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기 쉽지 않던 시절

by 엣지있는 김작가

어릴 적부터 나의 꿈은 가수였다.

1화에서 이야기했듯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부모님께 칭찬과 사랑을 받기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칭찬받던 건

‘예쁘다’는 말과 ‘노래를 잘한다’는 말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른들은 “너는 커서 가수 해라이~” 하며 내게 말했고,

그 말이 어느새 내 꿈이 되어 있었다.


중학교 때는 나름 매니저 역할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코디네이터를 자처하는 친구도 있었다.

노래방에서 테이프에 노래를 녹음하면

친구들이 “오디션용으로 편집해줄게!” 하며

진지하게 도와주던, 풋풋한 시절이었다.


학교 행사 때면 언제나 무대 위에 섰다.

끼가 넘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판이 깔리면 절대 빠지지 않는 그런 아이였다.


그 꿈이 무너진 건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둘째 언니가 내게 말했다.


“연예인이 되려면 무조건 접대를 해야 된다네.

너 그럴 수 있겠나? 노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래.”


기획사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언니의 말은

순진했던 내 마음에 커다란 벽이 되었다.

마침 그 시기, 모 여배우의 스캔들이 세상을 떠들썩하

게 했고 나는 자연스레 ‘가수의 길’을 접었다.


18살까지 품어온 꿈이 사라지자

갑자기 모든 게 막막해졌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때 우연히 내 안의 또 다른 재능을 발견했다.

짐을 정리하다 본 초등학교 생활통지표에는

‘문장력이 좋고 표현력이 풍부함’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중학교 때는 H.O.T 팬픽을 써서 친구들에게 보여줬고,

고등학교에 와서는 글짓기 상을 여러 번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문학 선생님을 짝사랑했던

마음이 글에 더 진심이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럼 드라마 작가가 돼볼까?’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는

처음엔 반 친구들끼리 돌려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곧 전교생이 찾아 읽는 인기 소설이 되었고,

당시 젝스키스를 좋아하던 친구의 제안으로

우리는 팬픽을 인터넷에 올리기로 했다.


마침 엄마가 얻어온 중고 컴퓨터 한 대가 있었고,

나는 천리안 god 공식 팬클럽 ‘져디’의 팬픽방에

처음으로 내 글을 올렸다.


남장여자 백댄서의 이야기,

〈가슴 달린 남자〉는 5대 소설에 오르며 큰 인기를

끌었고 수많은 감상문과 메일이 쏟아졌다.


밤을 새워 글을 쓰던 시절,

나는 다시 ‘살아 있는 나’를 느꼈다.

그래서 대학 진로를 동아방송대 방송극작과로 정했고,

그 선택은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구성작가의 길은

3화에서 이야기했듯, 씁쓸하게 막을 내렸다.


방송국의 더러운 현실 속에서

고등학교 때 언니가 했던 그 말,

“노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 말이 진실이었음을 그때서야 알았다.


결국 나는 모든 걸 내려놓고

엄마가 있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내 두 번째 꿈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