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현실로: 오일파스텔 아뜰리에
SNS라는 공간에서 화가를 한 분 만났다.
점심시간, 스레드에 특이한 그림이 올라왔는데, 크레용으로 그린 듯한 꾸덕한 느낌인데 색의 강한 움직임이 부드럽다.
“이건 뭘로 그린 거예요? ”
“오일파스텔입니다.”
“와.... 이게 오일파스텔이군요!”
“네, 저는 오일파스텔을 사용하는데, 일반인 강좌가 이번 달에도 있어요.”
그의 그림은 단순해 보여도 전문가처럼 느껴졌고, 글에 매너가 있다.
(한번... 해봐?)
“참가하고 싶어요!”
그림에 끌려 인스타 까지 넘어갔다.
DM (Direct Massage)으로 답장이 오고,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워크숍 예약을 했다.
워크숍은 몇 분만에 마감이 되었고, 약속날 작가님이 알려준 장소를 찾아갔다.
장소는 아파트를 개조한 아뜰리에였다.
작은 공간에 20대 디자이너, 50대 주부, 일러스트레이터, 회사를 은퇴한 분 까지. 나를 포함한 총 10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직업도, 연령도, 사는 곳도 다른 이들이 모여 인스타에 본 작가의 그림을 참고로 설명을 들었다.
합성 나무로 된 베니어 판에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는데, 종이보다 표현이 자유롭고 소재의 질감이 생생하게 나온다는 것이다.
2시간 동안, 나무 판데기 위에, ‘오일파스텔’이란 것을 난생처음 쥐어 보았다.
크레용보다 부드럽고 서로 다른 색채가 섞일수록 초콜릿처럼 따뜻하게 녹아내리는 재료였다.
낯선 곳에서 만난 처음 보는 이들과 함께 한다는 긴장감도 같이 녹아드는 기분이다.
어떤 이는 산을, 누군가는 추억 속 장면을 그리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조금씩 그림으로 풀어냈다.
“저는 커피를 좋아하는데 방금 내린 커피를 표현하고 싶어요.”
“그러면... 이 흰색으로 뜨거운 김이 공기에서 퍼지는 것처럼 표현하면 됩니다. 그리고 커피는 진갈색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검은색을 사용하면 더 잘 나와요.”
희한하다..... 고정관념을 깨는 색의 표현이.
나는 어색한 웃음과 질문으로 계속 이어갔다.
작가님이 되물었다.
“이 색, 어떻게 낸 거예요?”
“엇, 이거 실수한 건데.... 경계선을 넘어버려서..”
“좋은데요! 바탕선 안에 색을 꽉 채워 넣지 않아도 됩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커피를 상상하면 서 자유롭게 표현하는 거예요.”
조교로 오신 분에게도 작가님은 이런 표현도 가능함을 전했다.
오일파스텔은 단순한 그림 도구가 아니었다. 자유롭게 색을 섞고, 실수해도 괜찮다는 여유를 주었다.
스레드에서 만난 작가와의 인연이, 여기에 온 처음 본 이들과 함께 따뜻한 색으로 물들었다.
작가님은 모인 이들의 그림이 완성되자 각자의 그림 분위기에 어울리는 액자에 넣어 주셨다.
시간이 되어 마무리를 할 무렵, 아뜰리에 오너가 미리 준비한 커피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옆에 앉으신 분이 조용히 내 그림을 보시더니 시를 읊조리듯 말했다.
커피를 그리고 커피를 마신다...
작가님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게요. 처음인데 느낌이 좋네요. 또봐요.”
난 쑥스러워 미소만 지었다.
문을 나서며 생각했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작은 호기심 이렇게 특별한 오프라인 순간으로 이어질 줄이야.....’
6월 초여름날 저녁, 주홍빛 노을이 오일파스텔의 부드러운 질감 같은 기억을 남겼다.
미국의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가 2006년경 뉴욕주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쓴 편지가 있다.
학생들이 보네거트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는데, 그는 인터뷰 대신 짧은 편지로 숙제를 내준다.
Practice any art, music, singing, dancing, acting, drawing, painting, sculpting, poetry, fiction, essays, reportage, no matter how well or badly, not to get money and fame, but to experience becoming, to find out what's inside you, to make your soul grow.
“어떤 예술이든 연습해 보세요.
음악, 노래, 춤, 연기, 그림, 회화, 조각, 시, 소설, 수필, 르포 등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잘하든 못하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돈이나 명예를 얻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하고,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발견하고, 영혼을 성장시키기 위해 하는 겁니다.”
이 편지는 지금도 널리 인용되면서 “예술의 본질적인 가치”를 설명한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내고, 되어가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황금 같은 말이다.
알고리즘이 좋아하는 주제에 관심을 보이면 알려주는 놀이터. 가상이 현실이 되기도 하는 놀이터에서 나는 아이처럼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