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언덕 - 두대불전
태중의 기억 소환하기 - 부처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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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시내에서 4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산 중턱의 한적한 주차장. 그곳에 꽤 기이한 석상이 줄지어 있다.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지만, 풍화의 흔적 없이 말끔한 표정 덕분에 어딘가 테마파크 입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석상들이 시선을 던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봉긋한 언덕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눈으로 덮인 언덕 정상에 불상의 머리만 살짝 드러나 있다. 부처의 언덕, 두대불전이다.
굳이 불상을 이렇게 숨길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높은 벽으로 둘러싼 직사각형의 방이면 어땠을까. 경기장의 관중석처럼 언덕을 타고 올라 위에서 아래로 불상을 내려다보는 건 또 어땠을까. 하면서 질문을 이어가던 중 마지막 생각이 다음의 궁금증을 스스로 끊어내며 답을 제시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고. 저렇게나 거대한 불상을 크고 육중하게 만들어 압도감을 주려 한 본질적 의도를 부러 거스를 필요가 있겠느냐고.
거대한 불상은 인간의 형상을 닮았지만 우리의 몸보다 훨씬 크다. 그 부피에서 오는 압도감은 본능적인 감각을 건드린다. 생존 본능인 경외감이다. 거석이 줄지어 늘어서 있던 것도 거석 불상을 만든 것도 물리적 힘과 시간을 들여 만든 결과물이다. 시간의 깊이를 이해하고 그 본능을 느끼며 정성에 공감할 때, 우리는 비로소 신비로운 감정, 즉 종교적이고 예술적 감각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 거석은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는 게 옳다.
이러한 생각이 다시 처음의 질문을 불러온다. 정성스레 만든 불상을 굳이 감춘 이유가 무엇일까. 그 답의 실마리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바로 석굴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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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에 조성된 석굴암은 삼국유사에 김대성이 전세의 부모를 위하여 건립했다. 석굴암이 자리한 불국사는 화엄만다라 형식의 불국토를 상징하고 국가에 이바지할 인재를 많이 출생하길 바라는 의도가 전해진다. 이 때문에 그 구조가 자궁과 비슷하다. 어두운 통로를 지나 둥근 돔 공간에 이르면 비로소 불상을 마주하게 되는 구조를 가진다. 신체 일부를 형상화한 접근이 오늘날 다소 상징적이고 고전적인 접근으로 비차자만, 당시의 시선으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접근 방식이다.
두대불전의 내부 경험도 비슷하다. 매표소에서 불전에 이르는 진입 축을 수직으로 가르는 직사각형 물의 정원이 동선을 늘어뜨리는 것을 제외하면, 긴 복도를 따라 돔의 불전에 이른다. 복도 천장은 올록볼록하게 주름 잡힌 콘크리트 면서도 거칠기보다 광을 가득 머금은 물결무늬 패턴을 입었다. 인공적 재료임에도 이상하게 신체의 일부처럼 보인다. 마치 생명체 내부를 통과하는 통로같이.
약 40미터의 어둠을 따라 걷다 보면 멀리서 불상의 형상이 조금씩 드러난다. 처음에는 가부좌를 튼 하체가 보이고 조금 더 다가가면 입술과 코 그리고 눈. 새로운 생명이 잉태하는 순간 같다. 외부에서는 거대한 존재를 볼 수 없지만, 긴 통로를 지나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본능이 반응하고 경외감은 훨씬 강렬해진다. 돔 천장의 둥근 개구부는 복도 천장의 패턴을 이어받아 국화꽃 테두리처럼 둘러져 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불상의 두광이 된다.
사원이 완성되기 전, 정확히 말하면 돔이 얹히기 전에는 들판 위에 불상만 홀로 서 있었다. 무려 15년 동안. 건축가는 거대한 존재를 일부 숨기고 일부만 드러냄으로써 궁금증을 품고 끝내 기대하게 만들며 내부 깊숙이 관객을 이끈 것이다. 건축가가 설계한 이 길은 불상을 만나러 가는 길이도 하지만, 우리 각자의 가장 먼 과거로 돌아가는 통로이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열 달 동안 머물렀던 태중의 어둠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몸은 그 안온함을 기억한다. 소설가 한강은 장편소설 <검은 사슴>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흑백사진에 친밀감을 갖는 것은 밤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또한 누구나 태중의 어둠 속에서 태어났으므로, 그 열 달 동안의 어둠에 대한 기억을 몸 어딘가에 저장해두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1)
태중의 어둠에서 시작된 생명이 세상으로 나오듯, 이 어둠의 통로를 지나 다시 바깥 풍경으로 돌아올 때의 감정은 훼방과 낯섦이었다. 그래서 긴 어둠의 여정 동안 계속 기시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던 불상이 인간이라면 한 번은 겪을 그 기억을 소환하며 개인적 감각을 건드리는 여정. 그렇게 불러낸 감정이 겹겹이 쌓이면서 두대불전의 경험은 공동의 기억으로 전환되고 종교의 색은 더욱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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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강, 검은사슴, 문학동네,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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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안도 다다오
글, 사진 : 신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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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진과 글은 직접 촬영하고 편집하고 써내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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