스거리도 안된다.

이미 미국에서 정신과 상담은 감기치료를 위해 병원을 방문하는 것과 동일하다.  상담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다스리고, 궁극적으로 마음의 병을 치료하여 다시 사회로 나가게 도움을 준다.  병을 치유함으로써 

우리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인 '행복'에 조금씩 다가간다.




진실로 하이브리드 종교가 탄생할 것인가?


마지막 가장 큰 변화의 흐름은 장기적 관점에서 지켜봐야 한다.  그 만큼 큰 충격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스찬 부디스트', '부디스트 카톨릭' 등 새로운 형태의 '하이브리드 종교'가 생기지 않을까?


예를 들어 종교는 기독교이지만, 동시에 불교를 공부하고 그 안에서도 진리를 찾는다.  기독교를 개종한 것이

아니고 신앙을 유지하면서 불교를 공부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미국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신이 성적 정체성을 100% 공개하지 않는 것처럼 , 우리 주변에는 종교적인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시대가 달라졌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에 살아도 되고, 이혼하고 혼자 살아도 되고, 성적취향이 다르면

동성간에 결혼도 가능한 세상이다.  크리스찬 부디스트가 못되는 논리적인 이유가 있을까?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이 사람은 한국인인가? 미국인인가?

출생은 한국이지만, 시민권은 미국이라고 설명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없었던 제3의 사람이 된것이다.

이것이 바로  '코리안 아메리칸'이다.  예전에는 한번 결혼하면 평생을 함께 살아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떠한가? 이혼하고 딴 사람과 결혼할 수 있다.  50년전만 해도 우리나와 같은 보수적인 사회분위기에서 이혼은

생각할수도 없었다.


조금더 확장 해보자.  요즘은 아이들에게 아빠와 엄마가 두명일수도 있다.  나아준 부모와 길러준 부모이다.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 되고 있다.  더 극단적으로는 한명의 남편과 두명의 아내가 함께 동거하면서 각각의

아이를 낳고 기른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과 상식이 완전히 파괴된 새로운 문화가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람은 꼭 한국인이어야 하고, 미국사람은 반드시 미국인이어야 한다는 것은 폐쇄된 생각이고,

예전의 삶의 방식이다.  지금은 개방된 사회이다.  따라서 열린사회에서는 열린사회에 맞는 합리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것이 보편성이다.


우리의 '전통'과 '유산'은 특수성에 기반되지만, 우리의 지향점은 보편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특수성과 보편성이 우리 현실속에서 충돌하고 있다.  윗 세대들은 자산의 특수성에 기반하고,

반면에 젊은 세대는 보편성을 추구한다.  4차산업의 핵심인 창의력(Creative)과 다양성(Diversity)은 바로

이러한 보편성 출발한다.


반드시 세대차이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를들어, 한국사람의 입장에서 무슬림, 북한사람은 특수성이다.  

이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앞으로 우리는 보편적 관점에서 자유롭게 사고해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열린 가르침이다.  유대교는 유대인만 구원을 받는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열린 자세'가 아닐까?  

반면, 당시 유대인에게는 청천병력 같은 소리였을 것이다.  따라서 수많은 비판과 탄압이 있었다.




내 딸이 살게 될 세상은...?


지금 우리는 문명이 교체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대전환기에 사람들은 혼란을 겪는다.  

조선말엽에 유교에서 서양문물을 받아드렸을 때와 비슷할 것이다.  순교자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의 삶과 죽음은 무엇이었나?


예전에는 기독교인은 기독교인들만 살고,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은 무슬림끼리 생활하고, 한국사람들은

문화와 전통을 지키면서 한국사람들하고만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4차산업의 핵심은 서로 다른 분야와의 융합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창조가 탄생된다.  

창의성은 융합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긴 시간동안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종교와 종교간의 섞임이 일어나고, '하이브리드 종교'가 생겨나게 되는 것일까? 두려움이 앞선다.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면서 신과 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동시에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 진다.  

인간관도 신관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올 것이다.  신과 종교에 대한 개념자체가 변할 것이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따라 종교의 교리도 달라질 것 같다.  


지금은 이러한 변화가 상당히 불편하고 두렵지만, 앞으로 100년후는 어떨까?  아마도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지금 나의 딸이 10살이다.  100년이후면 110세이다.  2120년이다.  

나는 무지하고 갇힌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내 딸은 새로운 세계에서 살고 있을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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