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 그 사이에서

by 엣지있는 김작가

북큐레이터로 활동을 하면서도

지오의 케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가능했던 건 지오가 어린이집 생활을 하고

있었고 원장님과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후에 아이들을 하원시켜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들을 씻기고 저녁을 준비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재웠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옷을 갈아입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영상을 촬영했다.

편집하고, 업로드하고, 씻고 나면

어느새 시계는 자정을 훌쩍 넘겨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9시까지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회사로 출근했다.

퇴근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빠듯한 일상.

몸은 분명히 힘들었지만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꽤 단단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매일 같은 생활을 이어갔다.


신랑도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늘 내가 무언가 하길 바랐던 사람이라

내가 다시 활기를 찾은 것 같아 보기 좋다고 했다.


하지만 마냥 좋은 일만 있던 건 아니었다.

책을 판매하는 일은 결국 영업에 가까웠고

고객을 만날 때마다 쉽지 않은 순간들도 많았다.


한 번은 지오를 낳았던 산부인과 산후조리원에서

산모교실 수업을 매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곳 실장님은 유난히 깐깐했고

갈 때마다 눈치를 봐야 했다.

매번 긴장 속에서 수업을 해야 했다.


SNS를 통해 책육아 정보를 공유하고

나에게 책 큐레이션을 받고 싶어 하는 엄마들에게

우리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도 많았다.


전화로 계약이 성사되면

부산에 사는 고객을 직접 찾아가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상담을 해드리기도 했다.


나로 인해 책을 멀리하던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었다.


물론 중간중간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북큐레이터로 활동하며 받은 교육을

아이들에게 직접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특히 큰아이는 북클럽을 무척 좋아했다.

그 시절에는 평생 읽을 책을

다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하고 많은 책을 함께 읽고

독후 활동도 꾸준히 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이 일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좋았던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코로나가 터졌고,

영업직이라는 특성상 매출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우수 북큐레이터가 되어 팀장을 달게 되면서

국장님의 목표는 점점 더 강압적으로 느껴졌고

매출 창출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즐겁게 하던 일은 어느새

‘판매’만 남은 일이 되어 있었다.


지오 문제로 이사까지 겹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북큐레이터 일을 내려놓게 되었다.


일에 욕심이 생길수록

지오에게 쓰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그 사실이 내 마음을 가장 힘들게 했다.


아마도 그 무렵,

지오가 다니던 발달센터 감각통합 선생님의

한마디가 내 가슴에 깊이 꽂혔기 때문이 아닐까.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