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대로
지오는 발달지연 진단을 받았다.
굳이 병원까지 오지 않아도
집 근처 센터에서
다양한 치료를 받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주변 아동발달센터를 검색했고
몇 군데 예약을 잡았다.
지오가 받을 수 있는
국가적 지원이 무엇이 있는지도 찾아봤다.
주민센터에서 발급해 주는
바우처 카드가 있었다.
치료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지만
그때 우리 형편에는
그마저도 참 고마웠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아동발달센터에서
지오는 언어치료, 놀이치료, 감각통합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언어치료와 감통치료는 주 2회.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 남짓의 수업이 전부였다.
그걸로는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센터에서 사용하는
언어 교구와 놀이 교구들을
인터넷으로 하나둘 주문해
집에서도 최대한 놀아주려 애썼다.
아이가 나아지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고 싶었다.
그건 내가 대단해서도,
유난히 극성맞은 엄마여서도 아니었다.
지오를 낳고 우울증을 겪는 동안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미디어에 너무 많이 노출시킨 건 아닐까 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남편 외벌이로
생활비도 빠듯한 상황에서
지오의 치료비까지 더해지니
시간은 더 팍팍해졌다.
그 무렵,
아이들을 데리고 키즈카페에 갔다가
웅진북클럽 북큐레이터 선생님을 만났다.
무료로 아이와 만들기 놀이를 해주는 대신
신상 정보를 적는 행사였다.
원래 그런 걸 좋아하지도 않았고
효주 책을 사줄 형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
책도 좋아하고 만들기도 좋아하던 딸아이가
계속 수업을 하고 싶어 해
결국 신상 정보를 적고
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 이후 선생님은
꾸준히 연락을 해왔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책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북큐레이터로 채용하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어쨌든 계속되는 권유 끝에
센터에서 진행하는 엄마 교육에
한번 참석해 보기로 했고
보라매에 있던 웅진북클럽 센터를 방문했다.
교육을 들으며
북클럽에서 지원해 주는
자격증 제도에 대해 알게 되었고
지오를 더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에
아동심리상담사, 부모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북큐레이터에 지원했고
자격증 응시를 준비하며
관련 책들을 구입했다.
아동심리상담사 교재를 펼치자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자폐 아동의
자기 자극 행동의 일반적인 형태가
정리되어 있었다.
시각, 청각, 촉각,
진정, 미각, 후각.
하나하나 읽어 내려갈수록
그 모든 것이
지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지오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폐와 연결되었고
이건 자폐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때
심각하게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자폐의 스펙트럼은 워낙 넓고
경미한 경우에는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지오는
21개월이었다.
눈맞춤도 잘했고
잘 웃었고
내 말에도 비교적 잘 반응했다.
하지만
자폐 아이들이 보이는 행동 역시
지오의 모습과 겹쳤다.
정확한 진단이 필요했다.
발달지연일 때와
자폐일 때의 치료 방향은
분명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바로 병원 예약을 했다.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재활의학과 교수님을 만났다.
교수님은
오래 진료를 해오신
연세 지긋한 할머니 교수님이셨고
항상 두 명의 제자가 곁에 있었다.
그날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이가 자폐인 것 같아요.
검사를 해보고 싶습니다.”
교수님은
지오를 한참 바라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어머니, 얘는 자폐는 아니에요.”
나는 다시 말했다.
“그래도
검사를 한번 받아보고 싶습니다.”
자폐 검사는
소아정신과에서 진행해야 한다며
연락을 해주시겠다고 했다.
그렇게
소아정신과에 예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검사 날짜를 기다리기 시작했다.