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는 독불장군이셨어요. 무엇이든 당신의 기분대로, 당신의 생각대로 행동하셨죠. 화가 나서 드시던 밥상을 엎는 것도 몇 번 봤어요. 저는 '히틀러’라 불렀어요. 물론 속으로만요.
돌아가신 지 10년, 보고 싶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에요. 막상 만나면 다시 불편할 것 같아요. 편했던 기억이 없거든요.
돌아가실 때도 당신 마음대로 하셨어요. 평소에도 자식에 대한 편애가 컸어요. 특히 아들과 딸에 대한 개념은 사이비 종교급이었어요. ‘딸은 출가외인이다’. 적어도 100번은 들은 것 같아요. 며느리 입장이라 대꾸는 안 했지만 딸 입장을 생각하면 화가 날 말이죠. 그런 사상적 이유로, 딸 셋에 대한 상속은 하나도 안 했어요. 아들 둘과 어머니에게만 상속하는 유서를 남기셨죠. 공증도 확실히 해놓았더군요. 변경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였죠. 어머니에겐 이런 맨트도 더했어요. ‘당신 혼자 사는 동안 이거면 충분할 거야’. 어머니가 받아야 하는 법적 지분에 부족한 상속이었고, 두 아들이 받은 유산에 비하면 소박했어요.
시아버지에게 부인은 삶의 동반자가 아니었어요. 적어도 제 생각에는요. 고용된 몸종과 법적 부부의 어느 중간쯤 있는 관계 같아요. 당신이 마음대로 부리는 편리한 사람이면서 법적으로 묶인 사람이죠. 두 분이 평생을 모은 재산이 왜 아버님 권한인지 오히려 제가 반박하고 싶었죠. 어머니는 억울했고 늘 그랬던 것처럼 삭혔어요.
딸들은 유류분 소송으로 법에 준하는 정당한 권리를 청구했어요. 승소해서 가져갔지만 원래 받아야 하는 금액보다는 적은 금액이었어요. 법이 그랬어요. 소송과정 중에 많은 상처를 남겼죠. 어머니한테도 청구가 들어갔어요. 그녀들 입장에서는 못 받았으니까 받은 사람 모두에게 청구한 거였어요. 어머니 입장에서도 억울함이 있는데 말이죠. 그녀의 지분에 턱없는 상속이었거든요. 그렇게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몰표를 행사하고 떠나셨어요. 3가지를 챙겨서요.
시아버지가 황천길에 싹 쓸어가신 3가지는요...
남은 가족의 화목이 없더군요.
혼자 외로울까 봐 챙겨가버렸는지 남은 가족은 화목하지 않아요. 무서운 히틀러가 없으니 온화한 분위기가 흐를 줄 알았죠. 그렇지 않았어요. 형제들은 어머님 케어 등의 이견이 생겼고, 소송하며 서로 대치되었던 갈등의 잔재는 10년이 지났는데도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네가상속받았으니 제산받은 네가 엄마는 챙겨. 나한테 부탁하지 마. 나는 나대로 알아서 챙길 거야’. 서로 돕고 함께 하는 화목은 없어졌어요.
어머님의 권위가 없어요.
남겨진 부인을 생각한다면 힘을 실어줬어야지요. 어머님이지분을 그대로 쥐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명절에 방문 안 하는 자식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이빨 빠진 호랑이는 힘이없죠. 살아서는 눈치 보느라 벌벌 떨게 하셨고, 사별 후에는 남편이 잘못한 뒤처리를 감내하며 쓴 시간들을 보내게하시네요.
아버지에 대한 좋은 추억 모두 챙겨가 버렸어요.
제사 모시는 10년간 사위 셋 중 어느 누구도 참석한 적이 없어요. 감정이 안 좋은 거죠. 독불장군 히틀러였지만 기억을 털어보면 좋은 기억도 있었을 텐데 도무지 안 떠올라요. 상속 마무리 때문에 생긴 나쁜 감정만 가득해요. 당신 뜻대로 사시다 당신 뜻대로 마무리 짓고 떠났을 뿐이에요.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과 공감하고 보듬는 삶은 없었어요. 주변 사람들은 늘 긴장하며 눈치보기 바빴죠. 참 까탈스럽고 불편했던 시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