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싸움의 시작

by 엣지있는 김작가

소아정신과 검사 날.

나는 담담한 마음으로 검사실로 향했다.


검사 내내

지오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나는 이미 알고 있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오는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받았다.


따로 정해진 치료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저 센터를 성실히 다니며

지오가 일상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진단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크게 슬프거나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보다 더 많이 들었던 생각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족이

이 시련을 안고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것이었다.


특히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다.


지오가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우리 가족의 일상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아이들을 키우고

치료실을 다니는 것 외에는

특별한 변화도 없었다.


아이들이 3살, 4살이 되던 때였기에

또래 아이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고

아이들 역시

지오를 특별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또래보다 조금 순하고

조금 느리게 가는 아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일상은 비교적 평온하게 흘러갔다.


다만,

아주 가끔

나도 모르게 무너질 때가 있었다.


너무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난 밤,

가족 모두 잠든 시간에

갑자기 밀려오는 슬픔에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을 쏟아낸 날들이 있었다.


‘분명 나는 괜찮은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가끔은

미래가 두려웠다.

이 아이를

내가 끝까지 잘 키워낼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밤새 울고 나면

다음 날 나는 또

아무 일 없다는 듯

밝은 엄마이자 아내로

하루를 살아냈다.


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나면

그날 수업에서 했던 내용을 그대로 떠올리며

집에서 내가 다시 해주곤 했다.


정답이 없었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지오는 인복이 많은 아이였다.

순하기도 했지만

어딜 가나 예쁨을 받는 얼굴이었다.


특히 어린이집 선생님 복이 좋아

담임 선생님은 물론

어린이집의 모든 선생님과

원장님까지

지오를 참 예뻐해 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북큐레이터로 일을 할 수 있었다.


아침 9시에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오후 5시쯤 다시 데려오는 생활.


그때도 남편은 외벌이였고

나 역시 일을 해야 했다.


북큐레이터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아이들에게

조금 더 많은 책을,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효주는 어릴 때부터

책을 참 좋아했고

지오 역시

책장을 넘기는 걸 즐겼다.


책값이 만만치 않았기에

내가 일을 해서

아이들에게

집 안의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 무렵

남편의 도움으로 시작한 인스타그램은

팔로워 수가 8천 명을 넘기고 있었다.


덕분에

아이들 용품이나

내 화장품 협찬 문의가 들어왔고

그걸로 아이들 간식값 정도는

벌 수 있었다.


팔로워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육아 중인 엄마들이었고

그 관계는

북큐레이터 일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점점

일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매일 교육을 듣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인스타그램 영상을 촬영하고

업로드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영상이 알고리즘을 타면서

많은 상담이 이어졌고

그 경험은

매출로도 연결되었다.


꾸준히 활동한 덕분에

책육아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말하는 걸 좋아했고

조금은 유머러스한 성격 덕분인지

강의를 들은 한 어머니가

자신의 회사 강의에

나를 추천해 주시기도 했다.


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 가족은

각자의 자리를 찾기 위해

묵묵히 애를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싸움은

짧지 않을 거라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에.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