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와라 슈 기념 미술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1). 삿포로와 굿찬정의 거리는 서울과 경기도 어디쯤 있는 마을과 같다. 그러나 분지 지형인 굿찬정은 삿포로보다 두 배 이상의 눈을 쏟아낸다. 겨울이 되면 흰 도화지로 바뀌는 곳은 사람들의 발길로 금세 도시의 형체가 드러나는 삿포로가 아니라 굿찬정이다. 고속도로 위 바다가 사라지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왔을 즈음, 우리는 진정한 설국에 발을 딛고 있었다.
흰 도화지에 거대한 점 하나를 찍은 것이 있다. 후지산과 비슷하게 생겨 작은 후지산이라 불리는 활화산, 요테이산이다. 이 땅의 수준 높은 설질을 보장해 주는 것도 요테이산이고, 홀로 높게 솟아 어디서나 돋보이는 곳도 요테이산이다. 그런 배경으로 최상급의 스키를 타기 위해 여기저기 관광객이 몰려오는 굿찬정과 바로 옆 마을 니세코정은 요테이산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유무형의 거대한 점을 찍는 산을 담기 위해, 동시에 닮기 위해서 ‘오가와라 슈 기념 미술관’은 낮은 수평선을 그린다. 겨울에는 눈을 덮어 자신을 숨기고 남은 계절에는 산을 받치는 기단이 되어 풍경의 장식장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건물은 도화지에 잉크가 퍼져나가 영역을 확장하듯이 수직 수평으로 교차하는 복도를 따라 전시장, 로비, 사무실, 수장고가 번져 눈으로 파고드는 형상이다. 이것들은 서로 맞물리면서 로비와 작은 서가 같은 여유 공간을 만든다.
로비의 기다란 수평 창이 요테이산을 담는다. 그런데 산은 정중앙이 아니라 왼쪽으로 한쯤 비껴있다. 도화지에 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진다. 중앙에 찍으면 일본 국기와 같을 것이고, 왼쪽 혹은 오른쪽 상부에 찍으면 태양처럼, 하단에 찍으면 작은 돌 하나로 보일 것이다. 위치에 따라 점은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어 여지를 주지 않을 수도 있고 여백에 관객이 개입할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지도에서 건물을 내려다보았을 때, 충분히 산을 중앙에 오도록 실을 배치할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풍경에 다양한 것들이 침투할 여지를 준 것이다. 요테이산이 풍경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요테이산을 배경으로 미술관 마당의 나무들과 그 앞 형형색색 스키복을 입고 플라스틱 썰매를 끌고 다니는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느슨한 틈은 실내 경험에도 영향을 준다. 관객은 산을 더 잘 보기 위해 부러 고개를 돌리고 평면에 상승곡선을 그리며 로비를 관통한다. 느슨해진 동선은 작고 소박한 미술관을 풍성한 경험으로 채워준다. 미술관의 경험이 단조롭지 않은 이유다.
산을 닮는 장치는 미술관이 기념하는 화가, ‘오가와라 슈’와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제2전시장이다. 로비에서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소박하면서도 특이하다. 얇은 철판이 전시장 입구를 빠져나와 나선형을 그리며 작은 캐노피를 이룬다. 캐노피 면적만큼 바닥에 그림자가 지듯 복도보다 살짝 어두운 무광 타일이 공간을 구분한다. 선을 따라 들어간 전시장의 천장은 조각나 있다. 각도에 따라 오케스트라 홀이나 일본 가옥의 지붕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이형의 공간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결국 요테이산이다.
오가와라 슈는 굿찬정에서 태어나 잠시 도쿄에서 수학한 뒤 고향으로 돌아왔다. 전쟁의 참상을 겪은 뒤로 그는 자연과 생명체에 집중하기 시작했는데, 단순히 외형을 재현하기보다는 그 행동에 담긴 원시적인 생명력과 고독을 표현했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주변에서 흔히 볼 법한 소재인 요테이산부터 인간, 소, 말, 새다. 풍경화 속 작은 점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각각의 것을 초상화처럼 홀로 그려내는 것 또한 특징이다. 같은 생명체라도 그것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색채와 동작으로 다양하게 풀어내는데, 이는 생명의 근원에 닿고 싶다는 그의 의지가 작품에 고스란히 담긴 결과다. 그러니 이 미술관이 산을 정중앙에 배치하지 않은 것, 낮은 수평선을 그리며 땅에 안착해 있는 것 모두 시야를 넓혀 여러 대상을 관찰하려 했던 오가와라 슈의 시선을 고스란히 느끼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였다.
(1)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동네, p.7 문장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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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이바타 아키오(Akio Ibata)
글, 사진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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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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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아부타군 굿찬초 기타 6조 히가시 7초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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