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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녁 Jul 25. 2024

더 '하지 않는' 삶

지난 6월 30일, 영국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낸 뒤 한국에 귀국했습니다. 한국은 여전했습니다. 지문인식과 안면인식 한 번에 초스피드 입국심사가 끝나는 걸 보니 '내가 한국에 잘 도착했구나' 싶었죠. 하루 전만 하더라도 비가 몹시 내렸다고 했지만 도착 당일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습니다.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영국으로 떠났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별다른 일거리가 없는 백수입니다. 그렇지만 돌아오기 전에 따로 취업을 준비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다시 회사에 다니는 제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고, 농사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거든요.



오해하실 수 있어 말씀드리자면, 저는 결코 흔히 '금수저'가 아닙니다. 주식도, 코인도 하지 않고 부모님 재산을 기대하며 살정도로 부모님이 부유하지 않습니다. 매월 보험비며 대출이자, 건강보험비, 연금보험비 등 숨만 쉬어도 지출되는 고정비가 부담스러운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더구나 살인적인 생활비로 유명한 영국 런던에서 약 1년을 보내는 동안 예상하지 못한 지출도 많아 모아둔 돈이 많이 소모된 상황입니다. 해외살이 중 원격으로 운영하던 파티룸도 요즘 경기를 이기지 못하고 시들시들하며, 간간히 팔리던 빈티지 소품도 재고에 먼지만 높이 쌓이고 있지요.


그런데 '왜 취업을 고민하지 않고 그렇게 어려운 길로 가느냐'고 물어보실 수 있겠네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영국에서 잉여로운 시간을 보내며 '어떻게 하면 보다 가치 있는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참 많이도 고민했더랬습니다. 당연히 취업도 고민했었습니다. 그것도 해외취업을요. 영국 취업에 도전해 보려 영문이력서를 쓰고 이리저리 제출했지만 비자도 없는 외노자를 고용할리 만무했습니다. 두어 달 고생 끝에 단 한 건의 인터뷰도 해보지 못하고 해외취업을 포기했습니다. 이번에는 해외유학으로 방향을 틀어보았으나 온자산을 유학에 투자해도 모자란 높은 학비를 감당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두 방향이 꺾이고 난 다음에는 상당한 무기력감이 찾아왔습니다. 사라지더라도 별로 문제없을 것 같은 작은 존재처럼 느껴졌달까요. 후회가 되는 날들도 많았습니다.


런던의 한 공원에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비를 아끼려 숙소까지 30분 걸어가던 중이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땅만 보고 걷다가 우연히 우중충했던 하늘이 어느새 따스한 햇볕으로 가득 차고 파랗게 변한 걸 눈치챘습니다. 포근한 햇살이 자기주장이 강한 진녹색 나뭇잎마저 반짝이는 연둣빛으로 변하게 하는 것을 보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습니다. 사실 저는 즐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부업에, 본업에, 결혼에, 각종 모임에, 잘 즐기지도 못하는 취미생활에, 투자, 부동산, 술, 야식, 회식까지... 너무나 많은 일들을 한 번에 해왔던 한국에서의 삶에서 잠시 정지를 고하며 어렵게 찾아온 영국에서도 저는 그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무언가 더하지 못해 '안달'이 나있었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불안하여 이토록 깨끗하고 아름다운 영국의 하늘을 바라보지 못했던 걸까요.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가 안타깝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어서 그랬어요. 더 하지 말자. 덜 해보자. 조금씩만이라도.


그때부터 저는 걸어 다닐 때 가급적 핸드폰을 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지도를 보면서 가는 것도 가급적이면 하지 않으려 했어요. 가다가 길을 잘못 들으면 물어보면 되니까요. 잘못 든 길에서 더 멋진 광경을 볼 수도 있으니까요. 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꽃이 그렇게 예쁘더라고요.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꺼내듭니다. 그러다가도 나중에는 그저 눈으로 담았습니다.


런던은 봄이 길어 한 달도 넘게 벚꽃이 지지 않는다

외식비도 비싸니까 가급적이면 외식도 줄여보기로 했습니다. 하루에 한 끼만 외식하고 집에서 최소 두 번은 해 먹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아내와 저는 요리를 좋아합니다. 한국에서는 해 먹고 싶은 요리가 잔뜩 있었는데 여유가 없어 마켓컬리에서 주문해둔 식재료만 냉장고에 쌓이곤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시간이 넉넉하니 마음껏 해 먹어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하루에 마트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갔습니다.


처음에는 값싼 재료들이나 땡처리하는 식재료에 정신이 팔려 먹지도 못할 양을 몽땅 사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어떨 때는 그 양을 감당하지 못해 상해버려 아깝게 버려야만 했어요. 그러면서 다짐했습니다.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그날 먹을 건 그날 사서 먹자고. 


신기하게도 점점 가공식품을 사는 빈도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 맛에 쉽게 질리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신선한 재료를 사서 바로 해 먹는 것이 훨씬 맛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침에는 주로 샐러드를 해 먹었는데 다 잘려서 소스까지 곁들여 나온 샐러드볼보다는 야채를 사서 직접 손질해서 먹는 게 양도, 품질도 더 좋았습니다. 내가 힘쓰지 않아도 될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덜어낸 그 시간을 좋은 식재료를 구해 직접 요리해 보는 데 썼습니다. 그 시간만큼은 무의미하게 허비되지 않고 몸과 마음이 채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게 뭐가 있을까? 

직접 해 먹다 보면 하지 않을 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배달음식은 생각나지 않고요. 포장해올 생각도 별로 들지 않습니다. 가급적 장바구니를 들고 가서 비닐봉지를 안 쓰려고 하게 되고요. 싸고 양 많은 것보다 비싸더라도 제대로 만든 식재료들을 찾게 됩니다. 그래도 외식보다는 그게 더 싸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좀 더 좋은 제품, 좀 더 좋은 채소에 관심이 생기게 되고, 그런 것들을 직접 보고 살 수 있는 시장을 알게 되고, 시장에서 생산자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생산지를 직접 방문하기까지 이르게 됩니다. 대부분은 농장이었습니다.


치즈윅의 한 파머스마켓

마음에 쏙 드는 상품을 파는 생산자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유기농을 고수한다는 점이었지요. 단순히 유기농 표시인증을 받는 데에 집중한다기보다는 보다 고차원적인 가치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 것을 넘어 단일작물만 생산하지 않는다든지 생물다양성을 최대한 확보한다든지 천적을 활용한 자연농법을 활용한다든지 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들은 작물을 재배할 때 무언가 더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손이 더 간다고 더 맛있어지는 게 아니라 손이 덜 가야 자연스러운 맛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벌레가 먹으면 먹은 대로, 새들이 쪼아 먹으면 쪼아 먹은 대로 토끼가 먹으면 먹은 대로 그대로 둡니다. 자연에 내어주고 난 후에 남은 것들이 우리 인간이 먹는 것들이랍니다. 참 아이러니하지요.


물론 그런 곳들은 오랫동안 그 방식을 고수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고 대부분의 다른 농가들은 섣불리 따라 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더 멋있어 보인달까요? 우리나라 농장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그러한 방식이 환경도 살리고 맛도 살리는 일석이조의 방식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술을 참 좋아하기 때문에 앞으로 술을 담그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위와 같은 방식으로 재배된 원료로 만든 술들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맛이 좋았습니다. 그러니 그러한 술을 만들려면 자연이 내어주는 방식의 농사를 직접 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발효 방식으로 술을 빚으려면 원재료에 붙어 살아있는 미생물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 않을 일을 잘 솎아내며 내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분명 멋진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렇게 직접 수확한 재료들로 술도 만들고 음식도 만들고 싶습니다. 나의 술, 음식이 내 마음에 쏙 들면서도 모두와 절로 나누고 싶어지는 그런 맛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긴 호흡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을 좀 더 길게 보고 싶습니다. 조급한 마음은 잠시 묻어두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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