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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완열 Feb 06. 2023

상사의 대화법  1

내 말에 취하지 않으려면 명심할 3가지

  작년에 모 본부에서 있었던 경험이다. "본부 모든 직원과 정기적으로 티타임을 가지겠다!"는 본부장님의 일성아래, 말단 직원부터 고위 간부까지 본부장과의 티타임을 정기적으로 가져야만 했다. 내가 생각하는 '티타임'은 '차를 곁들인 대화의 시간'인데, 그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티타임 일정이 잡힌 부서는 오전 아홉 시부터 열두 시까지 안락하지 않은 자세로 본부장실 접객용 안락소파에 앉아 본부장님의 독백쇼에 강제로 초대되었다. 기분이 좋으면 그 기세를 그대로 이어가 점심식사까지 함께 해야만 했다.


제일 고통스러운 포인트는 최대 4시간에 가까운 '대화의 시간'속에 실질적으로 내가 발언할 수는 없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것이다. 그는 본인이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냈다. 누군가 다른 의견이나 얘기할 틈을 주지 않았다. 더 미칠 노릇은 티타임이 끝나며 하는 그의 말 한마디였다. " 다음에는 자네들도 말 좀 해, 예능판처럼 끼어들어서 말을 해야지. 나도 힘들어~ 오늘도 강연하느라 힘들었구먼, 다음에 더 좋은 강의를 해주겠네 허허" 미안하지만 나는 강의를 요청한 기억도 없고 본부장의 재미없는 예능에 초대받아 토크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단지 경영지원팀이 시키는 데로 앉았을 뿐.


노동조합의 반발을 살 정도로 그분과의 티타임은 악명이 높았다. 수없이 티타임을 성토하는 글들이 블라인드에 올라왔다. "티타임이 아니라 고문이다." "자기만 일방적으로 얘기할 거면 왜 하냐, 일할시간 뺏지나 마라 " 등등 노사간담회에서  티타임을 하지 말자는 건이 정식 안건으로 올라올 정도였다. 나는 무려 3번이나 티타임을 완주한 경험이 있는데 나만의 노하우가 있었다. 본부장실에 걸린 산과 물이 있는 산수화를 지긋이 쳐다보는 것이다. 10분 정도 집중해서 보면 그림 속의 사공이 나인지 내가 사공인지 정신이 혼미해지는 시기가 온다. 그럼 얼른 내가 소파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그림 속에 있다는 상상을 하며. 한 귀로 그의 말을 흘려보내곤 했다. 가끔 다른 세계에 있는 나를 감지하고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하시기도 하지만 유려하게 대답하며 빠져나갔다.

 

그런데! 이동을 하고 새로운 상급자를 만나서 또 다른 티타임을 주관하다 보니, 이분도 유사한 증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면 새로운 분은 나름 사리분별력이 있고 직원들을 위하는 합리적인 분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 말미에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취미영역)에 대해서 말을 시작하더니 내리 10분을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 강도와 증세가 매우 약하긴 하지만 부하직원이 듣고 싶은지 아닌지 상관없이 본인의 말에 취해 얘기하는 것은 비슷했다. 여기서 많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도대체 왜 그런 것인가? 생각을 해봤다. 고백하자면 사실 나도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때때로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장황하게 하다 보면 상대방의 눈빛에 초점이 없어지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아래 3가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1. 상사들은 왜? 도대체 왜? 부하직원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인 연설 또는 강의를 하는 것인가?  
2. 동료 또는 부하직원들이 나와 대화하고 싶을 때는 언제인가?
3. 그리고 내가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상사들은 왜? 원하지도 않는 일방적인 연설을 하게 되는가?

- 인격에 문제가 있다. 상대방을 배려할 마음이 없다.(직급이 올라갈수록 공감능력이 저하된다)

- 대화스킬이 부족하다.(말을 하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데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내 얘기를 하게 된다)

-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갈고닦은 전문지식과 경험을 자랑하고 싶은데 할 곳이 없다.

- 본인이 하는 얘기가 이 사람한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지하게 믿는다.

- 상대방(부하직원)이 아무말 하지 않는 것을 동의로 간주(?)한다.

- 외롭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부하직원 밖에 없다. 사실 상대방이 듣는지 안 듣는지는 상관없다. 하고 싶은 얘기 마음껏 할 수 있음 채고!


2. 동료 및 부하직원들이 나와 대화하고 싶을 때는 언제인가?

- 업무 외적으로는 없다. (업무상이라도 최소한으로 상사와 엮이고 싶어 한다)

- 정말로 나와 대화하고 싶다면, 그들이 먼저 말을 걸거나 식사 제안을 한다.

- 그들은 기본적으로 나한테 관심이 없다. 하급자는 기본적으로 상사와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자. (소통이 잘되는 상사는 그들만의 피나는 노력이 있다)


3. 그렇다면, 일방적인 강연을 하지 않으려면 어떡해야 하나?

-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회사에서는 필요한 말만 하자.

- 너무 말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으면 소셜 플랫폼이나, 가족에게 털어놓는 것을 추천한다. (나처럼)

- 강연은 공식적으로 강사로 초청받은 자리에서 내 말을 원하는 사람으로 채워진 자리에서만 하자

- 스몰톡은 최대 5분 이내로 하자. 그 이상 길어지면 서로 피곤해진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상사고 티타임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자.

(본인의 얘기를 늘어놓지 말고 Q&A를 해보자. "예시 : 누구누구 대리님은 관심사가 어떻게 되나요?")


'대화의 총량'이라는 것이 있다. 나의 토크 지분이 줄어들수록 상대의 토크지분이 올라간다. 대화의 목적이 상대방의 얘기를 듣기 위함인가? 내 얘기를 하기 위함인가? 내 얘기를 하고 싶다면 내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닐까? 티타임을 가장한 일방적인 고문은 제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아니 그럼 말을 하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입장바꿔 생각해보시라 본인의 인사권을 쥔 권력자앞에서는 누구나 말을 가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위 3가지는 지난 근무지 본부장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3번째 티타임이 절정이었는데 내리 4시간을 달리셨다. 10년간의 회사생활로 다녀진 멘탈이 무너질 뻔했는데, 내가 인정하지 않는 사람의 말을 반박하지 못한 채 몇 시간을 듣는 건 만큼 고역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이건 아니라고 조목조목 반박 하고 싶은 충동을 절제하느라 많이 힘들었다. 불도저 같은 양반으로 남에 말을 들을 위인도 아니거니와 나의 직상사가 받을 피해를 고려하면 더더욱 말을 삼켜야만 했다. 괜히 나 때문에 그분의 남은 회사생활을 망칠 수 없으니 말이다. 전해 듣자니 아직도 2시간 정도는 거뜬히 티타임을 가장한 원맨쇼를 소화하신다고 한다. 아직도 그분은 직원들이 왜 티타임을 싫어하는지, 본인의 로열제리 같은 강연을 거부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가끔 우리 팀원들을 보며 그분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문한다. 내가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팀장들은 명심하자. 조언과 식사는 직원이 요구할 때만, 강의는 공식적인 강의장에서만.


스스로의 말에 취해서 주절대지 말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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