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대화는 바로 끝났다. 댓 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은 사람과 피드백을 못 받은 부부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부인이 의도했던 소통은 무엇이었을까? 남편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댓 구를 했을까? 서로의 다른 생각 알고리즘은 잘못된 조준으로 엄한 곳에 꽂혔다. 예민한 상황이 절대 아니었다. 바쁜 상황도 아니었다. 충분히 호의적인 좋은 상황 속 대화였다. 이것은 마음을 나누려는 자와 정보를 들이대는 사람과의 소통 단면이다. 정확히 빗나갔다.
감정을 나누고 싶은 사람은 내가 본 것, 들은 것, 느낀 감정을 나누고 싶어 한다. 정보에 딸려오는 감정이 중요하다. 내가 느낀 감정의 공감을 기대한다. 공감이 소통 목적이다. 정보는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보로 소통하려는 사람은 정보에 충실하다. 접수된 정보가 유용한지 아닌지 분석부터 한다. 내가 제공할 수 있는 정보는 무엇인지 찾는다. 그리고 정보의 가치를 인정받을 피드백도 원한다. 정보가 훨씬 우선한다. 어쩌면 사람에 따라서는 전부인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대화는 짧고 건조하고 답답해진다.
소통은 두 가지를 교환한다. 정보와 감정이다. AI가 필요한 정보를 쉽게 주지만 AI와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유용할 뿐이다. 내가 대화하고 싶은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은 감정 교류가 좋은 사람이다. 비 오는 날 생각나는 사람은 촉촉한 날의 커피 향을 함께 느꼈던 사람이다. 그 사람과 나눴던 대화보다 더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함께 나누었던 느낌이다. 정보는 잊히지만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싹둑! 가위질은 손만 하는 게 아니다. 입도한다. 별 생각 없이 뱉은 한마디가 순식간에 공기를 냉각시키고 대화 흐름을 끊어 놓는다. 그리고 찾아오는 어색함, 그리고 거리두기, 그리고 낮아지는 소통빈도, 그리고 이 루틴이 반복되면 여지없이 찾아오는 긴 침묵, 그래서 단절로 진화한다. 싹둑! 입이 하는 가위질이다.
감정교환이 있는 곳에는 사랑의 감정이 자란다. 사랑은 팬덤으로 성장한다. 손흥민 선수가 축구만 잘했다면 지금과는 좀 다른 팬덤이지 않을까? 그는 주변 동료나 팬들의 마음을 읽고 배려하는 행동을 한다. 유재석이 MC로서 진행만 잘했을까? 노래만 잘하면 성공하는 가수일까? 감정 교류가 빠진 실력은 사람의 마음을 붙들기 어렵다. 잠시 반짝일 수는 있어도 쉽게 사람의 마음에서 잊혀진다. 실력은 사람들 기억 속에 머물다 사라지기 쉽지만 느낌은 오래 남는다.감정은 세포가 되어 몸속에 저장된다. 확실하다.
감정은 정보보다 성질이 급하다. 반응이 빠르다. 어떤 사람을 보면 이유는 모르는데 불안하거나 기분이 나쁜 사람이 있다. 그 사람과 있었던 정보는 떠오르지 않지만 느낌이 먼저튀어나오는 예다. 친구나 직장 동료와 대화도중 이유는 모르는데 순간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경험 있을 것이다. ‘왜 내가 기분이 나쁘지?’ 집중해서 이유를 찾지만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느낌은 정보보다 훨씬 빠르다.
대화를 마친 후 찝찝한 기분이 계속 남아서 이유 분석을 하는 나를 발견한다. 뭔가 실마리를 찾으면 이런 생각한다.
‘에잇!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하는데!’
버스는 떠나 버린 후다. 속상하게도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반복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